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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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都) · 수도 · 최대도시


도쿄도
東京都
Tokyo Metropolis





도청 소재지
신주쿠구 니시신주쿠2초메 8-1
하위 행정구역
23구 26시 5정 8촌[1]
대륙
아시아, 오세아니아[2]
지방
간토
면적
2,193.96 km²[3]
시간대
UTC+9[4]
인구
14,099,993명[5]
인구밀도
6,425명/km²
GDP(명목)
$1조 426억(2019)[6]
1인당 GDP
$75,917(2019)
도지사

[[도민퍼스트회|
도민
]]

고이케 유리코
(小池百合子, 재선)
도의회
(12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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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석

30석

23석

19석

15석

1석

1석

5석

중의원
(25/46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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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석

8석

1석

참의원
(11/245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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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석

2석

2석

2석

1석

1석

상징
도화
왕벚나무
도목
은행나무
도조
붉은부리갈매기
지역번호
03, 042, 0422
ISO 3166-2
JP-13
도메인
.tokyo(.lg).jp[7], .toky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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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3. 지위
4. 명칭
5. 역사
5.1. 전후 인구 추이
6. 지리
8. 도시 구조
8.1. 난개발 문제
9. 행정구역
9.1. 변천사
9.2. 행정구역 일람
9.2.1. 도쿄도 구부 (통칭 도쿄 23구, 도쿄 특별구)
9.2.2. 타마 지역 (26시 3정 1촌)
9.2.3. 도쿄도 도서부 (2정 7촌)
9.3. 구부 지역과 타마 지역, 도서 지역의 차이
10. 스포츠
10.1.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
10.2. 야구
10.3. 축구
10.4. 농구
11. 정치
11.1. 국회의원
11.2. 도의회
12. 경제
13. 교육
14. 치안
15. 대중매체
17.1. 가상 인물
1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8K로 촬영한 도쿄의 모습[9]



NOTHING LIKE TOKYO[10]
도쿄도((とう(きょう(, Tōkyō-to)[11]일본의 실질적 수도이자[12] 최대도시이다. 혼슈 동부 지방인 간토(関東, 관동)에 위치한 도쿄 광역권의 핵심 도시이며 일본의 중심지이다. 예로부터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동경이라고도 했다.

도쿄도만 놓고 보면 인구는 약 1400만 명이며, 이 중 구 도쿄시 지역 23개 특별구의 인구는 약 970만 명이다.[13] 도쿄를 중심으로 일본 수도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근교 지역인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까지 포함하면 산출 기준에 따라 2020년대 기준 약 4350만 명까지 올라간다.[14]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수도권은 세계 최대의 교통 인프라를 형성하고 있고, 세계에서 다국적 대기업의 본사가 가장 많은 도시이기도 하다. 또한 도쿄는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15]

먼 과거에는 무사시노쿠니의 도시마군(豊島郡)이었지만, 11세기 헤이안 시대 후반부터 에도(江戸)[16]라고 불렸다. 전국 시대까지는 작은 해안 마을이었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 막부를 세우게 되었고, 간척과 함께 도시를 세우고 상업을 발전시키면서 일본의 핵심 도시가 되었다. 당대에는 계속 에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869년 에도를 일컬어 도쿄라 한다는 조서(江戶ヲ稱シテ東京ト爲スノ詔書)를 내려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2. 상징[편집]



파일:도쿄도 도기.svg


파일:도쿄도 문장.svg

파일:도쿄도 심볼마크.svg
도기(都旗)[17]
문장(紋章)
심볼마크[18]

3. 지위[편집]


도쿄도는 도쿄 도심 23구 외에 일부 위성도시와 근교 전원 지역으로 구성된 타마 지역이 혼재되어 있는데, 단순히 '도쿄'라고 하면 23구만 일컫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구'와 '시, 군'이라고 이름 붙은 행정구역이 혼재된 모습은 한국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25구로만 구성된 서울특별시보다는 안에 자치군이 포함된 광역시의 형태와 비슷한 모양새다.

행정구역상 '도쿄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의 23구에 해당하는 지역이 과거에는 도쿄부(東京府) 도쿄시(東京市)였지만 1943년 도쿄시를 폐지하고 도쿄부(東京府)의 이름도 도쿄도(東京都)로 개칭한 후 기존 도쿄시 산하 일반구들을 특별구(기초자치단체)로 격상시켰다. 그래서 오늘날 도쿄의 행정수반 직함도 시장(市長)이 아닌 도지사(都知事)이다. 제도적으로는 기존 도쿄시의 기능을 도쿄도와 각 특별구에 나눈 형태이며, 이 때문에 도쿄도지사는 타 부, 현지사와 달리 특별구 지역의 도시 계획 및 인프라 관리 기능과 같은 '시장'의 권한을 더 가진다. 특별구 이외의 시정촌은 타 지역의 시정촌과 동등한 지위다.

