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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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서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 수도는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 이라는 의미의 바그다드. 1932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했고 영국이 들어오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고대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대부분 이라크 땅이다.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강인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모두 이라크 전국을 지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대 오스만 전선에 아랍인들을 이용하고자 무함마드의 자손이며 메카의 샤리프(شريف, 귀족)였던 후세인 이븐 알리(حسین بن علی)와 협상을 벌여 1915년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해주겠다는 '맥마흔 선언' 을 발표하고 아랍 반란을 이끌어낸다.[2]
2. 상징[편집]
2.1. 국호[편집]
정식 국호는 아랍어로 이라크 공화국(جمهورية العـراق 줌후리야트 알이라크)이고, 쿠르드어로는 كؤماری عێراق (코마리 에라크)이다. 아랍어 이름인 알이라크는 6세기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이라크라는 이름이 고대 수메르 문명의 도시이자 세계 최초의 도시로도 여겨지는 우루크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으나 검증된 바는 없어서 확실하지 않다. 다른 어원으로는 "저지대"를 뜻하는 중세 페르시아어 erāq에서 왔다고 한다. 아랍어로도 낮은 땅을 의미한다.
아랍어의 민간 어원으로는 "뿌리가 깊고, 물이 잘 고이고, 비옥하다"는 의미이다. 물이 잘 고이는 것, 혹은 땀이란 의미인 아-라-카 어근은 소주의 기원이기도 한 중동의 증류주 아락의 어원이기도 하다. 현재까지도 이라크 등 중동 각지에서 아락이 유통되고 있다.

또 다른 유명한 이명으로는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가 있다. 이라크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의 대부분이 발굴되는 중심지이고, 실제로 아주 예전부터 이 지역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불렀다. 일례로 예전 이라크가 독립하기 전 영국의 보호령으로써 메소포타미아 위임통치령으로 불렸고, 현재도 위의 사진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도 자국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한다. 아랍어로는 빌라드 알 라피딘, 즉 두 강 사이의 땅이라 부른다.
2.2. 국기[편집]
이라크 왕국 시기의 국기(1932~1959). 형태와 색 구성이 요르단의 국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이라크 왕실은 요르단과 같은 가문인 하심 가문이었으며, 요르단과 이라크는 혈맹+형제국으로 매우 우호적인 사이었다. 1958년 쿠데타로 이라크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된 현재에도 이라크와 요르단의 관계는 나쁘지만은 않다. 국기에 들어있는 7각별 두 개는 이라크의 주요 하천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상징한다.
파일:이라크 제1공화국 국기.png
압둘 카림 카심 총리의 쿠데타 이후에 들어선 제1공화국 정권(1959~1963)의 국기.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로 카심의 제1공화국 정권이 전복될때까지 약 5년밖에 사용되지 못 했다. 아랍국가의 국기이면서도 국기 중앙에 이라크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민족 상징인 태양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파일:이라크 국기(1963-1991).png
바트당 쿠데타 이후의 국기(1963~1991). 가로 적백흑의 삼색기 안에 초록색 별 3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국기 안에 들어간 초록색 별 3개는 원래 이라크의 아랍 연합 공화국(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연합 공화국) 참가 구상을 상징했었으나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초기였던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쓰였으며, 같은 시기 바트당의 쿠데타로 바트당이 집권했던 이라크의 이웃나라 시리아에서도 1960년대에 이 국기를 사용했었다.[4] 이 국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도 올림픽공원에 계양되어 있다.

걸프 전쟁 당시에 제정된 국기(1991~2004). 1990년 쿠웨이트를 상대로 걸프전쟁을 일으킨 와중에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91년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별 사이에 아랍어 문자인 알라후 아크바르를 추가해 새로 개정했으며 초록색 별의 상징도 바트당의 정당 이념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 중/후기까지 사용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물러난 이후 2004년 초기에도 잠시 쓰이기도 했었으며 그러다가 2004년 8월 5일에 문자 형태를 약간 바꾸었다.

