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오카 하치만궁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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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토미오카 하치만궁
3. 사건 경위
4. 사건의 배경
5. 사건 이후


1. 개요[편집]


토미오카 하치만궁 살인사건 (富岡八幡宮殺人事件)

2017년 일본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 3명이 사망 1명이 부상한 사건으로, 공모자 였던 남동생 부부와 피해자인 누나가 사망했다.


2. 토미오카 하치만궁[편집]


사건이 발생한 토미오카 하치만궁은 도쿄도 고토구에 있는 신사로 1627년에 창건되었고, 현대 스모의 원류가 된 '칸진스모'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또한 연간 관광객 30만여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도 잘 알려졌다.

3. 사건 경위[편집]


2017년 12월 7일 심야에 토미오카 하치만궁의 21대 궁사[1] 토미오카 나가코(富岡長子, 당시 58세 여성)와 나가코 궁사의 운전기사일본도로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범인은 나가코 궁사의 남동생 토미오카 시게나가(富岡茂永, 당시 56세 남성)와 그의 아내 마리코(真里子, 당시 49세 여성). 시게나가는 도망치는 나가코 궁사를 쫓아가 뒤에서 목을 베고 가슴을 칼로 찔렀고,[2] 마리코는 인근 슈퍼마켓까지 달아난 운전기사를 쫓아가 상해를 입히고 도주했다.

부부는 범행을 저지르고 나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피해 일단 신사 경내로 도망쳤으나, 직후 시게나가는 서바이벌 나이프로 아내 마리코를 살해하고 자신도 왼쪽 가슴을 찔러 자살했다.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망한 나가코 궁사는 어릴 때부터 리더십이 있는 타입이었고, 궁사에 취임한 이후에는 노약자나 장애인 등 몸이 불편한 사람도 편하게 참배할 수 있도록 경내에 차도를 정비하는 등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가는' 하치만궁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고 한다.


4. 사건의 배경[편집]


시게나가의 범행 동기는 궁사의 지위 승계를 놓고 벌어진 남매 간의 갈등으로 알려졌으나, 근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과적으로 시게나가의 방종한 행실에 신사본청[3]과 토미오카 하치만궁의 갈등이 합쳐져서 빚은 참극이었다. 원래 시게나가는 30대였던 1995년에 아버지인 19대 궁사의 뒤를 이어 한때 궁사에 취임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참배객들을 모으기 위해 신사와 인연이 깊은 스모 관련 행사를 다수 개최하는 한편, 뒤로는 긴자의 고급 클럽에 다니거나 라스베이거스로 원정 카지노 도박을 다니는 등 방탕한 생활을 했다. 더군다나 그가 개인적인 유흥비로 사용한 돈은 신사의 자금을 유용한 것이어서 큰 문제가 되었고 여성관계로도 숱하게 물의를 빚었다. 신사 인근 주민들도 명색이 한 신사를 책임지는 궁사라는 사람이 저렇게 막나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다며 시게나가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고,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부친은 2001년에 시게나가를 해임하고[4] 다시 궁사직에 복귀했다가 2010년 고령으로 은퇴하면서 장녀 나가코를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그러나 신사본청에서는 대대로 여성 궁사를 금기시하는 관례를 내세워 여자인 나가코를 차기 궁사로 삼았다는 결정을 통보받고도 회신하지 않은, 즉 사실상 나가코의 취임 승인을 거부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토미오카 하치만궁의 궁사 자리는 공식적으로는 한동안 공석이었다. 이에 나가코 측도 변호사를 선임하여 본청 측과 협의를 시도했으나 대화는 평행선을 달렸다. 결국 참다 못한 토미오카 하치만궁 측이 2017년 9월 28일부로 신사본청 산하에서 탈퇴, 독립하면서 나가코가 정식으로 궁사에 취임했다.[5]

