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마라 페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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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백작
비마라 페레스
Vímara Peres

출생
미상
갈리시아
사망
873년
기마랑이스
재위
포르투갈 백국의 백작
868년 ~ 873년
배우자
투루디디(추정)
자녀
루시디오 비마라네스, 아비디아 비마라네스(추정)
아버지
페드로 테온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포르투갈 백국 초대 백작.


2. 생애[편집]


갈리시아 출신으로, 일부 전승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 페드로 테온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국왕 베르무두 1세의 아들이라고 한다. 그러나 공식 기록에서는 베르무두 1세에게 외아들 라미루 1세만 있었다고 기술되었기에 진위 여부는 불확실하다. 868년 아스투리아스 국왕 알폰수 3세의 지시에 따라 도우로 강 하구의 포르투를 공략하고 초대 포르투갈 백작에 선임되었다. 이후 아랍군을 상대로 지속적인 공세를 벌인 끝에 871년 몬데구 강변의 코임브라를 공략했다. 약 5천의 인구를 지녔던 코임브라는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재정복'한 첫 대도시였다.

비마라 페레스의 아내의 이름은 사료에 전해지지 않지만, 마가리타 토레스 세빌라 등 일부 학자들은 현존하는 사료에 포르투갈 귀족 구티에레스 알테스(? ~ 963년 이후 사망)의 아내 아비디아 비마라네스의 부모가 "비마라와 투루디디"라고 명시된 점을 근거삼아 투루디디가 그의 아내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873년경 비마라 페레스가 사망한 뒤 다음 포르투갈 백작에 선임된 루시디오 비마라네스가 투루디디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는지는 불명확하나, '비마라의 아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비마라네스를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볼 때 그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비마라 페레스는 포르투갈 백국의 수도로 정해진 기마랑이스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3. 여담[편집]


오늘날 포르투에 비마라 페레스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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