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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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1459년 ~ 1495년 2월 25일 (향년: 35 ~ 36세)
오스만어: جم سلطان
터키어, 영어: Cem

1. 개요
2. 생애
2.1. 제위 계승 분쟁
2.2. 망명 생활과 죽음
3. 매체에서


1. 개요[편집]


메흐메트 2세의 아들. 이복형 바예지트 2세와 제위 계승을 두고 내전을 벌였으나 패배하고 서유럽에 망명한 후 객사하였다.


2. 생애[편집]


메흐메트 2세가 총애한 아들로, 카스타모누를 거쳐 1474년 수도에서 비교적 가까운 카라만 산작[2]의 총독에 봉해졌다.


2.1. 제위 계승 분쟁[편집]


1481년 5월, 메흐메트가 후계자를 공표하지 않은채 사망하자 내전이 발발하였다. 대재상 카라만르 메흐메트 파샤는 콘야의 젬이 먼저 수도에 도착할 것이라 여겨 그와 결탁했는데, 바예지트를 지지하는 예니체리가 폭동을 일으켜 대재상을 시해하였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 대재장 이샤크 파샤는 코스탄티니예에 있던 바예지트의 어린 아들 코르쿠트 황자를 섭정으로 세우고 아마시아의 바예지트에게 전갈을 보냈다. 서둘러 수도에 당도한 바예지트는 전통에 따라 술탄에 등극하였다. 당시 부르사 부근 이네괼에 있던 젬은 바예지트가 파견한 아야스 파샤의 토벌군을 격파하고 부르사에서 술탄을 칭하였다.

젬은 바예지트에게 제국을 루멜리(유럽)와 아나돌루(아시아)로 양분하여 통치할 것을 제안했으나 바예지트는 "권력 앞에 형제 없다."고 응수하며 거절하고는 직접 대군을 모아 부르사로 진군하였다. 6월 중순, 부르사 동쪽의 예니셰히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배한 젬은 맘루크 왕조카이로로 망명하였다. 맘루크 술탄 카이트베이의 환대를 받은 후 젬은 오스만 황족 중에는 처음으로 메카를 순례하였다. 바예지트는 카이로의 젬에게 서신을 보내어 백만 아크체의 연금을 줄테니 왕위 주장을 철회하고 은퇴할 것을 종용했지만 젬은 거절하였다.

1482년 5월, 젬은 카라만 왕조의 후예이자 앙카라 총독인 카슴 베이와 결탁하여 콘야를 포위했으나 격퇴되었다. 앙카라로 철수한 젬은 재차 카이로 망명을 시도했으나 바예지트는 시리아로 향하는 길목을 차단하고 재차 연금을 대가로 예루살렘에 은퇴하도록 권유하였다. 하지만 젬은 제국 분할을 고수하며 이를 거절하였고, 바예지트 역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갈등하던 젬은 결국 몰래 배를 타고 로도스로 망명하였다. (1482년 7월) 바예지트는 도망친 젬을 기독교 세력들이 내세워 공격할까 늘 노심초사하였고, 따라서 그의 치세에는 유럽 방면 대규모 정복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2.2. 망명 생활과 죽음[편집]


젬은 로도스의 구호기사단을 거쳐 교황청으로 그 신병이 인도되었다. 교황청은 젬을 새로운 십자군을 일으키기 위한 구실로 이용하려고 했지만 바예지트 2세가 동생을 유럽에 묶어두는 대가로 매년 4만 두카트를 지불하기로 하면서 이는 무산되었다. 나중엔 매년 상납해야 되는 막대한 비용을 견디지 못한 바예지트가 "불쌍한 내 동생의 영혼을 육체의 감옥에서 해방시켜준다면(= 즉, 그냥 죽여준다면) 일시불로 몇배의 돈을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 배를 가를 생각이 없었던 교황에게 씹혔다.

인질로서의 가치는 충분해 로마에서 후한 대접을 받다가 콘스탄티노플을 노리고 있던 당시의 발루아 왕조 (프랑스) 왕 샤를 8세가 젬을 이용하기 위해 몸값은 그대로 교황이 받게 두는 대신 신병만 인수하겠다고 교황 알렉산데르 6세에게 제의했다. 교황이 요구를 받아들여 젬은 카푸아에 도착해 프랑스군의 손에 넘어갔다가 2월 25일에 사망했다.

알렉산데르 6세와 그 아들 체사레 보르자에게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는데 바예지트 2세와 맺은 협약을 샤를 8세가 깨는 상황을 막기 위해 달콤한 독약을 음료에 섞어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젬의 차남 셰자데 무라트는 기독교로 개종하여 로도스에서 머물다가 1522년 쉴레이만 1세가 섬을 정복한 후 교살되었다.


3. 매체에서[편집]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는 시라쿠사에 있는 NPC다. 이름은 끔찍하게도 제임스라는 영어식으로 바뀌어서 사람들이 "왜 중동식 옷을 입은 사람이 제임스인가?"하고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서도 잡혀 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퀘스트에 연관될 때 그런 소재가 많다. 조류를 발견하는 퀘스트에서는 "새처럼 날아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선 에덴의 조각선악과의 소유했던 사람으로 등장. 아버지 메흐메트 2세가 사용했던 걸 차지했다. 왕위 계승 다툼에서 패배한 뒤 에덴의 조각의 힘을 빌려 다시금 재기하려 했으니 에덴의 조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서쪽의 템플 기사단이 에덴의 조각에 대해 잘 안다는 정보를 얻고 구호기사단을 통해 로드리고 보르지아와 접촉한다. 에덴의 조각을 숨긴채 찾아간 그는 구호기사단에게 억류되었고, 실제 역사와 마찬가지로 가택 연금상태에 놓였다. 억류된 동안 그는 조카인 아흐메트와 연락을 주고 받았고 이로 인해 아흐메트는 템플 기사단에 대해 알게 된다. 로드리고는 그가 숨긴 에덴의 조각의 위치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 결국 찾기에 이르고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어진 젬은 버려지게 된다.

더 보르지아》에서는 루크레치아 보르지아와 이어질뻔 했지만 보르자 가문에게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차남 후안에게 암살당한다.

《이탈리아에서 살아남기》에서는 프랑스에 있다가 내전이 터져 대접이 시원찮아지자 로마로 돌아가던 중 주인공에게 호기심이 생겨 밀라노로 향한다. 거기서 주인공의 조언을 받아 루멜리아 지역의 반환과 차후 예루살렘에 진격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동로마의 지원을 얻어내고 준비를 위해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의 데스포테스인 레오나르도 3세가 있는 자킨토스 제도로 이동해 안전을 보장받는다. 1489년경 카라만의 베이인 카심과 둘카디르의 베이인 보즈쿠르트에게 사신을 보내 그들의 지지를 얻어내고 맘루크 술탄 카이트베이의 지원까지 받아내며 아나톨리아에 상륙해 내전의 포문을 연다. 이후 아나톨리아 동부를 장악하며 파디샤를 자처하지만 셀림 1세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중과부적으로 밀리며 죽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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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을 말한다.[2] 치소(治所)[1]: 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