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 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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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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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1913년

1914년
알렉시 카렐[1]
샤를 리세
로베르트 바라니[2]

Charles Robert Richet
샤를 로베르 리셰


파일:샤를 리셸.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1913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본명
샤를 로베르 리셰
출생
1850년 8월 26일, 프랑스 제2공화국 파리
사망
1935년 12월 4일, 프랑스 제3공화국 파리
국적
프랑스 파일:프랑스 국기.svg
분야
생리학

1. 개요
2. 생애
3. 연구
4. 여담



1. 개요[편집]


프랑스의 의사, 생리학자로 신경, 근육 등의 생리의 기능, 혈청요법 등에 관한 연구를 했다. 과민증에 대한 연구로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2. 생애[편집]


1850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일찍이 의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파리 대학교에 입학한 후 1869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학뿐만이 아닌 생리학에도 관심을 보인 그는 1878년에는 물리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879년에 파리 대학교 생리학 강사로 부임, 1887년에는 생리학 교수가 된다.

1913년에는 과민증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했다. 그 뒤 1927년 대학을 은퇴한 후 심리, 항공 등 여러 분야들을 연구하다가 1935년 사망했다.


3. 연구[편집]


1888년 세균에 감염된 동물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청이 같은 세균을 박멸하는 것을 발견한 그는 혈청이 결핵의 치료법임을 가정하였고 1890년 최초의 혈청요법을 도입했다.

1900년대 경 해파리독극물 연구를 시작했으며 모나코 여행에서 모나코 왕자로부터 작은부레관해파리의 독에 대한 연구를 부탁받아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3] 어느날 그는 개에게 말미잘의 독을 주입하여 치사량을 구하는 도중, 첫번째 독을 주입했을 때 회복했던 개가 2번째의 소량의 독을 주입했을 때 과민반응을 일으키며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이는 1차, 2차 면역반응과는 완전히 다른 현상을 보였으며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이 우연이 아님을 가정, 여러차례 실험을 행했다. 그 결과 투여한 독소가 과민반응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3주에서 4주 정도의 잠복기가 있으며 동물의 종류, 투여한 독소의 종류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는 이와 같은 현상을 과민증이라고 명명했으며, 지금까지 설명할 수 없었던 알레르기 반응에 대해 밝힐 수 있었다.


4. 여담[편집]



  • 생명에 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으나, 심령 현상에도 관심이 있었다. 이 때문에 1905년 심령현상연구협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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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혈관 봉합술 및 장기이식 연구.[2] 전정기관 연구[3] 단 파리에서는 작은부레관해파리를 구하기 힘들어서 대신에 성분이 비슷한 말미잘의 독을 이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