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클리프 정신병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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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시클리프 정신병원 화재.jpg
1. 개요
2. 시클리프 정신병원
3. 사고 내용
4.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1942년 12월 8일, 뉴질랜드 시클리프에서 일어난 정신병원 화재.


2. 시클리프 정신병원[편집]


파일:시클리프 정신병원.jpg

시클리프 정신병원은 뉴질랜드의 유명한 건축가 로버트 A. 로슨(Robert A. Lawson)이 디자인했다. 건물을 디자인 할때 고딕 스타일을 참고했다. 건물은 1884년에 개원했다. 시클리프 정신병원은 이내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건물이 됐다. 500명의 환자를 수용 가능했고, 직원 수도 50명이나 됐다. 거기다 큰 정원에 식물을 키울수 있는 온실도 구비됐다.

하지만 시클리프 정신병원은 운영하면서 점차 건축 문제를 겪게 된다. 건축하는데 비전문가가 투입됐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1887년엔 산사태로 피해를 입어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사건이 있었다. 건물을 잘못 설계한 로버트 A. 로슨에게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그의 명성은 순식간에 하락했자.

병원 안에선 전두엽 절제술, 거세등이 강제로 행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때엔 의사와 간호사들이 현장에 끌려갔고, 시클리프 정신병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직원 부족을 겪던 시클리프 정신병원은 관리에 소홀해졌아.


3. 사고 내용[편집]


사고 당일 저녁, 메인 건물과 떨어진 5번 건물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화재 경보기는 자동이 아닌 수동이라, 화재를 목격한 사람이 직접 작동시켜야 했다. 하지만 이 경보기 마저도 열쇠로 잠겨있었고, 열쇠를 가진 직원은 다른 건물에 있었다. 화재를 본 직원은 바로 신고했다. 소방대원이 도착했을 땐 이미 불이 크게 번졌다. 너무 커서 소방대원이 접근하기도 힘들었다.

병동은 전부 잠겨있었고, 창문에도 쇠창살로 탈출을 막아뒀다. 건물은 나무로 지어졌고, 방수를 위해 왁스칠을 한데다 방화벽도 없어 물이 빠르게 번졌다. 때문에 화재때도 환자들이 대피하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 쇠창살 없는 창문을 허락받은 환자 2명 만 살아남았다.

화재로 37명이 사망했다. 화재는 발렌타인 백화점 화재가 있기 전 까진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화재로 기록됐다.


4. 사고 이후[편집]


화재 이후에도 병원은 계속 운영하다 지반이 위험하단 평가를 받은 후 1959년에 철거됐다. 환자들은 새로 지어진 체리 팜 병원(Cherry Farm Hospital)에 옮겨졌다.

2017년, 사고 75주기를 맞아 추모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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