이라크 전쟁,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쓰던 국기(2004~2008). 별 사이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의 글씨체가 고대 아랍어 문자인 쿠파체로 바뀌었다.
현재의 국기. 2008년에 바뀐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국기에서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속해있던 이전 야당인 바트당의 슬로건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 를 뜻하는 세 개의 초록색 별을 삭제하고 'الله أكبر (알라후 아크바르)' 라는 문구만 남기었다. 사실 후세인 정권 시기 억압받았던 이라크의 쿠르드족들이 별이 그려진 후세인 시대 국기 사용에 격렬하게 반대했었고, 후세인 축출 후 새로 집권한 이라크 정부 측에서도 후세인 잔재를 없애자며 2008년에 국기 개정을 추진해 결국 초록색 별 3개를 삭제하고 별 사이에 끼워져 있던 아랍어 문구만 남기고 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내 일각에서는 이 국기가 너무 밋밋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없는 깃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다, 원래 초록색 별이 그려진 이라크의 국기는 후세인 집권 이전에도 썼는데 왜 삭제를 했냐며 별 3개와 쿠파체로 수정된 아랍어 문구가 그려진 2004년 후세인 축출 이후 제정된 국기를 다시 부활시켜서 국기 안의 초록색 별의 상징을 새롭게 변경, 적용하거나, 알라후 아크바르 문구를 지우고 1963년에 제정된 별 3개만 그려진 이전 이라크 국기를 다시 꺼내서 쓰거나, 옛날 하심 왕정 시대때 쓰던 국기를 다시 국기로 제정해 쓰거나,[5] 이도 저도 아니면 1963년 이래 쓰던 기존의 적백흑 3색기 국기를 없애고 새로 국기를 제정하자는 의견들이 있다고 한다.

2004년에 제안되었던 새 이라크 국기. 이 새로운 국기는 초승달 내지는 월성기가 이슬람권이라는 이유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만들었는데 막상 이라크인들은 물론 이라크군이나 친미 정부 수반들조차도 아예 거들떠도 안 봐서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 실제로 이라크군 공식 행사에서 이 국기를 매달자 그 자리에 있던 친미 수반들이 벌떡 일어나서 당장 내리라고 항의했고 군인들도 노려보는 탓에 미국 측이 놀라 이 깃발을 내리고 종전 깃발을 할 수 없이 게양한 적도 있다.
이렇게 이라크인들이 반감을 보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로는 색배치가 좋지 못했다. 하얀색-파란색 배치가 적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기를 연상시키는 점도 한 몫 했거니와 파란 초승달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사실 파란 배경에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위구르, 혹은 이라크 투르크멘처럼 튀르크권에서는 꽤 흔한 편이다. 아예 1930년대 동투르키스탄의 국기처럼 파란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파란색은 튀르크족의 상징색처럼 쓰인 거라 아랍권 국가인 이라크에서 사용할 이유는 없다.
두 번째 이유는 초승달과 별이라는 디자인 자체가 월성기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튀르크 민족의 상징이다. 실제로 튀르크계 국가들의 국기로 주로 채택되는 만큼 서아시아의 아랍권 나라에선 초승달을 자국 국기 도안에 넣지 않는다. 오히려 오스만 제국 시절에 탄압받은 적이 있어 이 문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6]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저 "초승달=이슬람"일 것이라고 무지가 빗어 낸 미국의 실수였다. 그래서 이 깃발은 하루도 매달지 못한 채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한 가지 함정이 있는데, 저 도안은 (튀르크멘계) 이라크인 리파트 자디르지(رفعت الجادرجي, Rifat Chadirji, 1926년 12월 6일 ~ 2020년 4월 10일)가 디자인한 것이 미군정 공모에서 당선된 거다.[7] 건축가로 알려진 자디르지는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이었고 나중에 무신론자라고 선언한 다음 영국 런던으로 이민가서 살았다. 깃발을 만들 당시 파란색은 튀르크인, 노란색은 쿠르드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인터뷰하여 이라크 다수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들었다.