그 외에도 상당히 이질적이지만 배가 도쿄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도쿄도의 행정 구역 내에 포함되는 이즈 제도오가사와라 제도[19]가 있다. 도쿄에서 1800 km 떨어져 있고, 일본은 섬으로 주장하는데 국제적으로는 암초로 간주되는 일본 최남단 오키노토리시마 역시 도쿄도 행정구역에 속한다.[20]

일본 제1의 도시답게 도쿄도 기준 인구는 1400만 명 이상으로, 2020년 5월 역사상 처음으로 도쿄도 인구가 1400만 명을 돌파했고 인구 증가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도쿄 23구로 한정했을 때의 인구는 2020년 6월 기준 약 969만 명이고 면적은 628km²로, 서울의 인구 약 930만, 면적 605km²와 비슷한 면적과 사람들이 살고 있다. 단, 도쿄 23구가 아닌 도쿄도는 훨씬 거대하고 이용 가능한 면적 또한 도쿄 23구보다 훨씬 넓다. 시내에 폭 1km짜리 한강이 흐르고 도처에 산이 솟은 서울과는 달리 도쿄에는 지형적 장애물이 적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도쿄를 수도라고 규정한 일본의 법령은 없다. 이 때문에 '교토가 정식 수도', '교토와 도쿄가 둘 다 수도' 등 다양한 소수 의견들이 있으나, 결론부터 정리해보면 대내외적으로 도쿄가 일본의 수도로 취급된다. (다만, 일본 수도권정비법 2조에는 수도권을 도쿄도의 구역 및 정령으로 정하는 주변의 지역으로 정의한다.) 이 문제는 역사가 복잡하기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본사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 그리고 천황과 수도의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동양의 군주제에서는 군주가 거소를 옮기더라도 천도를 선언하지 않으면 그곳을 임시로 머무는 거처, 즉 행궁(行宮)으로 취급함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고대 일본에서는 과거 간무 덴노가 794년 거처하는 궁궐을 헤이안쿄(現 교토)로 옮기면서 특별히 천도를 선언한 일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간에서는 단지 천황이 지내면서 통치하는 곳이라는 이유로 수도라고 인식했다. 이런 느슨한 기준과는 별개로 헤이안쿄는 794년부터 1869년까지 1000년을 넘는 세월 동안 수도로 기능했기에 특별히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 문제는 군주제가 정립되어 천도에 어느 정도 의미가 생긴 메이지 유신 이후 1869년 도쿄전도(東京奠都)였다.

사실 도쿄전도 이전에도 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행행(行幸)이라는 명칭으로 천황이 거처를 잠시 옮기는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나니와(現 오사카)에 행행했다가 교토로 환행했다.[21] 얼마 뒤 에도가 안정되자 수도를 옮길 생각으로 '에도를 일컬어 도쿄라 한다는 조서(江戸ヲ称シテ東京ト為スノ詔書)'를 발표하고 도쿄행을 결정했다. 이후 사소한 이동은 있었으나 메이지 덴노 이후의 천황들은 주로 도쿄에서 지냈다. 교토가 수도가 아니게 되는가 하고 동요하는 교토의 시민과 관리[22]에게 메이지 덴노는 '교토는 여전히 천 년의 수도로 생각한다.'고 밝히거나, '천도'가 아닌 '전도'라는 표현을 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불만을 가라앉혔다. 또한 주요 국가 기관을 도쿄에 두면서도 법령으로 확실히 수도를 못 박지 않았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법으로 수도를 규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아직도 법률적으로는 공식적인 수도가 없다.

하지만, 국가의 상징인 천황을 비롯하여 황족이 도쿄의 황거에 살고,[23]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도 막부를 개창한 후 400년 이상 일본의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해왔으며, 각각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최고 기관에 해당하는 일본 국회의사당, 최고재판소, 수상관저와 정부 청사 및 외국 대사관들이 도쿄에 상주해 있는 등 엄연히 일본의 중심지는 도쿄이다.

일본의 일반적인 행정구역과는 달리 독특한 도쿄도와 23특별구를 설치한 것 등으로 도쿄가 일본의 실질적 수도라는 점을 행정적으로 반영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일반적으로 현 단위로 구성된다. 예외는 도쿄도, 오사카부, 교토부, 홋카이도로 도쿄도가 유일하게 도(都)로 구분된다.[24]쇼와 25년(1950) 법률 제219호 '수도건설법'에서는 이름부터 도쿄를 수도로 여기는 인식이 드러난다. 1956년 수도건설법이 폐지되면서 이어받은 쇼와 31년(1956) 법률 제83조 '수도권정리법' 역시 '도쿄도의 구역 또는 정령이 지정하는 그 주변의 지역을 일체로 한 광역'을 일본의 수도권으로 규정한다는 내용, 즉 '수도권'을 '도쿄도와 그 주변의 지역'이라고 지정한 것에서 '수도'를 '도쿄도'로 인식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입법, 사법, 행정청이 도쿄도 치요다구 1개 구에 다 모였다는 것[25]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도심 공동화 현상에 의해 주요 정치적, 행정적, 경제적 기능이 집중된 치요다구의 거주 인구는 적은 편이다. 대신 중앙 정부 사무를 광역권 단위 지국으로 분산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도쿄 집중 해소를 목적으로 사이타마 신도심을 건설하여 간토 광역권의 사무는 이쪽으로 대부분 이전하였다.


