박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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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부용
朴芙蓉|Park Boo-yong


파일:가수 박부용.jpg

출생
1901년
경상남도 창원시
사망
몰년 미상[1]
사망지 미상
데뷔
1933년 오케레코드 전속가수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한반도의 가수.


2. 생애[편집]


1901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였으나 부친의 별세로 인해 어린 나이부터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돌보며 소녀가장으로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아 1912년에 서울 광교조합(廣橋組合)에 기생으로 이름을 올렸고, 이때를 기점으로 학업에 정진하여 그때 당시의 유명한 가곡과 가사 등을 익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33년에 오케레코드에 발탁되어 가수로 활약하게 되고, 1934년에는 박부용의 대표곡인 '노들강변'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유명 가수로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자신의 후배로 이은파, 이화자 등의 많은 유명 가수가 등장하자 인기가 점차 줄어들었고 1940년대 이후로는 행적이 알려져있지 않다.


3. 기타[편집]


  • 유년기에 잠시 경남 진주에서 지낸 적이 있어 진주가 고향이라고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와전된 것이다.

[1] 1940년대 이후로는 행적에 관해 알려진 것이 없으며, 확률이 극도로 희박하지만 현재까지 살아있다면 120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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