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당태평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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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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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릉 · 치당태평송
연호
태화



致唐太平頌

1. 개요
2. 내용
3. 상세
4. 평가



1. 개요[편집]


신라의 28대 국왕 진덕여왕650년당고종에게 보낸 한시. 삼국사기동문선에 수록되어 있다.


2. 내용[편집]


대당 (大唐)은 큰 왕업(王業)을 개창하니
大唐開鴻業

높디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
巍巍皇猷昌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止戈戎衣定

전 임금 이어받아 문치(文治)를 닦도다.
修文繼百王

하늘을 본받음에 기후가 순조롭고
統天崇雨施

만물을 다스림에 저마다 빛나도다.
理物體含章

지극한 어짊은 해 달과 짝하고
深仁諧日月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으로 나아가네.
撫運邁時康

깃발들은 저다지도 번쩍거리며
幡旗旣赫赫

군악 소리 어찌 그리 우렁찬가!
鉦鼓旣鎤鎤

명을 어기는 자 외방(外方) 오랑캐여
外夷違命者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剪覆被天殃

순후한 풍속 곳곳에 퍼지니
淳風凝幽顯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祥瑞)를 바치도다.
遐邇競呈祥

사철이 옥촉(玉燭)처럼 고르고
四時和玉燭

해와 달은 만방을 두루 도네.
七曜巡萬方

산악의 정기 어진 재상 내리시고
維嶽降宰輔

황제는 신하를 등용하도다.
維帝任忠良

삼황오제(三皇五帝) 한 덕(德)을 이루니
五三成一德

길이길이 빛나리 우리 당나라.
昭我唐家皇[1]



3. 상세[편집]


특징은 진덕여왕이 직접 비단에 수를 놓고 를 지었는데, 시 내용을 보면 당나라를 높이 평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4. 평가[편집]


는 한국에서 남아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시이다. 그러나 외교적인 목적 때문이었다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고 당나라를 높이 평가한 것은 결점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당시 신라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진덕여왕 초기 백제가 침공하여 함락 된 성이 17개에 달했고, 북쪽에는 동맹을 거절하고 김춘추를 감금한 고구려가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백제에 원병까지 보낸 일본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등 신라는 사면초가인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를 보내기 전해에 군사 동맹이 체결되었고, 백제의 군대를 격파했다는 내용을 같이 보내는 등 단순히 아부 떠는 것이 아니라 신라의 국력과 동시에 당나라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라 할 수 있다.
[1] 원문은 昭我唐家光(소아당가광)이다. 이 시는 5언시로 2-3으로 끊어 읽어야 한다. 다른 모든 구절은 2-3으로 끊어 해석하였으나 해당 부분만 1-4로 해석을 하였다. 2-3으로 해석을 한다면 "우리에게 비추리라, 당나라의 빛이여!" 라는 뜻이 된다. 전후 문맥상으로 봐도 이 해석이 타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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