4. 명칭[편집]


한국식 독음으로 한자를 읽으면 동경이다. 동경(東京) / 도쿄는 모두 한 도시를 가리킨다.[26] 북경(北京) / 베이징, 남경 / 난징이 한 도시를 가리키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 공문서와 일상생활 등에서도 북경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베이징과는 달리 본 문서의 도시는 원어 발음인 '도쿄'가 가장 많이 쓰인다. 한자를 한국식으로 읽은 독음 '동경'은 상호나 중·장년층에서 비교적 많이 쓰이는데,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에선 "동경? 그게 어디야?" 하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방송에서도 도쿄 대신 동경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잦았지만, 원 발음을 살리는 쪽이 주류가 되어 2020년대 들어서 점차 빈도가 줄어드는 추세이다. 물론 도쿄, 동경 모두 표준어이다. #


5. 역사[편집]


간토평야의 대부분은 원래 바다였지만, 여러 강이 모이며 퇴적물이 잔뜩 쌓여 생긴 충적 평야가 넓어지면서 지금의 간토 평야가 되었다. 이 때문에 중세 정도까지만 하더라도 뻘밭에 습지가 많아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관동 지방에 중심지를 두었던 가마쿠라 막부후호조씨도 간토 평야를 피해 지금은 도쿄 근교의 산지를 낀 소도시인 가마쿠라오다와라에 자리잡았는데 이는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도쿄만 일대보다 사가미만 일대가 더 발달했고 이러한 지형이 방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율령국무사시노쿠니(武蔵国)의 도시마군(豊島郡)으로 역사 속에 간간이 이름이 등장했고 이미 7세기에 센소지가 건립되기도 했으나 근세 이전 도쿄(에도)는 습지가 가득한 일개 농어촌 깡촌이었고, 변방인 간토 지역의 중심지조차 도쿄가 아닌 구 막부의 고도(古都) 가마쿠라와 후호조씨의 본거지 오다와라였다. 그나마 15세기 오타 도칸이 이 부근에 에도성을 건설하긴 했으나 도쿄가 본격적으로 일본 역사의 중심지로 등장한 시기는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연 이후이다. 이 시기 간토 평야는 이미 충분히 퇴적되어 비옥하면서도 일본 열도에서 가장 넓은 평야 지대가 되었다. 열도의 중간 위치에 있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지만,[27] 지역민들이 호전적이고 독립적인 기질이 강한 데다가 과거에 바다였던 저지대 특성상 침수 피해가 잦아[28] 농업 산출량이 적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고 관개하여 일본의 중심으로 가꾸었다.

이에야스는 먼저 치요다 구에 에도성의 기반공사를 하면서 이곳을 중심으로 방사상(달팽이 모양) 수로를 건설하고 이 수로를 확장해 나가는 방식의 도시계획을 수립해 수문을 만들고 다리로 연결하며 강대한 방어력과 넓은 시장과 부속부지를 갖춘 도시로 개발해 이후 에도막부가 3대에 걸쳐 꾸준히 계획대로 에도를 건설한 끝에 3대째에 완성되었다.

도쿄도 일대는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8세기에는 인구 13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 성장하는데, 이는 동시대의 다른 수도를 능가하는 압도적인 인구 밀도였다. 인구만 보면 영국 하노버 왕조의 수도 런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수도 파리, 심지어 청나라의 수도 베이징마저 능가하는 수치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과 설명이 있지만, 학자들 다수는 고온 다습한 기후 조건 덕에 쌀 농사를 집약적으로 지을 수 있었고 상업이 발달했음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한 에도의 경우 참근교대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통해 인구를 유지한 측면도 있었다.

에도 시대에 수로 구조를 믿고 지나치게 조밀한 상태로 확장시킨 도시 구조가 메이레키 대화재를 불러왔다고 판단한 막부는 대화재 이후에는 소화반을 준비하고 곳곳에 방화공터를 설치하는 방식으로 화재에 대응할 수 있게 후속 조치를 갖추며 더욱 도시를 확대해갔다.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으로 대정봉환, 왕정복고로 천황의 권력이 강화되자 1869년 일본 황실은 에도를 '동쪽의 수도'라는 의미에서 도쿄(동경, 東京)로 개칭하고 궁궐을 도쿄로 옮겼다. 이때 정부는 천도를 명시하지는 않고 도쿄에 대비해 교토를 '서쪽의 수도'인 사이쿄(서경, 西京)로 칭했기에 명목상으로 도쿄와 교토 모두 일본의 수도였다. 하지만 일본 황실은 이때부터 즉위식 등 특별한 행사가 없는 한 교토에는 거의 체류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도쿄 1극 체제'가 형성되었다. 이어 요코하마-도쿄 철도 부설을 시작으로 항구 요코하마와 도시 도쿄가 일본 근대화의 중심축이 되며 인구는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광역 도시권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렇게 성장하던 중인 1923년, 규모 7.9~8.2인 관동대지진으로 대화재가 일어나, 목조 위주였던 건물들이 크게 손실되고 사망자 10~14만여 명이 발생하는 사상 최악의 재해를 겪었다. 피해는 일본 전체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고 잠시 최대 도시의 지위를 오사카에 뺏기기도 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더욱 근대적인 도시로서 재건되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에 도쿄 대공습이라는 무차별 폭격이 가해져[29] 재건되었던 도쿄는 또다시 수많은 사상자와 건물 손실로 잿더미가 되었다. 이렇게 거대한 타격을 두 번이나 받았기 때문에 현대 도쿄에는 과거 '에도'라고 불렸던 시기의 모습은 거의 남지 않았다.[30] 때문에 현재 도쿄내 유적이나 역사적인 목조 건축물들은 대다수가 현대에 짝퉁재건된 것이다.

