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미슐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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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Félix_Nadar_1820-1910_portraits_Jules_Michelet.jpg
이름
쥘 미슐레 (Jules Michelet)
출생
1798년 8월 21일, 파리
사망
1874년 2월 9일 (향년 75세)

1. 개요
2. 생애
3. 역사관
4. 주요 저서


1. 개요[편집]


쥘 미슐레는 1798년 8월 21일에 태어나 1874년 2월 9일에 사망한 프랑스 낭만주의자이자 공화파였던 역사학자다.

자유주의이자이자 반교회주의자로, 19세기의 격동기를 살면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2. 생애[편집]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20살의 나이로 문학 학위를 따고 1822년에 생 바르브 롤랭 고교의 사학 교직에 임명되었다. 1827년에는 고등사범학교의 전신이 되는 에꼴 프레파라토아르의 교수로 이전한다.

1831년에 "세계 역사 개론" (Introduction à l'histoire universelle)을 출판하고 2년 뒤 미슐레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물인 "프랑스의 역사"를 출판한다.

1830년에 7월 왕정이 수립되고 그의 은사인 프랑수아 기조가 권력을 잡자, 미슐레는 국립 기록보관소의 소장으로 임명된다. 1848년에 2월 혁명으로 프랑스 제2공화국 수립했을 때는 교수직에 전념하고 타 문인들과 달리 정치에서 일보 물러서 있는다.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미슐레는 제2공화정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852년에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프랑스 제2제국이 수립되고, 이때 교회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을 이유로 꼴레주 드 프랑스에서 해임된다.

미슐레는 프로이센의 역동성을 동경해왔으나, 1870년 보불전쟁으로 인해 독일에 적대적으로 변한다.


3. 역사관[편집]


역사주의를 프랑스에 소개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에서 처음 생성된 역사주의[1]는 모든 가치, 이데올로기와 지식이 당시 역사적 배경, 환경과 불가피하게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역사철학적 개념이다. 역사주의는 가치의 상대성을 옹호하고 보편적인 잣대의 존재를 부정했다. 따라서 역사주의자들에 따르면 역사가가 과거를 현대 관점으로 보아 비판하거나, 역사가 일률적인 패턴을 따른다는 목적론적인 접근을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개별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 미슐레는 글을 다음 세대의 지배적인 사조인 실증주의 역사관에 비해, 때로는 과하게 시적으로 글을 썼다. 또 사료에 상징성을 부여하기를 즐겨해 본래 의미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4. 주요 저서[편집]


  • 프랑스의 역사 (1833~1867)
  • 민중 (1846)
  • 프랑스 혁명사 (1847~1853)
  • 르네상스 역사 (1855)
  • 여자의 사랑 (1859)
  • 여자의 삶 (1860)
  • 바다 (1861)
  • 마녀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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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오폴트 폰 랑케가 역사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독일에서는 19세기 중반부터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