한편 시게나가는 궁사에서 해임된 것에 앙심을 품고 아버지의 복귀 당시부터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신사 관계자들 앞으로 괴문서와 협박편지를 보내기 시작하여, 2006년에는 누나 나가코에게 협박장을 보냈다가 체포된 전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시게나가의 협박 행위는 계속되었고, 특히 나가코의 궁사 지위 승계 문제를 놓고 신사 측과 신사본청이 갈등을 빚는 동안 아내 마리코의 명의로 신사본청에 허위 고발장을 보내는 등의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다가 신사의 고문 변호사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참다 못한 누나 나가코가 자신의 블로그에 시게나가의 비방문을 공개하면서 "나와 부모님에 대한 비방, 중상을 넘어서 망상으로 창작해낸 소설"이라고 비난하고, 동생에 대해서도 "혐오감 이상으로 어딘가 비정상적이었다."라고 언급했다. 또한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가코와 시게나가 남매는 중학교 시절부터 사이가 나빴고, 예전부터 수 차례 괴문서가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 일대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시게나가는 범행 직전에도 "나는 죽어서도 원령이 되어 영원히 저주하겠다"는 섬뜩한 문장과 함께 자신의 아들을 차기 궁사로 지명할 것을 요구하는 협박문을 학교와 신사 측 책임자들의 자택에 보냈으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전국 각지의 신사 관계자들과 신도들, 출판사 앞으로 누나 나가코를 비방하며 추방하라고 요구하는 협박편지를 무려 2800여 통이나 발송했다.


5. 사건 이후[편집]


피의자 시게나가와 공범으로 추정되는[6] 아내 마리코가 사망하여 사건은 불기소 처리되었다. 한편 사건 발생 이틀 후인 12월 9일 열린 책임간부 회의에서 권궁사[7] 마루야마 소이치가 궁사 대행을 맡기로 결정하고, 14일에는 나가코의 장례를 치렀다. 또한 12월 25일에는 신사 측에서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사건 이후에도 각종 제례는 정상적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사건 발생 시기가 하필이면 참배객이 몰리는 연말연시를 앞둔 시기였기 때문에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는 특히 인근 상인들을 중심으로 참배객 감소로 인한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고, 실제로 살인 사건의 여파로 인해 예년에 비해 하치만궁의 참배객이 약 30% 감소했다.

나가코 궁사가 사망한 이후 마루야마 권궁사의 대행 체제로 접어들었지만 한동안은 후계 문제로 잡음이 많았다고 한다. 마루야마 권궁사가 큰 탈 없이 대행 직무를 수행할 경우 그대로 궁사 직무를 계승할 수 있지만, 관계자들 중에는 시게나가의 아들을 지지하는 층도 있었기 때문에 궁사 자리를 둘러싸고 또다시 골육상쟁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2018년 6월 28일부로 마루야마 권궁사가 궁사로 정식 승격하면서 후계 논란은 일단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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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宮司. 신토의 신직(신관)중에서도 신사의 최고 책임자에 해당하는 직책이다. 불교로 치면 주지스님 정도의 위치.[2] 범행에 사용된 일본도가 부러졌을 정도로 심하게 공격했다고 한다.[3] 이세 신궁을 총본산으로 하는, 일본 전국의 산하 신사를 총괄하는 종교법인. 단 야스쿠니 신사나 교토의 후시미이나리타이샤, 닛코도쇼궁(日光東照宮) 등의 일부 대규모 신사는 '단립신사(単立神社)'라고 해서 신사본청 산하에 소속되지 않는다.[4] 부친도 시게나가의 막장스러운 사생활을 못마땅해 했지만 토미오카 하치만궁은 지역 주민들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편이기 때문에, 시게나가의 해임에는 부친의 의사에 더해 지역 주민들의 부정적인 여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5] 이런 여성 궁사 금기의 관례 때문에 신토 내부에서는 왕실 이상으로 심각한 후계자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재 신사들의 현실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으며, 심지어 나가코는 생전에 성희롱 피해를 호소한 일도 있었다. 또한 신사본청 문서에도 언급되어 있듯 신사본청 자체도 산하 신사들에게 공포정치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 사정이 상당히 복잡하다고 알려졌다. 이런 일련의 정황으로 볼 때 유명 신사에 속하는 토미오카 하치만궁이 신사본청에서 탈퇴한 데는 나가코의 취임 승인 문제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본청 측의 내부 사정도 적지 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6] 공모 여부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공범으로 단정할 수 없다.[7] 権宮司. 몇몇 큰 신사나 신궁에 있는, 궁사 바로 아래의 직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