현재 도쿄의 모습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일본이 경제 복구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현대적 건물들을 지어올리면서 나타났다. 버블 경제 시대에는 많은 빌딩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버블 이후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었고, 2000년대 이후 들어 미나토구 등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롯폰기 힐스, 도쿄 미드타운 등 현대식 마천루들이 건설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5.1. 전후 인구 추이[편집]


도쿄 대공습으로 급감했던 도쿄의 인구는 전후에 피난민들이 되돌아오고, 이후로도 이촌향도로 전국 각지에서 도쿄로 인구가 유입되며, 도쿄 올림픽이 개최된 1960년대 중반까지 급증했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인구분산을 위한 신도시 개발로 일본의 수도권인 간토의 사이타마, 치바, 가나가와로 인구가 유출되며 인구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도심 공동화 현상도 일어나 치요다구, 미나토구, 주오구 등 도심의 인구는 급감해 반토막이 났다. 그렇게 1990년대 중반까지 도심 인구는 감소하고 도쿄 전체 인구도 정체 상태였으나 90년대 말부터 도심이 재개발되고 도심 거주의 편리성이 재조명받아 도심 공동화가 끝나고 도심 회귀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도심의 인구가 반등하고 도쿄 전체 인구도 다시 급증해 1995년에 800만명 미만이던 도쿄 23구의 인구는 2010년에 895만명으로 증가하며 1965년의 889만 명 기록을 경신했다.

하지만 일본 인구학계에서 이를 일본의 고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젊은층들이 인프라와 일자리 때문에 도쿄로 몰려들지만 도쿄의 집세와 집값이 원체 비싸다보니 혼인 연령도 늦어지고 이 때문에 일본 전역의 출산율을 낮추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출산율 통계를 각 지역별로 보자면 실제 도쿄는 늘 최하위권에 위치해있다. 실제로 도쿄의 출산율은 1명대 초반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2022년 발표에 따르면, 26년 만에 도쿄 인구가 감소되었다. #


6. 지리[편집]


일본 혼슈 섬의 동남부에서 도쿄만을 통해 바다와 접한 항구도시이다. 도쿄가 수도라는 점에서 한국의 서울특별시의 요소에 빗대는 경우가 많지만, 지리적 조건은 한국의 도시 중에서는 부산광역시와 더 비슷하다. 큰 강 하류의 충적평야를 낀 항구도시라는 점이나 위도도 서로 비슷하고, 기후도 한반도 중부지방보다 훨씬 온화하고 서북쪽의 내륙 산맥에 가로막혀 겨울철에도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점도 같다.[31]

구부의 동부는 아라카와강과 여러 지류를 타고 형성된 충적 평야[32]이며, 구부의 서부와 다마 북부는 선상지, 다마 서부는 산지, 다마 남부는 구릉 지대이다. 그 외 도서 지역인 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는 화산섬이며 현재에도 화산 활동이 진행 중이다. 타치카와시 아래로 타치카와 단층이 있어 지진 가능성이 있다.[33]

도쿄도의 서쪽에 구릉 지대와 산지가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1만 7천 km² 넓이[34]간토 평야 위에 위치하기에 도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수도권은 지리적 제약 없이 확장할 수 있었다.

도시화뿐만 아니라 실제 면적도 넓어지고 있다. 바다를 접하고 있는 만큼, 도쿄는 에도 시대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간척이 되어와 현재 23구 면적의 약 1/5가량인 124km²가 해수면보다 낮다. 특히 현대는 도쿄항의 수로 확보를 위한 준설과 쓰레기 매립으로 계속 인공섬이 생겨나고 있으며 대표적인 곳이 오다이바이다.

평야 지역이지만 도 전체를 보면 서고동저로 지역 내 완만한 고도 차가 있는데, 고지대를 야마노테, 저지대를 시타마치[35]라고 한다. 크게 나누면 스미다강 기준 서쪽 절반, 동쪽 절반으로 고저가 나뉜다.

간척지를 비롯한 저지대는 지반이 약하고 수해에 취약한 약점이 있는데 이것이 큰 문제로 다가오게 된 경우가 바로 관동 대지진이었다. 지진 피해를 직격으로 맞은 도쿄 안에서도 저지대의 피해가 더 컸기에, 사후 지진 대비를 다지는 과정에서 도쿄 개발의 무게중심이 야마노테로 향하게 되었다.

200개가 넘는 세계 수도들 중 압도적으로 가장 지진이 많은 도시이다. 지진대에 위치한 도시야 전세계적으로도 많지만 도쿄는 3개 판이 충돌하는 지역에 위치한 세계에서도 얼마 없는 도시다.[36] 겐로쿠 대지진이나 안세이 에도 지진, 메이지 도쿄 지진, 관동 대지진과 같은 수도직하지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규모 7~8.5 범위의 지진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에 수도가 위치했음은 잠재적으로 매우 큰 부담이다.

일본이 지진이 많은 나라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지만, 도쿄는 일본의 다른 대도시보다 지진이 훨씬 잦고 대지진 위험도 훨씬 높다. 오사카와 나고야 등 다른 대도시에서는 한 달에 한 번도 지진을 느끼기 힘들지만 도쿄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지진을 느낄 정도이다.[37]

반면 지진 빈도와 별개로 대지진 위험도 측면을 놓고 보면 일본 해구보다는 사가미 트로프와 너무 가까운 게 가장 큰 문제이다. 단층 지진의 위험은 다른 지역도 안고 있지만 도쿄는 그보다 훨씬 파괴적인 해구형 지진의 위험까지 안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사카, 나고야 등도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지만 사가미 트로프발 관동 대지진 당시 도쿄처럼 도시 자체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파괴되는 정도는 아니다.[38] 더군다나 도쿄 이전의 수도였던 교토는 일본 내에서 비교적 지진이 적은 동네라 도쿄와 더 비교되는 측면도 있다.