2.3. 국가[편집]

이라크의 국가 موطني(나의 조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명 시인 이브라힘 투칸이 쓴 시에 곡조를 붙인 노래이다. 이 노래는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다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 붕괴 후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편집]

4. 인문환경[편집]
4.1. 언어[편집]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쿠르드어는 쿠르드족 자치구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영국 지배의 영향으로 주요 외국어는 영어이다. 그외에 일부 지역에서 아르메니아어, 투르크멘어, 시리아어, 아람어 등의 소수 언어도 사용하며 지역 언어로 공인되어 있다.
4.2. 종교[편집]

1978년 CIA에서 작성한 이라크의 종교/민족 분포도로 북부는 수니파, 남부는 시아파가 다수며 사이사이 칼데아 가톨릭 등의 기독교인들이 섞여서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수메르 신화, 아카드 신화, 아시리아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같은 토착신앙이 주류였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는 페르시아인의 영향을 받아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존재했다.[8] 그러다가 이라크와 이란 모두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면서 두 나라 모두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가 되었다.
카셈 장군의 군부 및 사담 후세인의 독재시절에는 소수라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차별이 있을지언정 같이 공존했고 이슬람 과격파가 여기 시설을 공격하면 세금으로 복원하고 범인들을 응징하였다. 과격파들에겐 어차피 군부 독재자도 적이기에 후세인에게도 적이기 때문이었고 소수 종파를 배려하여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면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세인은 수니파 지도자고 이라크의 다수 종교는 시아파라는 사정도 있다.[9] 덕분에 집시들도 이라크에선 그럭저럭 지낼 만 했으며, 그 밖에 야지디교라든지 만다야교 같은 소수 종파들도 공존했다.
사실, 이런 것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고, 종교의 영향을 슬슬 벗어난 단계의 근대 서구 문화와 탈교권이 진행된 국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민교육을 통해 종교를 불문하고 국민의 역량을 통합해 국가역량을 키우고 분리독립의 싹을 자르며, 정교분리 및 정권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반대 세력의 성장 견제 등. 독일 제2제국의 비스마르크도 종교정당과의 투쟁이 독일 통일 자체보다 더 오래 애쓴 과제였고, 19세기까지의 프랑스는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획득한 영토와 말이 많이 다른 지방에 표준어를 보급해 국민을 통합하는 데 열심이었다. 독재정권의 생존 방편이기도 한 이 세속주의 정책은, 나름 탈종교 근대화 수순으로서도 기능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아직 일반 국민의 의식은 여전히 종교에 크게 의지했기에, 멀게는 이란 혁명 가깝게는 전쟁과 아랍의 봄과 터키 쿠데타 등을 거치며 세속주의를 추종하는 구 정권이 권좌에서 내려오자 이 지역 거의 모든 국가에서 종교에 심취하려는 역풍을 맞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이슬람화도 제동이 걸린 상태이기는 하다.
미군 철수 이후 시아와 수니파 이슬람교 이외 소수종교 및 소수 이슬람 종파들에겐 지옥이 열렸다.[10] 기독교의 경우 칼데아 가톨릭이나 아시리아 동방교회 같은 토착 종파가 있었고,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신도가 1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엔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계 이라크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이은 헬게이트가 없었다면 이라크 내 기독교 인구는 지금쯤 200만 명을 돌파했었으리라고 탄식하였다.
