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쿠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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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P 투어 세계 랭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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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드베리
1991.09.09. ~ 1992.02.09. (22주)

짐 쿠리어
1992.02.10 ~ 1992.03.22 (6주)

스테판 에드베리
1992.03.23. ~ 1992.04.12. (3주)
스테판 에드베리
1992.03.23. ~ 1992.04.12. (3주)

짐 쿠리어
1992.04.13 ~ 1992.09.13 (22주)

스테판 에드베리
1992.09.14. ~ 1992.10.04. (3주)
스테판 에드베리
1992.09.14. ~ 1992.10.04. (3주)

짐 쿠리어
1992.10.05 ~ 1993.04.11 (27주)

피트 샘프러스
1993.04.12. ~ 1993.08.22. (19주)
피트 샘프러스
1993.04.12. ~ 1993.08.22. (19주)

짐 쿠리어
1993.08.23 ~ 1993.09.12 (3주)

피트 샘프러스
1993.09.13. ~ 1995.04.09. (82주)


파일:호주 오픈 로고.svg
역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1991년
파일:독일 국기.svg 보리스 베커

1992년~1993년
파일:미국 국기.svg 짐 쿠리어

1994년
파일:미국 국기.svg 피트 샘프러스

파일:프랑스 오픈 로고.svg
역대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우승자
1990년
파일:에콰도르 국기.svg 안드레스 고메스

1991년~1992년
파일:미국 국기.svg 짐 쿠리어

1993년
파일:스페인 국기.svg 세르지 브루게라




파일:courier.jpg

제임스 스펜서 "짐" 커리어
(James Spencer "Jim" Courier)
생년월일
1970년 8월 17일 (53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출신지
미국 플로리다 주 샌포드
프로데뷔
1988년
신장
185cm (6 ft 1 in)
사용 손
오른손 (Unknown 백핸드)
ATP 싱글 랭킹
최고 1위[1]
ATP 더블 랭킹
최고 20위
개인전 통산 성적
506승 237패(68.1%)
개인전 타이틀 획득
23회
그랜드슬램 결과
호주 오픈 우승 2회 (1992, 1993)
프랑스 오픈 우승 2회 (1991, 1992)
윔블던 준우승 1회 (1993)
US 오픈 준우승 1회 (1991)
통산 상금 획득
$14,034,132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통산 커리어
3. 선수 소개
3.1. 주니어 시절
3.2. 현역 시절
4. 여담
5. 참고 링크



1. 개요[편집]


미국은퇴테니스 선수이다.

미국 테니스의 황금기였던 1990년대에 피트 샘프러스안드레 애거시에 이어서 3인자의 위치에 있었던 미국 테니스 선수. 나름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을 4회나 달성했고 세계 랭킹 1위 자리에도 58주나 있었던 1990년대의 강자였다. 하지만 당시에도 샘프러스나 애거시의 인기에 가려졌고 현재엔 대중의 기억에서 상당히 빨리 잊혀지고 있는 비운의 선수이다.


2. 통산 커리어[편집]



  • 개인전 통산 성적 : 506승 237패
  • 단식 통산 타이틀 : 23회
  • 복식 통산 성적 : 124승 97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6회
  • 상금획득 : 14,034,132 달러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4회 / 준우승 3회 - 118승 38패(승률 75.64%)
  • 호주 오픈 : 우승 2회(1992, 1993) - 35승 8패(승률 81.40%)
  • 프랑스 오픈 : 우승 2회(1991, 1992) / 준우승 1회(1993) - 40승 9패(승률 81.63%)
  • 윔블던 : 준우승 1회(1993) - 19승 11패(승률 63.33%)
  • US 오픈 : 준우승 1회(1991) - 24승 10패(승률 70.58%)
짐 쿠리어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호주
프랑스
윔블던
US
1988
불참
불참
불참
2라운드
1989
불참
4라운드
1라운드
3라운드
1990
2라운드
4라운드
3라운드
2라운드
1991
4라운드
우승
8강
준우승
1992
우승
우승
3라운드
4강
1993
우승
준우승
준우승
4라운드
1994
4강
4강
2라운드
2라운드
1995
8강
4라운드
2라운드
4강
1996
8강
8강
1라운드
불참
1997
4라운드
1라운드
1라운드
1라운드
1998
불참
2라운드
1라운드
3라운드
1999
불참
2라운드
4라운드
1라운드
2000
1라운드
은퇴
은퇴
은퇴

기타 대회
  • 마스터스 컵[2] : 준우승 2회(1991, 1992)
  • 마스터스 시리즈[3] : 우승 5회

3. 선수 소개[편집]



3.1. 주니어 시절[편집]


쿠리어는 플로리다 주 샌퍼드 출신인데 어릴 때부터 테니스가 좋아서 테니스를 시작하였으나 어릴 때부터 시작해서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랐을 때까지도 재능이 없는 평범한 선수라는 평가가 이어졌었다.