7. 기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도쿄도/기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도시 구조[편집]


도쿄는 치요다구에 소재한 황거를 중심으로 방사상으로 확장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도시 계획상으로는 도심 3구(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와 7개 부도심(신주쿠, 이케부쿠로, 시부야, 우에노-아사쿠사, 긴시초-가메이도, 오사키, 임해 부도심)이 지정되어 있다. 이 중 1950년대에 지정된 3대 부도심 신주쿠, 이케부쿠로, 시부야는 그대로 야마노테선이 달리고 있고 시설 밀집도로 보아도 원 도심에 비해 별 손색이 나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야마노테선 연선 일대를 도쿄의 중심으로 보고 여기서 주요 철도 노선(도카이도 본선, 도호쿠 본선, 주오 본선, 소부 본선 및 핵심 사철)을 따라 지역 중심지가 들어서는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야마노테선을 중심으로 수도고속도로 및 순환 도로망[39]이 구축되어 있다.

현대의 도쿄는 크게 금융의 중심지인 오테마치와 산업 자본의 중심지인 마루노우치, 소매업의 중심지인 니혼바시긴자가 황거의 동쪽에, 관청가 가스미가세키와 나가타초가 남쪽에 위치하고 서쪽과 북쪽은 주로 주택지가, 남쪽의 오타구나 동쪽의 고토구, 에도가와구 등으로는 동네 공장(町工場)으로 대표되는 공업 지대[40]로 인식되는 게 보통이나, 21세기에 와서는 공장은 외국으로 많이 빠지고 공장 이전 부지에 오피스 빌딩이나 고층 아파트 건축이 활발하다.


8.1. 난개발 문제[편집]


파일:7269_3.jpg
파일:about-mokumitsu.jpg
도쿄도의 녹지 분포[41]
도쿄도의 난개발 지역[42]

인구가 밀집한 동부는 스프롤 현상 탓에 도시공학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는다. 도쿄도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국토 80%가 산지인 일본에서 드문 대평야인 간토 평야의 남단에 있는데, 도쿄 광역권은 이런 평야에 개발 제한 구역이나 녹지대 없이 끝없이 시가지가 이어진 형태이다. 자연 녹지는 대부분 하치오지시를 중심으로 한 서부 타마 지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시가지에서 가장 가까운 자연 녹지는 다카오산(高尾山)이다.

도쿄의 난개발 문제는 개화기 이후 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근대 도시로 발전하면서 나타난 부작용이다. 그나마 에도 막부 초기에 도쿠가와가 초기 정비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었으나, 19~20세기 수도가 된 도쿄가 급팽창을 할 때는 도시 공학이란 개념도 미미하여 무분별한 시가지 확장을 통제할 수 없었다. 여기에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일본인의 취향[43]이 결합하게 되어 용적률 낮은 건물들이 도시를 뒤덮었고 사회 간접 자본 관리가 매우 어려워졌다.[44] 서민 주거지는 아직도 낡은 목조 주택이 많다.

이러한 도시 구조는 자연재해나 공습, 화재 등에 매우 취약하다.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온 난개발은 이미 에도시대부터 빈번한 대화재를 야기해 왔다. 근현대 들어서도 관동 대지진, 그리고 2차대전 때 미군도쿄 대공습을 하자 시가지의 절반 이상이 불타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내었고[45], 현재도 수도직하지진이 일어난다면 매우 위험하다는 평을 받는다.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도 당국에선 목조 주택이 많은 주거 지역의 재건축 지원과 일부 블록 재개발, 재정비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과거 고도경제성장기 때는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오폐수와 생활하수, 썩은 공기, 넘쳐나는 쓰레기 등 환경오염으로 악명이 높았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도 도쿄의 공기질은 미세먼지와 스모그 등으로 좋지 않기로 유명했다. 물론 1960년대 말부터 환경을 개선하자는 운동이 널리 펼쳐지기는 했고, 2000년대 이후로 경유차에 대한 규제강화로 미세먼지나 스모그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46] 그렇지만 현재도 환경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라 도쿄 만은 여전히 구식 하수처리장의 문제로 인해서 똥물로 유명하다.


9. 행정구역[편집]



9.1. 변천사[편집]


지금의 도쿄도 지역은 폐번치현 이전에는 무사시노쿠니(武蔵国) 산하 도시마군(豊島郡),[47] 에바라군(荏原郡),[48] 가쓰시카군(葛飾郡),[49] 아다치군(足立郡) 일부,[50] 니쿠라군(新座郡) 일부,[51] 다마군(多磨郡)으로[52] 구성되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막부를 설치하면서 에도 일대는 막부 직할령으로 통치되었으며, 초기에는 에도성과 그 주변 지역을 관행적으로 지칭하던 것을 1818년 정식으로 경계(朱引)가 확립되었다. 다만 에도는 계속 그 경계를 넘어 확장했고 경계선도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하였다. 이 시기의 경계는 현대의 23구보다 한참 좁은 구 15구 정도에 해당한다.

