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두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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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之變
1. 개요
2. 배경
2.1. 승성지변(承聖之變)
2.2. 소연명의 즉위
3. 전개
4. 결과


1. 개요[편집]


중국 남북조시대 양나라 사공(司空) 진패선(陳覇先)태위(太尉) 왕승변(王僧辯)을 석두(石頭)에서 참살한 사건. 당시 연호를 따서 천성지변(天成之變)이라고도 부른다.

2. 배경[편집]



2.1. 승성지변(承聖之變)[편집]


당시 서위(西魏)의 실권자 우문태(宇文泰)는 옛날 효원제(孝元帝)가 서위의 사신을 무시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때 옹주자사(雍州刺史) 소찰(蕭詧)이 우문태에게 호응했고 이 기세를 몰아 5만의 군사로 양나라를 침략했다. 전투가 시작되자 소찰은 요충지 양양(襄陽)을 바치고 수도 강릉(江陵)을 공격했다. 강릉의 성문이 뚫리자 효원제는 절망하며 고문(古文) 14만권을 모두 불살라 없애고 도망쳤으나 끝내 붙잡혀 참살당하니 이 사건이 바로 승성지변(承聖之變)이다.

2.2. 소연명의 즉위[편집]


소의(蕭懿)의 다섯째 아들 소연명(蕭淵明)북제(北齊)의 포로로 잡혀있었는데 효원제가 피살되자 이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소연명을 보내 황제로 즉위시키도록 했다. 왕승변은 북제의 군세에 밀려 소연명을 황제로 즉위시켜려고 했으나 또다른 권신 진패선에 의해 섣불리 소연명을 황제로 즉위시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북제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자 진패선도 소연명이 황제로 즉위하는데 찬성했다. 하지만 이것은 진패선의 계략이었다.

3. 전개[편집]


진패선은 북제의 군사가 회군한 틈을 타서 왕승변이 있는 석두(石頭)를 공격하여 태위 왕승변과 그 일당을 모조리 참살해 버리고 권력을 잡았다. 진패선은 뒤이어 왕승변이 옹립한 소연명을 폐위시키고 양왕(梁王) 소방지(蕭方智)를 옹립했다.

4. 결과[편집]


권신이 제거되자 진패선은 조정을 장악했고 승상(丞相)에 올라 그 위엄을 과시했다. 얼마안가 최고 직위인 상국(相國)에 오르면서 황제와 다를 바가 없는 직위가 되었다.

후에 진패선은 소방지에게 황위를 요구하며 선양할 것을 억압했다. 결국 버티지 못한 소방지는 진패선에게 황위를 넘겼고 이렇게 양나라가 망하고 진나라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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