물론 안드레 애거시피트 샘프러스 같은 선수에 비교했을 때 얘기고, 쿠리어는 오렌지볼 16세와 18세부에서 우승할만큼 실력이 뛰어난, 유망주였다. 상대적으로 재능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쿠리어는 포기하지 않고 주니어 선수 시절에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미국의 유명한 테니스 선수 육성 기관인 닉 볼리티에리 테니스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았는데 당시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는 공교롭게도 쿠리어와 비숫한 나이대의 안드레 애거시마이클 창도 주니어 선수로 훈련받고 있었다.[4][5]

닉 볼리티에리는 기본기를 굉장히 중시하는 지도자로 유명한 선수를 여럿 길러낸 지도자였는데 재능이 부족한 쿠리어에게도 기본기를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쿠리어의 백핸드 스윙은 야구 스윙과 흡사한데, 여기에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쿠리어는 야구와 테니스를 병행하다가 테니스를 선택했는데, 야구 스윙을 잃기 싫다는 이유 때문에 야구 배트 잡듯이 백핸드 그립을 잡았다. 이 때문에 백핸드 스트로크가 짧아지는 경우가 잦았는데, 닉 볼리티에리는 쿠리어의 백핸드 그립을 바꾸는 대신에, 팔로우스루를 더 길게하도록 가르쳤으며, 백핸드로 오는 공을 돌아서 포핸드를 치는 인사이드-아웃 포핸드를 치도록 지도했다.

하지만 쿠리어는 딱히 발이 빠른 편이 아니었는데, 어느 주말 저녁에 볼리테에리가 주말 저녁에 아카데미를 둘러보던 중, 풋워크 연습을 하고 있던 쿠리어를 봤다고 한다. 한창 놀고 싶은 10대에 친구들은 다 노는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훈련할 정도로 끈기와 성실함이 뛰어났다. 쿠리어는 테니스 선수로서의 재능은 부족했지만 대신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는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있었고 비슷한 나이대의 애거시와 샘프러스, 마이클 창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는 동안에도 쿠리어는 훈련에만 충실하며 기량을 발전시켰다.

3.2. 현역 시절[편집]


쿠리어는 1988년에 프로에 뛰어들어 동년배의 경쟁자들보다 늦기는 했지만 1989년 10월에 스위스바젤에서 개최된 ATP 투어 바젤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3위로 대회 1번 시드를 받은 스테판 에드베리((스웨덴)에게 3-2(7-6, 3-6, 2-6, 6-0, 7-5)로 역전승하며 첫 ATP 투어 남자 단식 우승을 달성했다.

쿠리어의 포텐이 폭발한 것은 1991년으로 쿠리어는 3월초에 개최되는 ATP 챔피언십[6] 시리즈 대회인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하며 마스터스 시리즈 남자 단식에서도 통산 첫번째 우승을 달성하였고 연달아 자신의 고향인 플로리다 주에서 3월말에 열린 마스터스 마이애미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마스터스 인디언 웰스 오픈에 이어서 연속으로 우승을 달성하였으며 5월엔 그랜드슬램 대회인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4위에 올라있던 안드레 애거시에게 3-2(3-6, 6-4, 2-6, 6-1, 6-4)의 역전승을 거두며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통산 첫번째 우승 겸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통산 첫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게다가 쿠리어는 6월에 열린 윔블던 남자 단식에서도 8강에 올랐고 이어진 마스터스 시리즈 대회들인 캐나다 마스터스 남자 단식과 마스터스 신시내티 오픈 남자 단식에서 연속해서 4강 진출, 8월말에서 9월초에 개최된 US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8강전에서 세계 랭킹 6위이던 피트 샘프라스(미국)을 3-0(6-2, 7-6<7-4>, 7-6<7-5>)으로 격파하는 등 승승장구하여 결승까지 올라갔으나 결승에선 세계 랭킹 2위이던 스테판 에드베리(스웨덴)에게 아쉽게 세트 스코어 0-3(2-6, 4-6, 0-6)으로 패하면서 준우승했다.