1868년 에도의 지배권이 막부에서 조정으로 넘어가면서 첫 중앙행정구역으로 에도부가 설치된다. 동년 10월에 에도부를 도쿄부(東亰府)로 개칭하고[53] 청사를 설치하였으며, 이어 하부 행정 단위로 구가 설치되었다. 1869년~1871년의 기간 동안에 무사시노쿠니 중 지금의 도쿄도에 해당하는 지역은 도쿄부[54], 시나가와현(品川県)[55], 우라와현(浦和県)[56], 고스케현(小菅県)[57]으로 쪼개졌다. 1871년에 시나가와현, 우라와현, 코스케현 등이 폐지되면서 1872년에 도쿄부 산하 행정구역 단위로 도쿄시와 여러 군을 두었다. 1878년에 근교의 도시마군, 가쓰시카군, 아다치군, 다마군은 각각 기타토시마군/미나미토시마군, 미나미카쓰시카군/히가시카쓰시카군/가쓰시카군, 미나미아다치군/아다치군(사이타마현), 미나미타마군/히가시타마군/키타타마군/니시타마군으로 쪼개졌고[58], 1896년에 미나미도시마군과 히가시타마군이 통합하여 도요타마군(豊多摩郡)이 출범하기도 했다.

파일:東京15区1878年.png

파일:1886_Meiji_19_Japanese_Map_of_Tokyo,_Japan_-_Geographicus_-_Tokyo-meiji19-1886.jpg

1878년 도쿄 15구
1886년 도쿄 15구 지도

1889년 시정촌제의 시행과 함께 도쿄부의 시가지 15구를 도쿄시로 편성하였다. 도쿄시, 교토시, 오사카시 등 3대 대도시에 대해서는 현지사가 시장을 겸하는 등 일반시와 구분되는 특례가 도입되었다가 1898년 폐지하고 도쿄시청이 설치되었다.


파일:Tokio_Eingemeindungen_1932-1936.png
1930년대 도쿄 35구 대확장 지도

1932년 도쿄시 대확장 이전까지는 도쿄시는 황궁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지금의 미나토구, 주오구, 지요다구, 다이토구, 분쿄구, 고토구, 신주쿠구 동부 일대)에 국한되었으며 면적은 한국의 한성부 성저십리+사대문 안보다는 약간 좁았다.[59] 1932년 도쿄시가 대확장하였고[60], 1936년에는 기타타마군 일부 지역(지금의 세타가야구 서부 지역)을 도쿄시로 추가 편입하였다.[61] 도쿄시가 편입한 주변 군들은 도요타마군(豊多摩郡), 에바라군(荏原郡), 미나미카쓰시카군(南葛飾郡), 미나미아다치군(南足立郡), 기타토시마군(北豊島郡)의 전역 및 기타타마군(北多磨郡) 일부[62]이다. 이 중에 도요타마군, 에바라군, 마나미아다치군, 기타토시마군, 미나미카쓰시카군은 군이 통째로 도쿄로 편입되면서 폐지됐다.

1943년에 도쿄부를 도쿄도로 개편하며 도쿄시는 폐지되었고 기존의 도쿄시 35개구는 도 직할로 두었다가 1947년에 다시 23구로 통폐합하면서 자치권이 부여되는 특별구로 재편되었다.[63] 1943년 이전에는 도쿄시도 도쿄부 산하의 기초자치단체였다. 한국식으로 비유한다면 지금의 서울특별시 성북구가 '서울도 서울시 성북구'[64]였던 셈. 특별구가 된 이후에도 도쿄도와 인접 현 간의 사소한 경계 조정은 몇 번 이뤄졌다. 서울시에 비해서 인접 광역자치단체와의 경계 조정이 자주 이루어졌다. 참고로 가장 근래에 이루어진 경계 조정(도쿄도 마치다시 - 가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은 2016년에 실시했다. 해당 일본어 위키백과.


9.2. 행정구역 일람[편집]





파일:Tokyo_map.svg

일본에서는 지역에 따라 정(町, 마치, 초)과 촌(村, 무라, 손)의 독음이 다른데, 도쿄도 산하의 정은 '마치', 촌은 '무라'로 읽는다.


9.2.1. 도쿄도 구부 (통칭 도쿄 23구, 도쿄 특별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도쿄도 구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도쿄도 구부 지도.svg

일본 다른 도시들의 들은 전부 일반구인데, 도쿄 23구는 자치구이다. 23구는 각각 독립된 자치구로, 도쿄도 산하 시정촌을 포함하여 다른 도도부현의 시정촌과 같은 지위를 인정받기 때문에 한국의 서울특별시광역시처럼 구청장과 구의원을 구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다. 일본의 도시 중에서 시민이 자치구장을 직접 뽑는 것은 도쿄 23구가 유일하고, 23구 각 영문 표기도 Ward가 아닌 City다.[65] 도쿄도의 중심지이며, 일본인들이 특별한 언급 없이 '도쿄'라고 하면 이 23구 지역을 의미한다. JR 동일본에서도 '都区内パス'가 있는데 바로 여기서 따온 것이다.

1943년 도쿄부가 도쿄도로 개편되며 도쿄시가 폐지되었을 당시 도쿄시의 구는 35개구였으나[66] 1947년 3월 15일에 22개로 통폐합되었고, 같은 해 8월 1일 이타바시구에서 네리마구가 분구되어 현행 23개구가 되었다.

23구는 원래는 특별지방공공기관이었으나, 2001년 법 개정으로 보통지방공공기관이 되었다.


