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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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윤동희

1. 개요
2. 아마추어 시절
4. 국가대표 경력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편집]


롯데 자이언츠 소속 외야수 윤동희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아마추어 시절[편집]



파일:야탑고 윤동희.png


안산공업고등학교에서 1학년 때부터 9경기에 나와서 .367의 타율을 기록했고, 2학년 때 야탑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전학을 오자마자 주전 유격수를 차지했다.[1]

2학년 최종 성적은 19경기 70타수 타율.286 20안타 2홈런 13타점을 기록했다.

3학년 때는 9경기 31타수 타율.387 12안타 2홈런 18타점을 기록 중이다.

협회장기 32강에서 대전고 이대겸을 상대로 홈런을 쳤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1차지명 발표 이후에도 꾸준히 1라운드 야수 후보로 꼽혔고 실제로 삼성 라이온즈김영웅을 지명하면 바로 롯데 자이언츠가 윤동희를 뽑을 거란 예측이 있었지만 2차 지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유격수치고 큰 체격과 함께 유격수 수비에도 의문부호가 붙으며 평가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결국 예상보다 낮은 순번인 3라운드까지 밀려났지만 팬들의 예상대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2]

김풍철 롯데 스카우트 팀장은 유격수 수비 불가로 보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3. 롯데 자이언츠[편집]


새해를 넘긴 1월 4일, 롯데 자이언츠 구단과 계약금 8000만원으로 신인계약을 완료했다.#

3.1. 2022년[편집]



파일:롯데 윤동희 프로필.png

퓨처스 개막 초반부터 장타쇼를 펼치며 무력시위를 행사하고 있다. 팬들은 한동희와 더불어 '동희'란 이름이 2군을 폭격하는 이름인가 하며 기대하는 분위기다.

5월 13일 현재 퓨처스리그에서 16경기 51타수 19안타 1홈런 11타점 5도루 .373/.414/.588 OPS 1.002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퓨처스리그 레벨이지만 키스톤 수비를 하는 1년차 신인이라고는 믿기 힘든 성적.

퓨처스리그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돌고 있다. 유격수, 3루수, 2루수, 심지어 중견수까지 소화하는 걸 보아 곧 1군 진입할 가능성이 생겼다.

5월 31일 처음 1군에 콜업되었고 당일 LG 트윈스전에 6번 1루수로 선발출장해 데뷔전을 치른다.

5월 31일에는 3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6월 1일에는 5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으로 데뷔 첫 안타, 타점, 장타, 득점을 기록했지만 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6월 4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지명 당시에는 유격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으나 최근에는 중견수로 주로 출장하고 있는 것을 봐서 결국에는 외야수로 전향하는 걸로 가닥이 잡힌 듯 하다.[3]

9월 3일 기준 62경기 208타수 65안타 40득점 33타점 5홈런 15도루 .313/.371/.471 OPS .842를 기록하며 퓨처스 팀내 타율 3위, 김주현과 함께 팀내 홈런 공동 2위, 팀내 도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년차라는걸 생각하면 대단한 성과.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팀 동료인 한태양조세진, 그리고 상무에 가있는 손성빈과 함께 U-23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완전히 정착했는지 외야수로 등록되었다.

1년 동안 퓨처스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외야수로 전향한 것은 유격수가 매우 급하고 외야수는 비교적 널널한 [4] 롯데 입장에선 아쉬운 부분이다.

이후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입단 이후 입스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외야수로 출장했다고 한다. 다행히도 이후 상태가 호전되면서 마무리캠프에서는 내야수로 등록되면서 병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시즌 후 질롱 코리아에 합류할 예정이었지만 10월 31일 팔꿈치 치료로 보류되었다. 윤동희가 나간 자리는 김민석이 합류하게 되었다. 이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박세웅, 이강준, 조세진, 추재현, 한태양과 같이 지원했지만 입대를 포기한 박세웅을 제외하면 혼자 최종 탈락했다. 그리고 이는 다음 해에 전화위복이 되어 돌아왔다.

