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쿠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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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레타니아 군주
ⵡⴽⴽⵓⵙ ⵡⵉⵙⵙ ⵙⵉⵏ | 보쿠스 2세
파일:보쿠스 2세.jpg
제호
한국어
보쿠스 2세
베르베르어
ⵡⴽⴽⵓⵙ ⵡⵉⵙⵙ ⵙⵉⵏ
라틴어
Bocchus II
생몰 년도
미상~기원전 33년
재위 기간
기원전 49년 ~기원전 33년

1. 개요
2. 행적



1. 개요[편집]


마우레타니아 왕국 군주. 보구드와 함께 마우레타니아를 공동으로 다스렸으나, 옥타비아누스의 편을 들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편에 선 보구드를 몰아내고 마우레타니아 전체를 장악했다. 이후 세상을 떠날 때 로마 제국에 왕국을 기증했다.

2. 행적[편집]


마스타네소수스의 아들이며 보구드의 형제로 추정된다. 기원전 49년 보쿠스 2세와 함께 왕위에 올라 마우레타니아 왕국을 양분했다. 기원전 49년 카이사르의 내전이 발발했을 때, 누미디아 왕 유바 1세마시니사 2세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지지한 것에 대응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지지했다. 기원전 47년 폼페이우스의 장남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30척의 배와 빈약한 무장을 한 자유민과 노예로 구성된 2,0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모레타니아로 진군하여 아스쿠룸 시를 공격했으나 수비대의 반격으로 패퇴했다.(아스쿠룸 전투) 이에 자극받은 그는 보구드와 용병대장 푸블리우스 시티우스에게 누미디아를 침공하라고 권고했다.

기원전 46년 카이사르가 아프리카에 상륙한 뒤 유바 1세와 메텔루스 스키피오의 연합군을 상대하고 있을 때, 보구드는 시티우스와 함께 누미디아로 쳐들어가 누미디아의 수도 키르타를 함락시키고 사로잡은 시민들을 모두 죽였다. 보구드는 이쯤에서 공세를 중단했지만, 시티우스는 공세를 더 이어가 히포 레기우스에서 카이사르에게 패배한 뒤 히스파니아로 도망치려던 메텔루스 스키피오를 가로막아 자살하게 만들었다.(히포 레기우스 해전) 카이사르는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누미디아 서부를 마우레타니아 왕국에 넘겼으며, 시티우스에겐 키르타 일대를 영지로 하사했다. 또한 남은 누미디아 영토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사건이 벌어진 후, 두 통치자는 카이사르 세력 내에서 두각을 드러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옥타비아누스 중 어느 쪽을 택하는 지를 놓고 대립했다. 그는 옥타비아누스를 지지했고, 보구드는 안토니우스를 지지했다. 기원전 38년 보구드가 히스파니아에서 안토니우스를 위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고 있을 때, 그는 군대를 일으켜 보구드가 다스리던 영역을 탈취하여 마우레타니아 전체를 석권했다. 하지만 보구드 지지자들이 이에 반발하여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키면서 왕국 전체가 혼란스러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훗날 마우레타니아 왕국의 군주로 선임된 유바 2세가 수도 이올에 도착했을 때 사람이 살기 힘들 정도로 황폐해져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33년 임종을 눈앞에 두고 후계자가 없다는 이유로 왕국 전체를 로마 제국에 기증했다. 이후 여러 총독이 마우레타니아를 다스렸지만, 마우리인들의 잦은 반란, 아틀라스 산맥과 사하라 사막의 북쪽 가장자리 주변에 살던 유목민족 가에툴리아인의 지속적인 침략으로 혼란스러웠다. 이에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유바 2세를 마우레타니아 왕위에 앉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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