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네른스트

덤프버전 :

192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수상자 전체 목록 보기
1919년

1920년

1921년
수상자 없음
발터 네른스트
프레더릭 소디[1]


발터 네른스트
Walter Nernst


파일:네른스트.jpg

본명
발터 헤르만 네른스트
Walter Herman Nernst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2]
출생
1864년 6월 25일
프로이센 왕국 서프로이센 브리젠
(현 폴란드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 봉브제지노)
사망
1941년 11월 18일 (향년 77세)
나치 독일 실레시아 지벨
(현 폴란드 루부스키에 주 니비차)
직업
물리화학자, 교수
학력
파일:취리히 대학교 문장.png 취리히 대학교 (물리학, 수학)
파일: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엠블럼.svg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물리학)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수학, 물리학 / 박사)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독일의 물리화학자로 열역학에 큰 업적을 남겼으며, 네른스트 법칙, 네른스트 식, 네른스트 전구의 개발, 네른스트-에팅하우젠 효과와 열역학 제3법칙 등의 업적으로 열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과학자이다. 또한, 네른스트 효과를 발견하였으며 고체의 비열을 다룬 네른스트-리데만 비열식의 발견과 유전율 측정 등의 업적으로 노벨 화학상도 수상하였다.


2. 생애[편집]


독일 서프로이센의 브리젠[3]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세 명의 누나와 한 명의 남동생이 있었고, 아버지는 판사였을만큼 당시 그렇게 못 살지는 않는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셋째 누나가 그만 콜레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의 유년 시절의 행적은 별로 남아있지 않은데, 독일의 그라우덴츠[4]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후의 기록은 자세하게 나와있지 않다. 이후 취리히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등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전공한 후에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건너가 화학자인 프레더릭 오스트발트의 조수가 된다. 그 후 27세에 독일 괴팅겐 대학의 교수가 되고, 해당 대학에 물리 화학 및 전기 화학 연구소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괴팅겐 대학에서 물리학과 전기 화학의 수많은 연구 성과를 낸 뒤 1920년 그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 후 1941년에 77세의 나이를 일기로 나치 독일 영토인 실레시아의 지벨[5]이라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독일인으로 태어나고 독일인으로 죽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그곳이 전부 폴란드 영토가 되어 졸지에 폴란드계 독일인(?)이 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30 04:18:25에 나무위키 발터 네른스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동위원소의 산출과 성질에 관한 연구[2] 나치 독일의 국적을 가지고 있었던 때도 있었음[3] 베르사유 조약으로 폴란드 제2공화국에 편입되어 현재는 봉브제지노(Wąbrzeźno)라고 불린다.[4] 현 그루종츠(Grudziądz)[5] 현 니비차(Niw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