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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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이집트 신왕국 제19왕조의 7대 파라오. 고대 이집트의 최전성기인 신왕국 제19왕조의 말기를 다스렸던 파라오였다.
2. 통치[편집]
아무래도 십타가 워낙에 존재감이 없는 파라오다보니 그의 부모관계나 가족관계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것이 없다. 가장 유력한 학설은 십타가 바로 전대 파라오인 세티 2세의 아들이라는 설이었다. 그러나 누비아의 신전에서 머리가 고의적으로 훼손된 사람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아기 시절의 십타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니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파라오 아멘메세스의 아들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현재는 이 쪽이 주류다. 특히 후대 파라오인 람세스 3세가 작성한 왕명록에서 십타의 이름이 아멘메세스와 함께 누락된 것을 보면 십타가 아멘메세스의 친아들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1] 만일 십타가 세티 2세의 적통이었다면 정통성이 확실하므로 굳이 왕명록에서 누락할 필요가 없을 것이기 때문.
당시 십타가 왕위를 물려받는 데에는 당시 쿠시 총독이자 재상이었던 라메세 카멘테루의 역할이 대단히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티 2세 시절 세워진 석비에 십타 바로 뒤쪽에 카멘테루의 모습이 거의 십타와 동등한 크기로 새겨져 있고, 고대 이집트 회화에서 지위에 따라 인물의 크기를 맞춰 그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카멘테루가 십타 뒤에서 암약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멘테루도 오래가진 못했다. 지나치게 권력이 커졌는지 아니면 왕의 심기를 거슬렸는지, 카멘테루는 십타가 즉위하고 4년 만에 숙청당했다. 십타는 카멘테루를 반역자로 몰아서 그가 만들고 있던 무덤의 공사를 중단하라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고 이 파피루스는 아직도 남아있다.
6년 정도 밖에 안되는 십타의 재위기에 대해선 많은 게 남아있지않다. 재위 6년이 되는 해에 호리를 새 재상으로 임명하고 세드 축제를 주관하였으며, 약 5년 10개월 정도 밖에 되지않는 통치 동안 별다른 군사적 업적이나 탁월한 내치를 보여주진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십타의 왕비이자 누이였던[2] 투스레트가 섭정직을 맡아 대신 이집트를 다스렸다. 십타의 미라는 왕가의 계곡 KV47 무덤에 안치되었으나 후일 도굴꾼들 때문에 그나마 멀쩡했던 아멘호테프 2세의 KV35 무덤에 재안치했고, 1898년에 발견되었다. 2021년 4월에 그의 시신을 다른 신왕국 파라오들과 함께 카이로 박물관에서 이집트 문명 박물관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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