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원(18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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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84년 5월 6일
경상도 김산군 김천면 중동
(현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1]
사망
1961년 9월 16일
경상북도 김천군
본관
밀양 박씨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박제원은 1884년 5월 6일 경상도 김산군 김천면 중동(현 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2일 이갑성에게서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이만집과 만나 독립만세시위 계획을 논의한 뒤 김무생(金武生)과 함께 신명여학교(信明女學校)로 가서 만세시위에 여학생들도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거사일인 8일 오후 3시경 대구고보생 200여 명이 서문 밖 시장에 나타나자, 일본군 헌병 기마대가 제지하여 격투를 벌였다. 이때 계성학교 학생들이 헌병 기마대를 물리치고는 만세시위를 벌이다 3월 10일 재차 시위를 일으키기로 하고 해산하였다.

이후 체포된 그는 1919년 7월 2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출옥 후 김천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1년 9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박제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감호동·성내동·용두동·황금동과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