3.2. 2023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윤동희/선수 경력/202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롯데 자이언츠 구단 역사 최초 만 20세 이하 100안타를 기록하는 등 상무 탈락을 전화위복 삼아 본인에게 주어진 기회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인생은 타이밍이다'를 보여준 시즌이다.

4. 국가대표 경력[편집]



4.1.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편집]



파일:윤동희국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6
26
23
10
3
0
1
6
6
사사구
삼진
도루
희비
병살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3
3
0
0
0
.435
.500
.696
1.196

부상으로 국가대표 승선이 불가능해진 이정후의 외야수 자리를 채울 대체자로 김민석, 김현준, 배정대와 함께 이전부터 언급되었다. 결과적으로 그 자리는 후반기에 무섭게 치고 올라온 김성윤이 차지하였으나, 그 직후 이의리가 손가락 부상을 이유로 대표팀에서 낙마하면서 그 대체자로 발탁되어 프로 입단 2년만에 태극 마크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앞서 발탁되어 있던 팀 동료 박세웅, 나균안과 함께 간다.

윤동희 본인과 롯데 구단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기쁘지만 당황스럽다는 분위기. 일단 본인부터가 예상을 전혀 못해서 짐도 안 싸놓은 상태라고 하며, 롯데도 발탁 당일 고승민을 2군으로 내린 이후 "윤동희가 나갈 줄 알았다면 고승민을 좀 더 기용해볼 걸 그랬다"라고 언급한 것을 보아 언질조차 딱히 없었다가 갑작스럽게 발탁된 것으로 보인다.[5] 등번호는 소속팀에서와 동일하게 91번을 사용한다.

10월 1일 홍콩전에 6번타자 우익수로 출전해 5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8회말에는 만루 상황에서 2루타를 기록하며 만루에서의 적시타를 리그도 아닌 국제 대회에서 처음으로 기록했다.[6] 팀은 윤동희의 적시타를 포함해 8회에만 7득점을 몰아치며 10대0 콜드승을 거두었다.

10월 2일 대만전에 6번타자 우익수로 출전해 2루타 포함 4타수 3안타를 기록했다. 두 경기 연속 멀티 히트와 함께 이날 팀 전체 안타인 6안타 중 절반을 윤동희 혼자서 기록했다. 팀은 대만의 투수진에 완전히 틀어막히며 4대0 영봉패.[7]

10월 3일 태국전에서는 3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하여 3타수 2안타(1홈런) 1사구 3타점을 기록했다. 첫 타석에서는 몸에 맞는 볼로 출루, 두 번째 타석에서는 직전 타석 홈런을 친 최지훈에 이어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기록하며 국제 대회 첫 홈런 및 백투백 홈런을 완성했다. 이후 무사 2,3루 상황 세 번째 타석에서 2타점 적시 2루타를 기록했다. 4회 말 1사 2,3루 찬스 상황에서는 우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팀은 17:0으로 콜드게임에 성공했다.

10월 5일 일본과의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는 3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하여 2타수 1안타 2볼넷을 기록했다. 세 번째 타석에선 1사 3루 상황에서 윤동희가 타석에 들어서자 일본 측에서 제대로 된 공을 하나도 주지 않으며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거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현재까지 전 경기 멀티 출루를 기록하는 등 대표팀 타자들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본인이 왜 대체 선수로 발탁됐는지를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8]

10월 6일 중국과의 슈퍼라운드 2차전에서는 3번 타자 우익수로 출전했다. 4회 1사 1,2루 상황에서 중견수 방면 달아나는 적시 2루타를 치는 등 좋은 모습을 유지했다. 경기 성적은 5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10월 7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도 3번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팀은 문동주와 불펜진의 호투에 힘입어 대만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최종 성적은 23타수 10안타 3사사구 6타점. 여러 논란 속 자신이 발탁된 이유를 마치 스스로 증명해내듯 전경기에서 안타를 기록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시즌 초 상무에 떨어진 것이 무색하게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까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4.2.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편집]



파일:23APBC 프로필_윤동희.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 2.svg


경기
타석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4
19
17
4
1
0
0
1
0
사사구
삼진
도루
희비
병살타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
1
0
0
0
.235
.316
.294
0.610

항저우 AG에 이어 두 번째로 성인 대표팀에 승선하게 되었다.

