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바르 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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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사회적 갈등 치유의 수단으로 복지만큼 좋은 게 없다”
스웨덴의 제29대 총리.
1986년, 올로프 팔메 수상이 암살 되자 그 뒤를 이어 총리직에 올라 사상 초유의 현직 총리 암살 사건이라는 국가 위기 상황 속에서 사태 수습, 국민 통합과 사회 갈등 해소를 위해 노력했다. 재임 당시 스웨덴의 유럽연합 가입을 성사시켰다.
타게 엘란데르 총리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이후, 1965년에 처음으로 스웨덴 의회에 입성하여 교육부 장관, 주택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차례로 역임하고, 1982년부터는 부총리를 지내다 팔메 수상이 암살되자 총리로 취임했다.
2. 약력[편집]
- 1965. 스톡홀름 선거구 하원의원 (스웨덴 사회민주노동자당)
- 1969. 교육부 장관
- 1973. 주택부 장관
- 1982. 스웨덴 부총리
- 1983. 환경부 장관
- 1986.3. 스웨덴 총리 권한대행[1]
- 1986.3.13. 제29대 스웨덴 총리
3. 생애[편집]
4. 여담[편집]
- 절친이었던 올로프 팔메와 여러모로 비교되는 모습이 많다. 팔메는 스톡홀름의 부유한 가족 출신인 반면, 칼손은 어려서부터 가난한 환경에 학교가 끝나면 집 근처의 공장에서 8시간 이상 중노동을 했었다. 두 사람 모두 타게 엘란데르의 보좌관으로 발탁되어 정치에 입문했다. 공교롭게도 두사람 모두 총리 재임 시절 야당에게 정권을 내주었다가 재집권했다.
- 팔메와 칼손 두 사람은 사회적 배경이 달랐는데도 정치를 지적이고 전술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을 공유했다. 칼손은 팔메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특히 1980년 스웨덴 원자력 발전소 국민투표에 관한 투표 직전 당내 논의에서 '특급 해결사'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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