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르 베르나도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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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보리 백작
오스카르 베르나도테
Prins Oscar Bernadotte, Greve af Wisborg


파일:Oscar Bernadotte.jpg

이름
오스카르 칼 아우구스트 베르나도테
(Oscar Carl August Bernadotte)
출생
1859년 11월 15일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스톡홀름
사망
1953년 10월 4일 (향년 93세)
스웨덴 스톡홀름
배우자
에바 뭉크 아프 풀킬라 (1888년 결혼 / 1946년 사망)
자녀
마리아, 칼 오스카르, 에바 소피아, 엘사, 폴케
아버지
오스카르 2세
어머니
나사우의 조피아
형제
구스타프 5세, 칼, 유셴
서명
파일:Prince_Oscar_Bernadotte_signature.png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스웨덴노르웨이의 국왕 오스카르 2세나사우의 소피아의 차남.

귀천상혼을 해 왕족의 지위와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2. 생애[편집]


1872년 9월 18일에 아버지 오스카르 2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왕위 계승 서열 2위의 왕자가 되었으며, 고틀란드 공작 작위를 받았다. 그리고 왕실의 전통대로 어린 나이부터 군에 입대했다. 13살에 스웨덴 해군에 들어간 오스카르는 25년 동안 해군으로 복무했다.

1885년에 암스테르담에 머물며 건강 검진을 받았다. 이때 형수인 바덴의 빅토리아가 오스카르를 만나러 오면서 빅토리아의 시녀인 에바 뭉크를 만나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오스카르와 에바는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오스카르는 에바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에바는 일개 귀족 영애였기에 왕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1] 에바는 시녀직에서 해임되었고, 오스카르 2세는 오스카르에게 다시 생각을 해볼 2년의 시간을 주었다. 2년 후 마음이 변치 않은 오스카르는 다시 가족들에게 결혼의 뜻을 비췄다. 그러자 대다수의 왕실 일원들이 오스카르를 지지해주었다. 오스카르 2세는 결혼을 허락해준 뒤 다른 아들들에게 오스카르의 뒤를 밟아 귀천상혼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하게 했다.

1888년 1월 29일에 오스카르와 에바는 약혼을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3월에 잉글랜드 본머스에 위치한 성 스테판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대중들은 '사랑을 위해 왕족의 지위를 버린 왕자'라는 동화같은 러브스토리에 열광했고, 많은 이들이 부부를 지지했다.

결혼 후 왕자로서의 지위와 왕위계승권, 공작위를 박탈당하고 '베르나도테 공'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두 사람의 자식들에게는 물려받을 작위나 칭호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허락 없이 귀천상혼을 감행한 후대의 왕자들에 비하면 나은 처지였다. 프린스였고 궁정도 출입할 수 있었다. 1892년 4월 2일, 오스카르의 외숙인 아돌프가 생질을 위해 비스보리 백작위를 수여했다. 고틀란드주의 주도 비스뷔에 있는 wisborg라는 옛 성터에서 따온 이름이다. 오스카르가 고틀란드 공작이었기 때문. 이후 귀천상혼한 스웨덴 왕자에게는 비스보리 백작이라는 칭호가 주어지게 되었다.[2]

오스카르와 에바는 종교 활동과 자선 활동에 전념하며 지냈다. 부부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으며 5명의 자식을 낳았다. 3녀 엘사는 스톡홀름시의회 자유당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엄청나게 장수해서 102세까지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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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나도테 왕조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흥 왕조에 벼락출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귀천상혼에 민감했다.[2]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아들들인 시그바르드칼 요한도 귀천상혼으로 결혼하면서 비스보리 백작 칭호를 받았고 두 사람의 친사촌인 레나르트(쇠데르만란드 공작 빌헬름 왕자의 외아들)도 귀천상혼을 하면서 이 칭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