9.2.2. 타마 지역 (26시 3정 1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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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도쿄도 문장.svg파일:도쿄도 문장_White.svg 도쿄도의 구역


파일:도쿄도 도기.svg

타마지역
多摩地域
Western Tokyo


지방
간토
도도부현
도쿄도
면적
1,159.82㎢
인구
4,296,854명[67]
인구 밀도
3,700명/km²
한국으로 비유하면 시 지역은 광명시, 안양시, 과천시 등 인접 위성도시가 서울특별시에 속해 있는 격으로, 마치/무라 지역은 양평군경기도의 농촌 지역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서쪽으로 갈수록 산지와 녹지가 많아진다. 타마 지역 전체가 23구의 배후지인 셈이지만 다치카와, 하치오지 등의 도시들은 타마 지역 내에서 중심지 역할을 한다.

도쿄도 소속이지만 도쿄 23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행정적으로도 도쿄 23구와는 구분되고, 일상생활에서도 도쿄 23구와는 다른 지역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 지역은 본래 가나가와현이었다가 1893년에 도쿄에 편입되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도쿄의 상수원을 도쿄도 관할로 두기 위한 것이라는 설, 혹은 가나가와현과 함께 자유민권운동의 주요 거점이었던 곳이라 당시 일본 정부가 자유민권운동을 약화하기 위해 가나가와현에서 분리한 것이라는 설 등이 있다.


9.2.3. 도쿄도 도서부 (2정 7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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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청사 소재지
오시마 지청
大島支庁

}}} 오시마마치
大島町
니지마무라
新島村
고즈시마무라
神津島村
도시마무라
利島村
미야케 지청
三宅支庁

하치조 지청
八丈支庁

}}} 미야케무라
三宅村
미쿠라지마무라
御蔵島村
}}} 하치조마치
八丈町
아오가시마무라
青ヶ島村
(토리시마)[1]
(鳥島)

오가사와라 지청
小笠原支庁

}}} 오가사와라무라
小笠原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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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리시마는 어느 시정촌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도쿄에서 남쪽으로 수백~수천 km 떨어진 태평양 해상의 도서 지역인 이즈 제도오가사와라 제도도 행정상으로 도쿄도 관할이다. 이 섬들이 도쿄도로 묶인 이유는, 에도 막부 시기 이즈 제도의 항로가 대체로 행정구역상 이즈 반도와 이어져 있긴 했지만 경제력이 없던 이즈 반도보다는 에도(현 도쿄)와 교류가 더 활발했기 때문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즈 제도는 1868년 니라야마현에 편입된 이후 아시가라현, 시즈오카현을 거쳐 1878년 도쿄부로 이관되었다.


9.3. 구부 지역과 타마 지역, 도서 지역의 차이[편집]


같은 광역자치단체인 도쿄도에 소속되었지만 구 도쿄시에 해당하는 구부 지역과 근교 지역인 타마 지역, 그리고 도서 지역은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 이 지역들은 상술했듯이 도쿄 23구와 다른, 주소만 같을 뿐 완전히 별개의 지역으로 구분되는 경향이 크다.

대표적으로 전화 지역번호이다. 구부 지역 전역과 타마 지역 일부(고마에시 전역, 조후시 및 미타카시의 각 일부)만 지역번호 03을 쓰고, 타마 지역의 나머지 지역은 042 등 04xx 계열의 지역번호를 쓴다. 이를 한국의 가상 시나리오에 비유하자면, 서울과 접경하는 경기도 위성도시들이 서울특별도로 통합되었지만, 지역번호가 02로 전부 통합되지 않고 구 서울특별시 자치구 지역, 광명시, 과천시 전역과 하남시 일부, 고양시 덕양구 일부 정도만 지역번호 02를 쓰고, 고양, 구리, 남양주, 성남, 안양 등 나머지 서울특별도 산하 자치시 지역은 여전히 031을 쓰는 격이다.

광역 행정 기능이 완전히 도쿄도 본청으로 통합되지도 않았다. 타마 지역 시정촌 상당수는 상수도 업무를 도쿄도 수도국(서울로 치면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에 위탁하지만 일부 산하 시들은 자체적으로 상수도 시설을 운영한다. 상수도 인프라뿐만 아니라 도시가스도 도쿄 가스가 운영하지 않는 곳이 좀 있는 편. 오오시마 및 기타 섬 지역은 아예 다른 지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경기도에 비하면 광역 행정 기능이 광역 지자체 중앙(도청)으로 좀 더 통합된 편이다.


10. 스포츠[편집]



10.1. 올림픽 및 아시안 게임[편집]


도쿄는 아시아 최초로 하계 올림픽을 두 번 개최한 도시이다. 1964 도쿄 올림픽을 처음으로 개최하였다. 본래 1940년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려고 했으나 중일전쟁으로 개최권을 핀란드헬싱키로 뺏기듯이 넘겨졌고 그마저도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완전히 취소되었다. 1964년 올림픽을 개최하여 도쿄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가 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두 번째 유치에 성공, 아시아에서 최초로 하계 올림픽을 2번 유치에 성공한 도시가 되었다.[68][69]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1년 연기되어 2021년에 대회를 개최하였다.[70]

아시안 게임1958 도쿄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였다.


