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디스탄노동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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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이후의 상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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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K 대원들
정당이라며... 그냥 당군이라고 보자

쿠르드어 : Partiya Karkerên Kurdistanê, PKK
영어 : Kurdistan Workers' Party
한국어: 쿠르디스탄노동자당

1. 개요
2. 역사
3. 현황
4. 기타


1. 개요[편집]


터키에서 활동중인 쿠르드족테러조직. 약칭 PKK.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극좌 성향의 단체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추구한다. 동남부 내전에서의 전투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인 게릴라 TV를 운영하고 있다.


2. 역사[편집]


1978년 창설 이후 폭력시위나 사보타주, 폭탄테러를 벌이는 식으로 터키에게서 분리독립하는것을 지향해왔고,[1] 서구에 있는 터키인들의 외교시설과 상점까지 공격하는 덕에 터키는 물론이고 서유럽과 미국에게 테러단체로 지정되었다.[2] 창설 초기에는 이념적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했으나, 1999년 지도자 압둘라 외잘란(Abdullah Öcalan)이 터키 당국에 체포된 뒤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연맹주의를 새로 표방하고 나섰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기 전이나 후나 터키 내의 급진좌파운동과 계속 연대하고 있다. 한편 이 민주연맹주의는 외잘란이 옥중에서 감명 깊게 읽은 미국의 좌파 운동가이자 생태 운동가 머레이 북친의 영향을 짙게 받은 아나코-사회주의적 사상이다.[3]

이슬람 국가의 등장과 함께 쿠르드족의 생존권이 위협받자 터키의 참전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며, 이라크, 시리아에 의용군을 파견하고 있는데, 이 과정이 유혈 시위로 번지는 경우가 많고,[4] 터키에서도 이슬람주의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IS보다도 더 밟아버려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면서 이 과정에서 IS에게 심정적 지지를 날리는 원흉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현재 PKK에 대한 입장은 PKK가 그들을 적대하지 않기에 당장은 절대악 다에쉬를 막아야 하니까 일단은 나쁘게 보지 않는 테러단체라면, 터키에서는 PKK나 IS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보는 인식이 강하다.

한때 식민지배를 겪은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목표와 활동 등이 일제강점기 무장독립운동 단체와 유사하지만 그 방식에 터키와 서방국가에서 사는 터키 국적 민간인에 대한 폭력과 테러도 포함되어 있어 쉽게 평가하기가 어려운 집단이다. 아무리 그 이상이 옳아도 그 수단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경우 결코 좋은 소리는 들을수 없다는 반증으로 볼 수도 있다. 당장에 국내에서조차 치하포 사건과 해방정국 당시의 백색테러 정황이 김구라는 위인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은 것만 봐도 '민간인에 대한 의도적 공격'이 도덕적 지탄의 기준점이 될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으로 현재 PKK는 폭력노선을 포기하고 평화노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다...인 줄 알았는데 IS의 수루치 테러를 빌미로 터키 경찰 및 군인들을 지하디스트와 협력했다는 이유로 살해하여 도발했다.# 터키 정부 역시 보복으로 IS와 PKK 양쪽으로 공습을 가하면서 PKK는 분노하여 다시 폭력노선으로 돌아갔다. 특히 터키 정부는 PKK와 타협하지 않고 멸망시키겠다며 강경노선을 펼치다보니 PKK도 필사적으로 터키군과 맞서고 있다. 수루치 테러 이후 터키에서는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PKK의 테러와 게릴라전으로 인해 터키 군경들의 사망 소식이 뉴스에 실리고 있는 중. 특히 PKK와의 전쟁 때문에 치안이 불안해지면서 세계 국가들이 터키로의 관광을 기피하게 되어 터키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도 침체된 상황이다.그 대신 그리스와 불가리아만 관광산업에서 입 떡 벌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터키에게선 심각한 골칫거리가 되었다.