오죽하면 기독교 역사가 끝날 위기라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또한 대다수인 시아파[11] 가 득세하면서 골치를 겪고 있다. 2012년 와서 정치수반인 알 말리키(시아파)가 순니파인 알 무틀라크 부총리와 부통령인 알 하셰미 탄핵 및 구속을 이뤄냈고 순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인 지역에 간섭하면서 말이 많았다. 이라크 내 순니파에선 이란의 원조를 받는 시아파가 득세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내전 양상이란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일반 국민들간의 종파간 갈등은 미미한 편이고 도리어 옆동네 시리아 내전의 불똥이 튀어 외국에서 테러 단체들[12] 의 유입과 그로 인한 묻지마 차량 폭탄 테러로 신음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간에 일반 시민들은 테러하면 아주 학을 떼며 질색해하는게 일반적인 정서다. 2010년대에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고 중부 지역에서도 테러가 펼쳐지던 200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하도 테러 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다 보니 버스나 자동차도 목숨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타는 건 물론이고 축제 때도 테러가 벌어지는 판이었으며[13] 테러 때문에 치안도 덩달아 나빠져서 인프라 사업 재건도 지지부진했으니[14] 일반인들이 테러에 질색하는건 당연한 일이다.[15] 이때문에 이라크 및 이란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기독교 및 소수 종교인들은 꽤나 고생 중이다.
#그런데 2018년 12월 이라크 정부가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 기념일인 성탄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라크 내각은 성탄절을 일부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 국민이 쉬는 휴일로 정하는 국경일법 개정안에 승인했다. 사실 법 제정 전에도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자체적으로 성탄절을 휴일로 지켜왔다.
대중들은 이슬람에 미친 나라라고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와 테러가 있어 문제가 되지만 일단 이라크는 개종이 불법이 아니며 샤리아를 기반으로 한 법이 아닌 대륙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무신론은 불법이 아니다. 이라크는 국교가 없다.[16][17] 또한 여성들에게 히잡과 니캅과 같은 베일 강요도 하지 않는다. 애초에 교황 방문도 국가적으로 반기고 기독교도, 야지디, 만다야교 등 소수 종파의 의회 의석을 보장해주는 등 비이슬람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주는 편이다.
5. 자연[편집]
이라크는 주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에는 비옥한 충적 평원이 있으며 북부는 대부분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가장 높은 지점은 3,611m이다.
주로 저지대로 이루어진 이라크는[18] 고도가 300m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450m를 넘는 고지대는 전 국토의 15% 채 안 된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충적 평원지대는 기복이 적으며 자연 배수가 잘 안 되어 소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원 북쪽의 고원지대인 알자지라[19] 에는 높이가 1,500m 이상인 신자르 산맥이 있다. 이라크 서부와 남부 지역은 거의 전체가 광활한 사막 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북동부 고원지대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저지대 사이의 점이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 지역 일부에는 습지가 있는데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갈대로 수상가옥을 짓고 민물고기를 잡고 가축을 기르며 생활하는 등 일반적인 이라크인들과는 다른 생활 양상을 띈다. 이 남부 지역의 습지는 인근의 수메르 도시 유적들과 함께 이라크 남부의 아흐와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복합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고대에는 당대 기준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작물을 생산하는 비옥한 지역이었지만 현재는 고대부터 행해진 관개 농업으로 인해 일어난 지력 소모와 토지 염화로 사막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게다가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발원지가 위치한 터키가 댐을 건설하고 수자원을 독점하려 들고 있어 강의 수량도 부족해지고 수질 오염 문제까지 직면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후예라는 근본은 어디 안가는지 중동 지역에서는 농업 생산량이 제법 있는 편이다.
과거엔 아시아사자, 카스피호랑이, 아시아치타, 아라비아타조, 페르시아다마사슴 같은 동물들도 이라크 땅에 서식했었으나 현재는 멸종되었거나 이라크 땅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현재는 자고새, 수달,[20] 단봉낙타, 가젤, 카라칼, 전갈, 뱀, 메추라기, 멧돼지, 도마뱀, 표범, 불곰, 자칼, 늑대, 여우, 줄무늬하이에나, 들염소,[21] 토끼, 호저 등이 서식하고 있다.
