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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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2. 작품세계
3. 여담



1. 생애[편집]


1952년 충청남도 연기군[1]에서 태어났다.

1971년 수도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이후 중퇴하였다.

1979년 '문학과 지성' 가을호에 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1994년 아이오와대학 초청으로 4개월간 미국에 체류하였다. 시 창작과 번역을 같이 해왔는데, 1996년 이제 시는 졸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무덤, 푸르고’라는 제목의 시집을 내고 이후 5년간 신비주의를 공부하였다.

1998년 시집 ‘연인들’을 펴내던 중 그간 신비주의 공부의 여파로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시작 활동을 한동안 중단하였다.

가족이 없었고, 서울의 3평짜리 고시원에서, 여관방에서, 밥 대신 소주로, 불면의 시간으로 죽음 직전의 단계까지 가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다시 시를 발표했다.

2014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경주시에 정착했다. 이후 재발과 입, 퇴원을 반복하였다.

2016년 새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발표했다.

2022년 11월 기거하던 요양병원에서 퇴원,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하였다고 한다.

2023년 11월 26일 포항 죽도성당에서 최승자 아녜스라는 세례명으로 영세식을 했다. 성경 필사를 하며 지낸다 한다.

198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시인으로서 황지우, 이성복과 함께 아주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다. 2010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 작품세계[편집]


한바탕 난장이 훓고 지나간 후의 권태와 상념에 대한 뒤돌아봄,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허무를 담은 시로, 우리나라 현대시인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인기 작가가 됐다. 작품세계가 끔찍할 정도로 어둡고, 자기 과거에 대한 노출이 적나라하다. 비극적 사랑에 의한 슬픔 혹은 인생의 덧없음에 의한 공허감, 자기연민 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이를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찢어발기며 냉소한다. 그런데 그러한 어둠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게 반전이다.

시집으로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 '쓸쓸해서 머나먼' 등을 냈고, 번역서로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 메이 사튼의 '혼자 산다는 것' 등을 냈다.


3. 여담[편집]


2021년 세상을 떠난 래퍼 아이언의 트위터 마지막 리트윗(RT)[2]이 최승자 시인의 구절(그래서 나는 언제나, 내가 믿지 않는 것들 속으로 천연덕스럽게, 어기적거리며 되돌아오는 것이다.)이었다.[3] 이제는 영영 고인이 되어 버린 아이언의 심경이 어떠하였는지를 헤아려볼 수 있어 의미심장하다.

산문집을 출간했다. 제목은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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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종특별자치시[2] https://twitter.com/choeseungja/status/579571199153344514 [3] 해당 트윗은 2015년 3월 22일 최승자 시인 봇 계정으로 게시된 문장이며, 원본은 1989년 출간된 시인의 시집 『기억의 집』에 실린 시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