그리고 10월에 열린 마스터스 스톡홀름 오픈 남자 단식에서도 4강 진출, 연말에 열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서도 준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8위인 안드레 애거시(미국)에겐 2-0(6-3, 7-5)으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전에선 세계 랭킹 7위이던 피트 샘프러스(미국)에게 세트 스코어 1-3(6-3, 6-7<5-7>, 3-6, 4-6)으로 역전패하며 준우승을 거두었다. 결국 1991년에 쿠리어는 세계 랭킹 순위에서 1위에 오르지 못하고 연말 세계 랭킹 순위 2위를 기록했는데 다음해인 1992년 1월에 열린 호주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있던 스테판 에드베리(스웨덴)를 3-1(6-3, 3-6, 6-4, 6-2)로 꺾으며 호주 오픈 남자 단식 통산 첫번째 우승을 달성하였고, 1992년 2월엔 처음으로 세계 랭킹 1위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쿠리어는 이렇게 오른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몇번 내놓았다가 되찾으면서 통산 58주간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있었고 2000년에 은퇴할 때까지의 통산 커리어 성적이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에서 우승 4회, 준우승 3회, 4강 진출 4회, 8강 진출 4회를 기록했으며 마스터스 컵 남자 단식에선 준우승 2회, 테니스 마스터스[7] 시리즈 남자 단식에선 우승 5회, 4강 진출 9번, ATP 투어 남자 단식은 우승 14회, 준우승 8회를 기록하였다.

통산 커리어 성적만 놓고 보면 쿠리어는 샘프러스와 애거시에 가려진 3인자였다. 게다가 성적만 샘프러스와 애거시에게 쿠리어가 밀린 것이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에서도 관중의 인기라는 면에서 쿠리어가 밀릴 수 밖에 없었는데, 어릴 때부터 재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쿠리어는 정말 기본기에 중점을 두고 꾸준한 훈련을 거듭하여 재능 부족을 극복한 케이스였으나 이렇다보니 쿠리어의 경기 스타일도 묵묵히 성실한 플레이였고 말 그대로 역대 최고라고 평가받는 서브 앤 발리 실력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샘프라스나 야성적인 화려한 외모와 재능이 넘치는 기량으로 경기를 하던 애거시와 비교하면 관중에겐 쿠리어의 플레이는 밋밋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력한 포핸드를 앞세워 인사이드-아웃 포핸드로 상대방의 백핸드를 공략하고, 베이스라인 중앙에서 포인트를 통제하는 쿠리어의 게임 스타일은 현대 테니스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렇다보니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올랐을 때조차도 쿠리어는 특별히 특출난게 없는 평범한 선수라는 혹평을 들었는데, 쿠리어는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완성해낸 엄청난 정확도의 포핸드 스트로크라는 주무기로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통산 58주나 차지하면서 이런 대중의 혹평을 극복하였다. 하지만 심지어 쿠리어에게 커리어에서 밀리는 미국 남자 테니스 선수 4인자였던 마이클 창조차도 고전적인 카운터펀처로 계속 방어, 방어, 방어를 반복하면서 상대의 멘탈을 흔든 뒤 카운터로 끝내는 끈질긴 진흙탕 승부에 강한 스타일이었던데다 거의 볼수 없는 175cm의 작은 신체조건의 동양계 선수라는 유니크함까지 마이클 창에게 더해져서 개성적인 면에선 쿠리어보다 확연히 관중들에게 인기를 끌 요소가 많았다.

이러다보니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과 세계 랭킹 1위 최장 기간 1위를 기록한 샘프러스,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과 최연장 세계 랭킹 1위 달성을 기록한 애거시, 최연소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 및 동양계 선수로 첫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기록한 마이클 창에 비해 쿠리어는 특징이 부족한 탓에 대중들에겐 빠르게 잊혀져가고 있다. 하지만 쿠리어는 재능이 넘치는 라이벌들에 비교해서 부족한 재능을 말 그대로 노력으로 극복한 인간승리의 위대한 테니스 선수이다. 그리고 이런 쿠리어의 인간 승리는 2005년에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것으로 보답받았다.


4. 여담[편집]




5. 참고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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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위 기간 58주 역대 12위[2] 2009년에 ATP 월드 투어 파이널로 명칭 변경.[3] 2009년에 마스터스 1000 시리즈로 명칭 변경.[4] 참고로 199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테니스 선수들인 쿠리어와 애거시가 1970년생, 샘프러스가 1971년생이고 창은 1972년생이다.[5] 여담으로 당시 볼리티에리 아카데미에서 가장 재능을 인정받던 것은 안드레 애거시였으나 엉뚱하게도 가장 먼저 그랜드슬램 대회 남자 단식 우승을 한 것은 17살에 불과한 나이였던 마이클 창이 1989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것이다.[6]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1990~1995년 사이의 명칭.[7] 현재의 ATP 월드 투어 마스터스 1000 시리즈 대회의 2000~2003년 사이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