6. 행정구역[편집]
파일:Iraqi_Governorates.png
1. 바그다드 주 (바그다드)
ㄴ 비스마야 신도시
2. 살라딘 주 (티크리트)
ㄴ 사마라
3. 디얄라 주 (바쿠바)
4. 와시트 주 (쿠트)
5. 마이산 주 (아마라)
6. 바스라 주 (바스라)
ㄴ 파우
7. 디카르 주 (나시리야)
8. 무탄나 주 (사마와)
9. 카디시야 주 (디와니야)
10. 바빌 주 (힐라)
11. 카르발라 주 (카르발라)
12 나자프 주 (나자프)
13 안바르 주 (라마디)
ㄴ 팔루자, 히트
- 튀르크 지역
ㄴ 신자르, 하트라
15 키르쿠크 주 (키르쿠크)
16 다후크 주 (다후크)
ㄴ 아메디
17 아르빌 주 (아르빌)
18 술라이마니야 주 (술라이마니야)
19 할라브자 주 (할라브자)
7. 정치[편집]

8. 경제[편집]

9. 군사[편집]

10. 외교[편집]

11. 이라크인[편집]

12. 문화[편집]
12.1. 음악[편집]
이라크의 음악은 메소포타미아 음악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음악은 고대 이집트의 음악과 마찬가지로 유물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지만 뚜렷하게 알 수는 없다.
이라크 마캄(المقام العراقي)이라고 하는 역사가 400년이 넘는 음악 장르가 유명하며 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이라크는 마캄의 대가들에 의해 훼손되지 않은 채로 전해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풍부한 마캄 유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라크의 마캄은 마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완벽한 형태로 여겨진다.
대중 음악은 20세기 때는 아랍권에서 제법 잘 나가는 편이었는데 2003년 이라크 전쟁의 영향으로 콘서트장과 클럽이 폐쇄되기도 하는 등 음악계가 타격을 받기도 했다.
아시리아인들의 음악도 알려져 있는데 현대에는 아시리아 민속의 멜로디와 팝, 클래식 음악 등 서구권의 음악 장르의 영향이 혼합되어 발전하기도 한다.
12.2. 음식[편집]
이라크 요리는 개방적인 지리적 특성으로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았는데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에 뿌리가 있고, 고대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영향도 어느정도 있다.
중세에는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의 중요성 때문에 이슬람 신도들이 이라크를 많이 찾으면서 요리의 발전 및 변화도 필연적이었으므로 지중해 지역 출신들로 인해 지중해식 식단도 흔히 볼 수 있다.
현대 이라크 요리는 대체로 아랍 요리를 기반으로 페르시아 요리와 터키 요리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마스코프
이라크의 대표적인 요리로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잉어 구이 요리 마스코프가 있으며 사문이라는 빵과 샤와르마도 많이 먹는다. 그리고 수메르 시절부터 맥주를 양조해 먹었다.[22] 게다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현재 이라크에도 파리다 라거 비어(Farida Lager Beer)라는 맥주 브랜드가 존재한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빵을 많이 먹지만 남부엔 습지가 있어서 쌀도 제법 나기 때문에 팀만 지자르나 캅사, 꾸지 같은 쌀 요리도 많이 먹는다.
