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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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양, 남진의 대신으로 자는 함무(含茂).
2. 생애[편집]
사거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하는 풍채가 청아하였고 글을 매우 잘 지었으며, 양나라에서 비서랑으로 기용되었다. 이후 태자중서자로 전임되고 동궁의 기록을 관리하였으며, 건안군 태수로 전출되었다.
후경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하는 광주로 가서 자사 소발(蕭勃)에게 의지하였다. 승성 연간에 효원제가 사하를 오병상서로 임명했으나 길이 막혀서 대신 지무장군(智武將軍)으로 전임되었다. 소발이 진남장군으로 임명된 뒤 사하는 소발에 의해 장사, 남해군 태수로 임명되었다.
이후 사하가 패배하자, 사하는 임천에 이르러 주적(周迪)에 의해 구류되었다. 얼마 뒤에 사하는 진보응에게 의탁하였고, 문제는 사하를 여러 차례 불렀으나 사하는 세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진보응이 패배하자 사하는 마침내 예궐하였고 어사중승 강덕조가 사하를 탄핵했지만 문제는 사하를 용서하고 급사황문시랑(給事黃門侍郞)으로 삼았다.
이윽고 시중(侍中)으로 전임되었다가 566년에 공사로 인해 면직되었으며, 이윽고 다시 시중으로 복귀하였다. 567년에는 중위장군 시흥왕 진백무의 장사, 신위장군(信威將軍)를 맡았고 중서령, 예주 대중정, 도관상서를 역임하고 우림감을 겸임하였다. 사하는 569년에 사망하여 시중, 중서령으로 추증되고 광자(光子)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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