2015년 9월부터 터키가 동남부에서 대대적인 소탕을 시작하면서 해당 지역에 강제이주 명령이 내려져 1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으며, 디야르바크르 구시가지, 마르딘도 누사이빈(Nusaybin)군, 시으르낙도 지즈레(Cizre)군, 학캬리도 등에 출입통제령이 발표되었다. 대체로 PKK와 정부군의 전투가 벌어지는 지역들은 민간인이 소개되어 빈 상태이지만 미처 피신하지 못한 민간인이나 오사로 인한 민간인 피해, PKK의 보복으로 인한 군경 및 공무원 피해자가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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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동남부 지역의 피해 현황.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다. 절대로 이라크시리아가 아니다.

2016년 3월 19일 PKK의 보복으로 터키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2016년 이스탄불과 앙카라에서만 각각 3차례, 2차례 PKK에 의한 테러가 발생했다. 8월에도 터키 도 이키 니산(İki Nisan)동의 경찰서에 차량 폭탄 테러를 일으켜 3명의 사망자와 71명의 부상자를 나오게 했다. 9월에 계속된 PKK의 테러와 게릴라전에 빡친 터키 정부는 공군으로 동원해 남동부의 학캬리 도에서 PKK에 대한 공습을 실시해 7명을 사살했다. 이로써 PKK는 지금까지 사망한 대원이 7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터키 측의 피해도 상당한데 현재까지 터키 군과 경찰이 600명이나 전사했고, 2배에 달하는 인원이 부상을 입었으며, 민간인 피해 역시 비슷하게 발생했다.

2017년 5월에는 터키측이 PKK 대원 29명을 사살했다. 하지만 교전중에 터키 군경 8명이 사망했다. 특히 터키의 남동부에는 통행 금지령이 발령되었다.

2017년 9월에 터키는 2017년 동안 PKK 대원 1800명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터키측은 작전을 수행하던 군인 126명이 전사했고 공무원 19명과 민간인 13명도 사망했다.# 터키의 고위 정보요원 2명도 PKK에게 납치되었다.#

이쪽도 옛날 아일랜드IRA나 다른 민족 독립 성향의 무장 반군 단체와 비슷하게 2010년대에서 2015년 사이 있었던 터키와 PKK간 평화 협정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온 쿠르디스탄 자유의 매(Teyrêbazên Azadiya Kurdistan, TAK)라고 부르는 과격 분리 세력이 있는데, 최근 2016년 2, 3월에 연속으로 있었던 앙카라 폭탄 테러, 50명 가까운 희생자를 남긴 16년 12월의 이스탄불 폭탄 테러, 같은 달 카이세리 폭탄 테러 같은 민간인 피해를 여의치 않고 집중적인 도심 내 폭탄 테러를 집중적으로 가하는 과격파라 비난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PKK 자체와 분리 되지 않는 동일 집단 뿐이라고 주장하나, 적어도 PKK 간부들은 본인들도 딱히 통제 할 능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TAK 당사자들도 PKK는 휴머니스트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며 별개 단체임을 주장한다. 물론 PKK 본인들이 자행하는 공격에서도 민간인 피해가 나지 않는건 아니다. 어쨋든 터키 당국 입장에서는 이들이 별개의 과격파던 아니던간에 PKK 자체의 소행으로 몰아가면 그만이고, 이러한 터키 내부의 공안 분위기에 일일히 딴지 걸며 반발할 사법부, 언론, 학계 등은 정치적 숙청으로 인해 마비되어 버렸으니 2017년 초 작금의 시점에서는 앞으로 전망은 더 나쁘면 더 나빠지지 다시 평화적으로 분쟁이 해결될 길은 소원해 보인다.


3. 현황[편집]