12.3. 관광[편집]
기원전 4000년대까지 올라가는 매우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남겨놓은 건축물들이 많기 때문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현재 이라크 남부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며 이라크에 이미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남부에서 체류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서북부는 2017년까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라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장악되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현재 IS는 공식적으론 이라크에서 완전 소탕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IS 잔존 세력들의 활동이 빈번하고[23] 인프라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여전히 전후 혼란을 겪고 있기에 방문하기 위험한 곳이다. 아직까지 이라크는 여권법으로 입국이 금지된 국가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가지 않아야 한다. 다만 2017년 12월 IS와의 전쟁이 이라크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 테러와 유혈충돌도 이전보다는 많이 잦아들었고 쿠르드 자치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 전역을 이라크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데다 국가재건도 빠르게 가속화되는 등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루크, 우르, 니푸르, 라가시, 키쉬 등을 비롯한 고대 수메르의 도시가 이라크에 있고, 바빌로니아 및 신바빌로니아(칼데아)의 수도인 바빌론이나 아시리아의 아수르, 님루드, 니네베, 사산 왕조의 크테시폰. 중세 주요 도시 와시트와 사마라, 시아파 이슬람의 성지 중 하나인 쿠파. 그리고 수도인 바그다드에 아바스 왕조 당시의 유적지들이 있는데다 유구한 역사답게 이라크 박물관은 중동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다양한 유물을 소장한 박물관이다. 이런 배경들로 충분히 여행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및 다에쉬의 만행으로 인해 아시리아의 유적지, 하트라가 파괴되었고 다른 문화재들도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지금과 달리 걸프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했다. 걸프전 이후에도 방문이 힘들긴 했지만 요르단을 통하여 이라크로 방문할 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불안정한 치안과 분쟁 때문에 더욱 방문하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1월 이라크 전 지역을 당시 여행경보 3단계였던 '긴급한 용무가 아닌 한 되도록이면 귀국하라'는 여행자제로 지정했다. 2004년 4월엔 결국 이라크에 대한 방문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이라크 방문 시엔 반드시 외교부에 신고서를 제출토록 했는데 신고서 없이 방문한다 해도 관련 법률 미비로 현실적인 제재 방안이 없었다.[24] 그러다 2007년 8월 여권법 개정으로 여행금지제도를 정한 이후에서야 이라크 방문은 확실히 금지되었다. 해외의 경우,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2004년 초반까지는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에서 관광 등 목적으로 방문이 잠시 가능했다고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내전이 터지자 자국민을 즉시 대피시켰고 사실상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다.
지금은 여행금지국가지만, 이웃나라 시리아나 남쪽 먼 나라 예멘, 인도양 바다건너 소말리아[25] 같은 다른 아프리카, 중동권의 여행금지국가들로 지정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리비아처럼 상황이 그나마 많이 좋아진 편이며 이라크 남부는 리비아보다 더 안전하다. 2017년 12월 이후 현재 다에쉬들을 모두 축출하여 전쟁이 사실상 끝났고, 전후 수니파 이슬람교와 시아파 이슬람교가 권력을 두고 싸웠던 적대감정을 청산하고, 쿠르드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여행금지국가에서 해제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2021년부로 한국을 포함한 35개국가에 대해 도착비자 제도를 도입하여서 여행금지가 해제될 경우 여행이 수월해질 것이다. 특히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훨씬 안전하고 한국 여권으로는 무비자 입국까지 가능하다.[26] 참고로, 여행금지국가 중 여행금지 조치가 가장 먼저 해제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27]
12.4. 스포츠[편집]
역시 오일머니로 인한 투자도 있었고, 하여튼 과거에는 여러모로 축구 강호였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자국 사정도 그렇고 하여서 예전에 비하면 강호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그래도 아랍권 내에서만큼은 여전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대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그 밖에 클럽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역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 2번(1971, 1989)만 기록했다. 중국조차도 역대 이 대회 우승을 거둬들인 걸 보면 화려한 리그 강호라고 볼 수도 없으며,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과거 포항 스틸러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압바스 자심이 이 나라 출신이다.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질로안 하마드는 현재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뛰고 있다.
올림픽 메달은 1960 로마 올림픽 때 역도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 유일한 메달이다.[28]
13. 기타[편집]
- 한국군 비전투병이 파병되었던 아르빌은 쿠르드족 자치구역인 쿠르디스탄 지방정부(Kurdistan Regional Government)가 세워지면서 그럭저럭 안정을 찾았고 전쟁으로 박살난 이라크 프로리그도 열렸다. 이 지역이 연고지인 아르빌 FC가 한때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나오기도 했다.[30] 물론 쿠르드인 자치정부라 이웃한 터키가 종종 대포를 쏴대며 시비를 건다.
- 엑소시스트의 첫 부분에서 메린 신부가 참가한 발굴 현장은 이라크의 유적이다. 그리고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에선 왠지 몰라도 소련군의 일원으로 등장한다.[31] 국가별 특수 유닛 중에서 가장 흠좀무한 성능을 자랑하는 데졸레이터가 이라크의 유닛이라서 소련 플레이어들은 너도나도 이라크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 내무부 대변인 사드 만 이브라힘(Saad Maan Ibrahim)이 독일 ARD와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로 슬픈 사람이란 뜻인 'sad man' 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고 때마침 본인도 적절히 슬픈 표정을 지어줘서 거의 필수요소로 떠올랐다. 해당 프로그램 전부다..
