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원(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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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육군미사일사령부.png
대한민국 육군
육군미사일전략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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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중장.svg ||
||<width=20%><rowbgcolor=#dcffed,#003318> 초대
김시권 ||<width=20%> 2대
정인구 ||<width=20%> 3대
하철수 ||<width=20%> 4대
강한석 ||<width=20%> 5대
김철수 ||
||<width=20%><rowbgcolor=#dcffed,#003318> 6대
김병주 ||<width=20%> 7대
이진원 ||<width=20%> 8대
김상철 ||<width=20%> 9대
이정수 ||<width=20%> 10대
박용준 ||
|| 11대
이정웅 || 12대
이두희 || || || ||
||<-5><bgcolor=#000040> ※ 초대~4대:육군유도탄사령관(소장) ▸ 4대~10대: 육군미사일사령관(소장) ▸ 11대~현재: 육군미사일전략사령관(중장) ||
||<-5><bgcolor=#000040> ※ 관련 직위 둘러보기 ||




파일:제27보병사단 부대마크.svg
대한민국 육군
제27보병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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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91919><bgcolor=#ff0000> 파일:대한민국 육군 및 해병대 소장.svg ||
||<bgcolor=#F08080,#5c6169> 초대
이형석 || 2대
김봉철 || 3대
김계원 || 4대
정래혁 || 5대
이치업 ||
|| 6대
박경원 || 7대
김동수 || 8대
전부일 || 9대
안광영 || 10대
이준학 ||
|| 11대
임지순 || 12대
나희필 || 13대
윤흥정 || 14대
최영식 || 15대
김선일 ||
|| 16대
권영각 || 17대
정진권 || 18대
정순현 || 19대
김찬기 || 20대
편동수 ||
|| 21대
윤인하 || 22대
편장원 || 23대
양상태 || 24대
오형근 || 25대
김현수 ||
|| 26대
이풍길 || 27대
김승광 || 28대
김기성 || 29대
김군식 || 30대
이명구 ||
|| 31대
하정열 || 32대
이승우 || 33대
김인동 || 34대
전인범 || 35대
이진원 ||
|| 36대
김종태 || 37대
김정수 || 38대
허강수 || 39대
정해일 || 40대
정진팔 ||
|| 41대
민인기 || 해체 ||





파일:이진원 소장.jpg}}}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83년 ~ 2015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9기
최종 계급
소장
최종 보직
육군미사일사령관
주요 보직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
제27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전력기획처장
합참 전력분석과 기동전력담당
합참 전력계획과 지상전력담당
제7보병사단 포병연대장
제11보병사단 포병연대 제55포병대대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육군 육군미사일사령관을 끝으로 소장 계급으로 예편했다.

2. 생애[편집]


충남 공주시에서 출생해 대전고등학교(58회), 1983년에 육군사관학교(39기)를 졸업하고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 제27보병사단장 등을 역임하였다. 굉장히 빡센 FM적인 군인으로, 간부들에게 설령 가정사에 문제가 있어도 임무가 우선임을 강조할 정도였다.[1] 또한 육군미사일사령관 시절 직무유기가 확실시되면 무조건 보직해임을 시킬 정도였다. 전임 사령관이자 육사 1기 후배인 김병주 장군때와 다르게 빡세다보니 김장군을 그리워하는 간부들이 많았다고 한다.

FM의 사례를 보면 다음과 같다.
  • 모부대 지휘관 시절 예하부대에서 당직근무간에 어떤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근무자들 징계는 물론 지휘관은 보직해임시켜 지휘책임을 물었다.
  • 미사일사령관 취임 후, 전임 사령관인 김병주 장군이 그해 사업비를 다 사용한것을 확인하였고(당시 4/4분기가 남음), 예산을 고르게 사용을 못했다는 명목으로 재정참모를 교체해버렸다.
  • 모 참모가 지휘관 강조사항을 하달하는데, ‘지휘관 강조사항이랍시고 무조건 예하부대에 전파하지 말고 규정, 지침, 법리적으로 문제 없는지 확인하고 전파해라.’ ‘지휘관 지침이 법과 규정을 초월할수 없다.‘라고 하면서 해당 참모에게 멍청한 소리 말라고 일갈했다.

또한 연대장과 사단장 시절 휘하부대에서 병사의 포상실종사고가 터졌는데 연대장시절에는 무사발견[2]으로 해프닝에 그쳤지만 사단장 시절에는 기어이 자살사고가 터지면서 중장진급이 물건너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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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이랬다가는 여론의 뭇매를 맞을 뿐 아니라 갑질로 인정되어 군생활이 끝난다고 보면된다.[2] 예하부대인 16포병대대 본부포대에서 터졌고 해프닝을 일으킨 장본인은 57포병대대로 전출되면서 일단락되었다. 해프닝의 자세한 원인은 당시 직속상관이자 사단장인 한홍전 소장(육사32기. 육본 인사참모부장 역임. 예비역 중장)도 모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