일각에서는 2016년 에서 모인 쿠르드족 부족 대표자들의 PKK 반대 성명 같은 예시를 들며 PKK에 대한 쿠르드족 사회의 대중적 지지와 쿠르드 민족주의에 대한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비판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있는데, 작금이나 과거에나 PKK와 터키 정부는 오랜 시간동안 공개적으로 내전급의 대치 상태에 있었고, 저러한 당장 존재 하는 공동체 지도자들은 당연히 터키 정부의 눈치를 봐야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반면 작금의 민주인민당과 거의 매 선거마다 강제 해산되어 이합집산되길 반복했던 좌파 쿠르드 민족주의라는 PKK와 이념적으로 행보를 공유했으며 터키 당국에서 항상 PKK의 2중대 취급을 받아 왔던 인민노동당(HEP), 민주사회당(DTP), 인민민주당(HADEP) 같은 일련의 쿠르드계 좌파 정당들은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전국적으로 5% 이상의 득표율을 유지하며 적어도 터키 내 쿠르디스탄 지역인 동남부에서는 우세를 유지해왔다. 참조 논문. 이를 고려하면 PKK가 터키 내 쿠르드 공동체 모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하는 것도 과장이겠지만, 대중적 차원의 지지가 아예 없다거나 미약하다는 것 또한 왜곡이다. 애초에 태생부터가 비합법적 반군 단체이고, 수십년간 의회 정치의 링에 들어가려던 시도도 번번히 차단 당했던 조직의 구체적인 민간 차원의 지지도를 몇개 성명만으로 평가 하는 건 문제가 있다.

터키 동부와 아나톨리아 내륙 일대가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지방이라 하나 이는 구 서부 아르메니아 지방에 해당하는 현대 동부 아나톨리아의 에르주름, 카르스 같은 지방에게 더 해당되는 말이지 쿠르드인 다수 지역인 동남부 아나톨리아는 예전부터 알레비를 비롯한 비수니파 소수 종파, 근대 이전에는 아예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시아파 쿠르드계 키질바시들도 많이 활동했던, 종교적으로 수니파의 확고한 우위가 자리 잡은지 그리 오래된 지방도 아니고, 쿠르드족 자체가 예지디교조로아스터교 같은 다른 종교를 믿다가 이슬람으로 서서히 개종되었던 민족이라 예전부터 대놓고 이교도들에 비하면 쿠르드인들은 그나마 무슬림이다(li gora gawirî Kurd misilman e).라는 속담마져 있을 만큼 애초에 종교적으로 경직된 지방이 아니다. 그리고 사실, 다른 이슬람권에서도 예전 남예멘에서도 사회주의적 국가 체제와 이슬람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공존했고, 이슬람 혁명기 중 호메이니의 이슬람주의 세력이 확고하게 승리하기 이전 이란만 하더라도 '이란 혁명의 선구자적 사상가'라고 불렸던 알리 샤리아티 박사 같은 많은 지식인들이 좌파적 이념과 무슬림으로서의 신앙을 상당히 유연하게 넘나들었던 만큼 이슬람교와 세속적 좌파 사상은 무조건 이분법적으로 보기만 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소련의 아프간 전쟁과 아랍권에서 친소 세속 군사 정권들과 이슬람주의 세력간의 싸움을 통해 형성된 현대의 관점에서는 크게 보면 서로 상극으로 나타나지만 마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해방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이 있는것 처럼 이슬람과 좌파 또한 백프로 절대적으로 공존 불가능한 이데올로기적 체계는 아니며, 쿠르디스탄의 경우 또한 그런 예외에 속할 뿐이다.


4. 기타[편집]


이들의 여성게릴라를 다룬 다큐가 2016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된 '장미의 땅: 쿠르드의 여전사'가 있다.



[1] 한때 레바논에 훈련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2] PKK초창기에는 이 지역에 널리 실시되고 있던 대지주제에 대한 소작민들의 반발로 인해 시작되었다. 때문에 이들의 테러대상은 주로 지주, 모스크였으나, 1980년 케난 에브렌의 쿠데타 이후 터키 정부가 급속히 우경화되고, 정부를 지지하는 대지주층에 대한 반발로 분리독립 주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역시 먹고살기 힘들면 칼을 잡는 법이다. 정작 쿠르드 해방을 주장하면서도, 이들이 제일 많이 피해를 끼친 이들은 역시 쿠르드인이기때문에 쿠르드인들도 대체로 PKK에서 떨어져나온 온건파와 터키의 좌파가 연합하여 결성한 민중민주당(HDP)은 지지하지만 PKK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3] 엄밀이 말하자면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에 생태운동을 접목 시킨 것이다.[4] 실제로 이들이 터키 당국과 맺은 휴전은 터키의 참전을 요구하며 터키 당국도 같이 공격하면서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