- 이라크 바스라는 최고 기온이 58.8도였다.
- 2005년 이라크는 기존의 토요일~수요일에 근무하던 것을 일요일~목요일에 근무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금요일은 여전히 휴일인 대신 목요일을 평일로 바꾸고 토요일을 주말로 지정한 것. 이라크 역시 대체 휴일 제도가 있는데 이라크 현지의 주말에 맞춰 공휴일이 금요일이나 토요일이면 일요일을 대체휴일로 지정하며 새해 첫날만 적용된다.
14. 이라크 국적, 출신의 캐릭터[편집]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다.

[1] 꿩과에 속하는 새이다. 몸은 회색이고 부리와 다리는 붉은색이다. 등은 갈색이고, 옆구리에 진한 줄무늬가 있으며 눈에서 목까지 검은띠가 있다. 고지대에 서식하며, 겨울에는 저지대로 내려와 10여 마리씩 무리 지어 생활한다.[2] 이때 당시 후세인의 아들 파이살과 함께 행동했던 영국 정보원 로렌스의 일대기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여러모로 과대포장된 이야기다.[3]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라크 방문을 아랍어, 영어, 아람어, 쿠르드어 4개 국어로 환대하는 이라크 정부의 환영 현수막. 가려진 영어는 "YOU ARE ALL BROTHERS(당신은 모두의 형제입니다)"[4] 다만 이 국기를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써먹던 이라크와 달리 시리아는 1970년대 아사드 정권의 집권으로 이 국기를 폐지하고 이집트, 리비아와의 아랍 공화국 연방을 구상하고자 이집트, 리비아와 같이 노란색 매 문장이 들어간 국기를 쓰기도 했었고, 제4차 중동전 이후 이집트의 이스라엘 화해 정책에 격분한 나머지 1980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아랍 연합 공화국 시기의 별 두 개가 들어간 국기를 도로 제정해 쓰게 되었다.[5]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카다피 정권 이전인 1950년대, 1960년대 알 세누시 왕정 시대 때 쓰던 적흑녹의 3색기 국기를 다시 채택한 리비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만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카다피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60년대 알 세누시 왕정 시기에 쓰던 국기를 다시 꺼내썼고, 카다피 정권 축출 이후에 정치적 혼란과 정부의 분열, 군벌 무장단체들 간의 내전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으며 카다피 독재 정권과 카다피 축출 후 들어선 신 정부에 대한 불만과 반대급부로 옛날 왕정 시절에 대한 자국민들의 향수가 꽤 남아있는 리비아와는 달리 이라크는 현재 후세인 축출 이후에 정국 혼란을 거치면서 최근에 안정궤도로 접어들고 있는데다 하심 왕정 폐지 이후에 여러번의 쿠데타와 내분 등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면서 왕정 시대의 잔재가 싸그리 사라져버려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 분위기가 크게 남아있지 않아서 이라크가 리비아의 사례처럼 하심 왕정 시절때 쓰던 예전 이라크 국기를 다시 제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6] 자국 국기에 초승달, 별 문양을 넣어서 사용하고 있는 알제리나 리비아, 튀니지 같은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은 예외.[7] 애초에 이름부터가 튀르크 이름이다. 성씨인 차드르즈(çadırcı)는 천막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튀르크어이다. 튀르크멘어로 이름을 부르면 르팟 차드르즈(Rıfat Çadırcı) 가 된다.[8]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때는 오늘날의 이라크 땅을 포함한 비페르시아권 지역의 토착 신앙이 존중되었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대부분 출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경우였다.