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세로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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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cero program
El programa Bracero

1. 개요
2. 상세
2.1. 배경
3. 내용
4. 한계점


1. 개요[편집]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미국멕시코 정부가 체결한 노동력에 관한 외교적 합의다. 브라세로라는 뜻은 스페인어로 육체 노동, 즉 단순 노동을 의미한다.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멕시코가 제2차 세계 대전 으로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하여 노동력 부족 현상에 빠진 미국에 농업에 종사할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에 중점이 맞추어져 있다.


2. 상세[편집]



2.1. 배경[편집]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미국은 모병제에서 징병제로 변환을 하였으며 이로 인해 많은 노동력이 군인으로 차출이 되었는데 이로 인해 여러 산업에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2차대전은 총력전의 양상을 띄고 있었음으로 FDR 행정부는 모든 산업을 군수품 조달등에 맞춰야 했다. 또한, 이를 통해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던 미국은 경제 활성화를 국가 주도 하에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사무직이나 생산직 같은 경우, 대도시 등에 밀집되어 있었고 이는 집이라는 사적영역에 있던 여성들의 공적영역 진출을 야기하였다. 그러므로 사무직과 생산직의 노동력 부족 현상은 여성이라는 대체 노동력으로 일단락 되었으나 농업지대는 도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고 여성들만이 농사를 짓기에는 버거웠다. 농업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국이 각지에서 있는 군에 식량을 보급해야 했으며 심지어는 연합군의 보급도 일부 책임을 져야 했기 때문이다. 병참이 전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농업의 정상화는 미국에게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

당시 멕시코는 2차대전에 참전하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노동력이 남았으며 제조업보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어서 여러모로 싼 값으로 잉여 노동력을 미국에 제공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과 멕시코 양측의 이익이 맞아 떨어져서 시작된 사업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또한 이민의 국가인 미국이 이민자를 제어하기 시작하기도 하고 당시 전쟁으로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해 이민자 유입보다는 일시적 고용을 할 수 있는 노동력을 찾았고 멕시코는 위에서 말했듯 잉여 노동력이 있었다. 사실상 워킹비자의 시초라고 봐도 무방하다.

3. 내용[편집]


1942년 8월 4일, 양국은 멕시코 인 농업 노동력 합의에 서명을 하였고 5백만명의 멕시코인의 노동력 제공, 기한을 최대 22년간 지속되는 것으로 합의했다. 미국 국무부와 법무부, 그리고 노동부가 합동으로 브라세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노동자의 인권, 최저임금(시급 30센트)등을 기본적으로 합의했다. 인종차별이 아직 남아있었지만 그러한 차별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명문화 해놓았다. 어쨌든 일시적인 노동력 고용이라는 골조가 핵심이다.

1942년부터 1947년까지 미국 고용 인구의 10% 미만의 멕시코 인들이 미국에 입국하였는데 많은 멕시코 인들이 오고싶어 뇌물을 썼다고 한다. 1948년부터 1964년까지 매년 평균 20만명의 멕시코 인들이 미국 농가로 유입되었다. 이후 1950년 대에는 40만명 이상의 멕시코 인들이 유입되었으며 1964년 프로그램 종료까지 많은 인원이 있었다.

4. 한계점[편집]


우선 브라세로 프로그램은 멕시코 노동자들의 장기 체류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농번기에만 체류를 허용했고 농한기에는 고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교통비는 고용주가 제공하지 않았다. 돈을 벌려고 온 멕시코 인들은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불법 체류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멕시코 노동자들이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 승전국이자 팍스 아메리카나를 열게 한 숨은 공로자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후 집으로 돌아온 병사들은 이들과의 경쟁을 해야 했다.

지금 많은 선진국에서 나오는 모습과 비슷한, 값싼 임금의 외국인 노동자와 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국내 노동자의 경쟁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생계를 때려치고 돌아온 제대군인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멕시코 노동자들을 달갑게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임금 하락을 불러올 수 있는 멕시코인 노동자를 달갑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미국은 총력전 체제였던 2차대전을 통해 경제 부흥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대공황을 이겨냈다. 그리고 전후 이 효과를 누리면서 호황을 경험하지만 제대군인들의 유입으로 실업률이 늘어나 잉여 노동력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승전과 호황 속에 이러한 제대군인은 당시 시대의 그림자와 같은 존재였다. 포레스트 검프와 같은 전후를 다룬 미디어 물등을 보면 충분히 당시 사회 정황을 알 수 있다.

자국민의 실업률, 불법 이민자등을 고려해 1964년 JFK 행정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종료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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