1경기 호주전에서 3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4타수 무안타 1사구의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수비에서는 2회 초 1루 주자의 3루 진루를 보살로 잡아내 쓰리아웃을 완성하는 인상적인 모습도 있었다.

2경기 일본전에 3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였으나 역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였다. 해설위원들의 평에 따르면 윤동희의 타구는 대부분 타이밍이 좋고 타구의 질도 좋지만 상대의 좋은 수비에 걸리거나 정면으로 가는 타구가 많다고 한다.

3경기 대만전에 3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4타수 2안타 1볼넷을 기록하였다. 6회 공격에서 2루타를 치며 기나긴 무안타 행진의 마침표를 찍었고, 다음 타석에서도 내야 안타를 기록하었다.

결승 일본전 3번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장하여 5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였다. 1회 우익수 앞 안타를 기록하였지만 3회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삼진을 당하고, 7회초 2사 2루 상황에서 유격수 땅볼을 기록하는등 기회를 놓치다가 10회초 승부치기에서 앞 타자 김도영이 병살을 쳐 2사 3루 상황으로 무득점의 위기에서 중전안타를 기록하며 타점을 기록하였다.

대회 전체로 볼 때 우익수 수비로는 손색이 없는 수비를 보였고, 타격은 예선 2차전까지 안타가 없었지만, 결승 일본전에서 2안타 특히 승부치기 장면에서 꼭 필요했던 안타를 치는 등 마지막 제일 중요한 빅경기에서는 분전하였다. 사실 결승 일본전까지 안타만 없었지 타구의 질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류중일 감독이 계속 3번타순에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출루율
장타율
sWAR
2022
롯데
4
13
.154
2
1
0
0
1
1
0
0
2
.154
.231
-0.14
2023
107
387
.287
111
18
1
2
41
45
3
29
69
.333
.354
0.40
KBO 통산
(2시즌)
111
400
.282
113
19
1
2
42
46
3
29
71
.327
.350
0.26
[1] 김성용 감독 말로는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김하성, 박효준, KIA 타이거즈에 1라운드로 뽑힌 박민을 이을 야탑고등학교 유격수 계보라고 한다.[2] 롯데 바로 앞순번인 삼성 라이온즈가 3라운드에서 윤동희를 지명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으나 삼성이 윤동희를 거르고 차동영을 지명했다.[3] 여담으로 아마 시절 때 유격수 프로에 와서 3루를 보다가 중견수로 가는 과정이 전준우와 상당히 유사하다[4] 추재현, 조세진 등 핵심 유망주가 있고 손아섭이 이탈했지만 고승민황성빈이 안착하면서 외야진이 예상보다 안정화되었다.[5] 고척 돔에서의 소집 첫 날 대표팀 유니폼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상의는 작년에 참가한 WBSC U-23 야구 월드컵에서 착용했던 유니폼을 입었고, 하의는 소속 팀 하의를 입고 훈련에 임했다.#[6] 리그에서는 23시즌 기준 만루 상황에서 13타수 0안타로 안타가 단 하나도 없었다.[7] 결과와는 별개로 대만전에선 윤동희를 포함한 2003년생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는데, 선발로 등판해 4이닝 2실점을 기록한 문동주,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최지민, 12개의 공으로 1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한 박영현, 3안타의 윤동희 등 2003년생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대 선발투수 린위민 역시 2003년생이며 6이닝 무실점 호투를 보여주었다.[8] 게다가 당초 외야수로 선발되었던 최원준이 대표팀 훈련 도중에 당한 부상으로 경기 출전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윤동희의 대체 선발은 더욱 신의 한 수로 평가받고 있다. 안그래도 외야수가 부족한 마당에 윤동희가 선발되지 않았고 최원준까지 부상으로 빠졌다면 외야수 한 자리에 구멍이 생기면서 내야수인 김지찬 혹은 강백호나 소속팀이나 대표팀에서 코너 외야도 가끔 출전했던 주전 2루수 김혜성이 외야수로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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