[9] 수니파가 국민 다수고 시아파가 소수며 그 소수 시아파의 지도자가 아사드인 시리아와 사바흐 왕가, 사우드 왕가, 하심 왕가 등 왕실 지배층과 국민들 모두 이슬람 수니파가 절대다수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가들과는 사정이 반대다. 단, 아사드 일가는 알라위파이다.[10] 2008년 쿠르드족의 야지디교도들이 살던 지역에선 야지디교인 소년이 이슬람 시아파 소녀를 사랑한다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넘치던 야지디 교도들이 가서 그 소녀를 때려 죽였다. 이걸 찍은 동영상이 해외로 퍼져 한국 방송에서도 나왔고 이에 대한 시아파 과격파들의 보복 공격으로 많은 야지디 교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기독교 외 다른 소수 종교들도 헬게이트가 열렸다.[11] 인구 60% 이상[12] 주로 알 카에다나 그 분파들이었지만 알 카에다 지도부가 다에쉬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별개의 단체가 되었다.[13] 2007년 아시안컵에서 이라크가 연이은 선전을 거두어서 축제분위기가 되었을때에도 테러가 터졌고 선수의 가족들도 테러의 마수에서 피해가지 못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다.[14] 물론 미군이 전후복구작업을 무능하게 진행하고, 부정부패로 인해 중간에서 빠져나가는 금액도 상당한 영향이 크지만 테러의 영향으로 치안이 불안해지다보니 인프라 공사가 줄줄히 지연먹은점은 결코 무시할수가 없다.[15] 무법천지를 기회삼아 먹고 살기 힘들고 치안공백인 지역에선 서로 청소하려고 덤빈다.[16] 이는 이라크가 이라크 왕국 시절부터 세속주의와 정교분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집권기에도 마찬가지라서 후세인은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했다.[17] 단 요르단과 사우디, 쿠웨이트 등 이웃한 아랍 군주국들은 이슬람 법계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채택했다.[18] 이라크라는 국명부터가 페르시아어, 아랍어로 낮은 땅, 저지대를 뜻한다.[19] 카타르의 국영 방송사가 아니다.[20] 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 일대에서 서식한다.[21] 가축 염소의 원종으로 알려져 있다.[22] 물론 맥아와 물, 홉으로 만드는 현재의 에일/라거 맥주와는 좀 다르고 걸쭉한 형태의 술이었다.[23] 하지만 시리아-이라크 국경 지대들을 장악하며 국가를 참칭하던 이전 2010년대에 비해 위세가 많이 약화되었고, 그마져도 이라크군이나 경찰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거나 사살되는 일들이 적지 않다.[24] 참조.[25] 이곳 역시 소말릴란드 지역의 경우 여행경보를 전부 해제해도 될 만큼 안전해졌다.[26] 정확히는 어디로 들어오든 유상 도착비자를 발급한다 기술되어 있다. 어디로 이라크에 입국하던 돈만 있으면 비자가 발급되니 사실상의 무비자 정책.[27] 단, 여행금지만 풀리지 최소한 여행자제-(시리아 국경 근처)출국권고는 발령될 것으로 보인다.[28] 참고로 한국은 4.19 혁명 등의 여파로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해 1960 로마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땄다.[29] 유럽의 네덜란드도 마찬가지로 지대가 낮아 네덜란드로 불린다.[30] 아르빌 FC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동네북 되면서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2011년에는 이라크 알 타라바와 같이 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31] 히틀러가 말소되어 나치 독일이 존재하지 않기에 렌드리스 항로 확보라는 이해관계가 있어 발발한 페르시아 침공이 없이 반영감정의 악화로 자연스레 친소 정권이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레드얼럿 세계관에서는 소련이 나치 독일의 포지션에 해당한다.[32] 나머지 두 국가는 인도 구자라트 주, 네팔.[33] 인게임명: Nauzley Shirley.[34] 코레류 게임 최초의 이라크인 캐릭터이자 자주포인 S-23 자주포로 등장.[35] 이벤트로만 얻을 수 있는 특전부대의 중형전차인 T-55 Enigma로 등장.[36] 정확히는 루시의 본체인 고대의 왕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