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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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조선의 인물.


2. 생애[편집]


『임하필기(林下筆記)』에 따르면 선우식은 명나라 홍무 연간(1368~1398)에 중령별장을 지낸 선우경(鮮于京)의 7대손으로, 평안도 태천에서 거주하다 평양으로 이주했다. 선우식은 평양에서 기자를 모신 숭인전 인근에 10여년간 거주했다.

늦어도 선조 때부터 평안도 사람들은 선우씨를 기자의 후손으로 여기고 전묘의 참봉을 지내왔다. 이를 국가적 행사로 키운 것은 광해군 때였다. 1611년 평안감사 최관은 파발을 보내 기자전에서 천여 년간 끊어진 제전을 이어야 한다고 아뢨고, 좌우 신하들 역시 동의해 선우식은 숭의전의 예처럼 기자에 제사를 지내는 봉사손으로 낙점됐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선우식은 정6품의 숭인감(崇仁監)으로 임명되고 그 자손들이 참봉을 세습했다.


3. 가족관계[편집]


선우식의 후손 숭인감 선우흡(鮮于洽)은 정묘호란 때 적에 잡혀갔는데 그들에게 항복하고 빌붙었다는 이유로 관직을 잃었다. 평안감사 김기종은 선우흡의 아들 선우백(鮮于栢)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대신들은 '아비를 버리고 자식에게 관직을 줄 수는 없다.'라며 다른 선우씨로 교체하게 했다.

『연려실기술』에서 인용한 『하담파적록』에는 그 이후의 일화가 남아있다. 평안감사 김시양이 선우경(鮮于慶)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니 조정에서는 그가 적손인지 지손인지를 알아보게 했다. 그런데 김시양은 '멀고 아득한 명족의 후예가 원손인지 지손인지 알 수 없다'며 '성이 선우라서 그 이름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했다. 이에 따르면 이후의 전감들이 선우식의 후손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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