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노노 니이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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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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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묘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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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후






레이제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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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유 후


이치조 후






산조 후


고이치조 후


고스자쿠 후






고스자쿠 후


고레이제이 후






고산조 후


시라카와 후


호리카와 후






호리카와 후


도바 후






스토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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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라카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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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바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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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토바 후


쓰치미카도 후






쓰치미카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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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리카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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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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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즈노오 후


고코묘 후


고사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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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겐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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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미카도 후






사쿠라마치 후


모모조노 후


고모모조노 후






고카쿠 후


닌코 후






고메이 후


메이지 후




근현대


메이지 후


다이쇼 후


쇼와 후


아키히토 후






나루히토 후






1. 개요
2. 생애
3. 가계


1. 개요[편집]


高野 新笠(たかの の にいがさ)

제50대 간무 덴노의 모후. 원래 제49대 고닌 덴노의 후궁이었으나, 아들이 황태자가 되면서 '황태부인'(천황의 생모)이 되었다. 사후 황태후태황태후로 추존되었다.

본시 '야마토(화, 和)씨'였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가바네'(姓, 성)와 합쳐서 '야마토노후히토 니이가사'(和史新笠)였으나 아버지인 '야마토노후히토 오토쓰구'(和史乙継)와 함께 '우지'(氏, 씨)로 '타카노'(高野), '가바네'(姓)로 '아손'(朝臣, 조신)을 받아 정식명칭이 '타카노노아손 니이가사'(高野朝臣新笠)가 되었다. 어머니는 '하지노스쿠네 마이모'(土師宿禰真妹)였는데, 마이모는 훗날 정1위의 관등과 '오에'(大枝)의 '우지'(氏) 및 '아손'(朝臣)의 '가바네'(姓)를 받아 '오에노아손 마이모'(大枝朝臣 真妹)가 되었다.

화풍(和風) 시호는 '아메타카시루히노 히메노 미코토'(天高知日之子姫尊, あめたかしるひのこひめのみこと)였다.


2. 생애[편집]


(延曆八年冬十二月戊辰朔) 乙未, 皇太后,高野新笠. 崩. (중략)

(明年正月戊戌朔辛亥) 上諡曰-天高知日之子姬尊.

壬子, 葬於大枝山陵.

皇太后, 姓和氏, 諱新笠.和氏, 百濟武寧王之子-純陁太子之裔也. 居大和國城下郡大和鄉, 因地制姓也. 贈正一位-乙繼之女也. 母-贈正一位-大枝朝臣-真妹. 后先, 出自百濟武寧王之子-純陀太子. 皇后, 容德淑茂, 夙著聲譽. 天宗高紹天皇龍潛之日, 娉而納焉. 生今上桓武帝, 早良親王, 能登內親王. 寶龜年中, 改姓為-高野朝臣. 今上即位, 尊為皇太夫人. 九年, 追上尊號, 曰-皇太后. 其百濟遠祖-都慕王者, 河伯之女感日精而所生. 皇太后, 即其後也. 因以奉諡焉.

엔랴쿠 8년(789) 12월 28일, 황태후 타카노노 니이가사이다가 돌아가셨다. (중략)

(이듬해 정월 14일,) 시호를 올려 아메타카시루히노코히메노미코토라고 하였다. 15일, 오오에야마(大枝山) 능에 장사지냈다.

황태후의 성은 야마토(和)씨이고, 휘는 니이가사(新笠)이다.야마토씨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예이다. 야마토국 시키시모군 오오야마토향에 살아서, 그 땅(의 이름)으로 인하여 성씨를 만들었다. 증 정1위 오토쓰구의 딸이다. 어머니는 증 정1위 오오에노아손 마이모이다. 선조는 백제 무령왕의 아들 순타태자로부터 나왔다. (중략) 그 백제의 먼 조상 도모왕이라는 사람은 하백이 태양의 정기에 감응하고 낳은 이이다. 황태후는 즉 그의 후손이다. 이로 인하여 시호를 받들었다.

속일본기》 <간무 덴노조>#


백제를 중흥시킨 명군 무령왕의 후손으로 전하며, 아버지는 타카노노아손 오토쓰구(高野朝臣乙継/弟嗣)[1]이다. 도래인 가계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계보 등은 전하지 않는다.

《속일본기》에 따르면 제49대 고닌 덴노가 즉위하기 전에 혼인했다고 하며, 용모가 덕스럽고 정숙하여 일찍부터 명성을 드러냈다고 한다. 고닌 덴노는 본래 할아버지 대에 계승권 다툼에서 패배해 천황 계승이 어려울 것이라 여겨졌는데, 그 시기에 만난 게 니이가사였다. 정황상 니이가사가 백제계 도래인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고닌 덴노의 즉위를 도왔을 것으로 보인다.

고닌 덴노는 61세라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즉위한 고령의 덴노로, 황후 이노우에 내친왕(쇼무 덴노의 딸)을 폐위하고 타카노노 니이가사의 아들 야마노베 친왕을 황태자로 삼았다. 이는 후지와라 집안이 야마노베 친왕을 밀었기 때문인데, 백제계 도래인 출신이었기에 반대가 많았지만 당대에 권력을 쥐고 있던 후지와라 가문이 밀어붙였다는 점 때문에 가능했다. 처음엔 칭호가 후궁을 뜻하는 '부인'(夫人)이었으나 이때부터 '황태부인'(皇太夫人)으로 격상되었는데, 사실상의 정실임에도 황후는 되지 못한 애매한 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간무 덴노는 치세 기간 동안 백제 부여씨 왕족의 후손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내고, 이들에게 5위 이상의 관위를 내리거나 중앙과 지방의 주요 관직에 임용하였다. 이는 간무 덴노의 혼인관계에서 후지와라 씨족 못지않게 백제계 도래인들이 많은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즉위 후 간무 덴노는 도래계 혈통 때문에 출신 문제에 민감했다. 간무 덴노는 《일본서기》의 천손강림 신화와 비슷한 고구려 및 백제 건국 신화까지 거론하면서 이들도 하늘의 자손이니 문제없다는 왕권신수설을 내세웠다.

일본어 위키백과에서는 백제계 도래인이라는 설이 근거가 없다는 식으로 서술했으나 이후 인정하는 것으로 수정되었다.


3. 가계[편집]


남편: 고닌 덴노(光仁 天皇)
장녀: 노토 내친왕(能登 內親王 , 733 ~ 781)
장남: 야마노베 친왕(山部 親王)
차남: 사와라 친왕(早良 親王 , 750 ~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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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지로 '타카노'(高野), 가바네로 '아손'(朝臣)을 사성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