10.2. 야구[편집]


도쿄를 연고지로 삼고있는 프로야구 클럽이 두 팀 있다. 한 팀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이고, 또 하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둘 다 센트럴 리그 소속이며,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메이지진구 야구장을,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도쿄 돔을 홈 구장으로 쓰고 있다. 퍼시픽 리그 팀도 없었던 건 아니며, 치바 롯데 마린즈, 다이에이 유니온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도 도쿄를 연고로 한 적이 있었다. 그 중 다이에이 유니온즈는 팀 홀수 문제로 해체, 치바 롯데는 도쿄 스타디움이 마음에 안 든다고 구장 매입을 거절했다가 집이 없어지는 바람에 무연고 구단이 되었고, 홋카이도 닛폰햄은 도쿄에 오랫동안 지내면서도 워낙 관중이 안 모이자 마침 삿포로에 월드컵을 이유로 지은 실내 구장이 있어 홋카이도로 멀리 날아가며 도쿄 연고 퍼시픽 리그 구단은 소멸하였다.[71]

도쿄 돔은 일본 최초의 돔구장인데[72] 2006년과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동아시아 지역 조별 예선이 치러진 구장이기도 하며, 인기 가수의 공연장으로도 많이 활용된다. 일본프로야구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가끔씩 팬 확보를 위해 홈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73]
가스미가오카(霞ヶ丘)에 위치한 메이지진구 야구장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야구장 중 하나이며 일본 대학 야구의 성지로 여겨지는 장소다. 고시엔의 도쿄 지역 최종 예선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기에 일본의 야구 만화에서도 한신 고시엔 구장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경기장이다.

10.3. 축구[편집]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축구단은 J1리그FC 도쿄, J2리그도쿄 베르디마치다 젤비아가 있다. FC 도쿄와 도쿄 베르디는 도쿄도 쵸후시아지노모토 스타디움을 공유하고 마치다 젤비아는 마치다시의 마치다 시립 육상 경기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한다. 3개 구단 모두 23구 구내가 아닌 타마 지역에 있는데, J리그 출범 당시부터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의 특정구단 독점이 금지되었기 때문. 올림픽 이후에 카스미가오카 경기장을 재건축한 도쿄 신국립 경기장에 FC 도쿄가 이전해 오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현재 도쿄 신국립 경기장이 된 국립 카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은 일본 축구의 성지로,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의 개막전과 결승전이 열리고 매년 1월1일 천황배 결승전도 이곳에서 개최된다. 2009년과 2010년에는 중립구장 단판 경기로 진행되는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도 유치했는데 막상 두 시즌 모두 한국의 포항 스틸러스성남 일화 천마가 우승하며 일본 축구의 성지가 2년 연속 K리그 팀들의 잔치집이 됐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의 유치 도시는 아니다. 월드컵 결승전은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 개최됐고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구장으로는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가 사용되고 있다. 2022년 월드컵 유치 도시로 선정했으나, 일본이 개최국 선정 투표 2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이번에도 유치에 실패했다.


10.4. 농구[편집]


BJ리그의 도쿄 아파치가 있었는데, 재정 문제로 인해 해체되었다. 그러나 2016년 B.리그로 재편이 이뤄지면서 기존 NBL 실업팀까지 포함해 도쿄 연고팀이 대폭 늘어났다.


11. 정치[편집]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치고는 보수세가 약한 지역이었지만, 우경화가 심화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전체적으로 볼때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에 속한다.

1990년대까지는 중의원이나 참의원 선거에서 혁신계 우세 지역이었고, 2012년 총선 이전까지도 몇몇 선거를 제외하면 혁신계가 강세였던 구역도 많았다. 다만 자민당의 득표율도 아주 낮지는 않아 제법 점유율을 차지했고, 도지사 선거의 경우 1967~1979년까지 혁신계가 1차례, 1995년부터 1999년까지 무소속 후보가 1차례 시장직을 역임한 것을 제외하면 보수계 강세였다. 그 외 다양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곳답게 인디[74] 후보도 많은 편이다.

도쿄도지사는 2000년대 이시하라 신타로가 맡다가, 후임 도지사로 이시하라가 지원한 이노세 나오키가 되었다. 그러나 이노세는 2013년 12월 19일 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리며 1년 만에 지사직을 사퇴했다. 여담으로 이때 변명하는 과정에서 희대의 무리수를 남발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2014년 2월 9일에 도지사 선거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공석 상태였으나, 2014년 2월 9일에 도지사 선거가 예정되고 우선 전직 총리인 호소카와 모리히로[75]가 출마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그를 지지했다. 둘의 정치 성향도 비슷했고 탈원전을 주제로 자민당에 대항해 뭉쳤다.

자민당에선 전 후생노동대신을 지낸 마스조에 요이치[76]가 나와 아베 총리의 지원사격까지 받았다. 사회당/공산당 진영에선 우쓰노미야 겐지[77] 후보가 지원을 받고 나왔다. 전 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는 항공자위대 막료장을 역임했고 2008년 논문 사건으로 막료장에서 경질당한 다모가미 도시오를 지지했지만 관심이 총리 대 총리 대결에 쏠리다 보니 묻혔다. 결과는 자민당 마스조에가 탈원전 이슈를 복지와 올림픽 등 기타 다른 문제로 잘 비껴나가며 당선, 호소카와는 우쓰노미야와의 단일화[78]나 민주당의 지원 등을 거부하는 등 정치 감각을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우츠노미야 변호사보다도 더 적은 득표를 기록하며 낙선했다. 하지만 이 마스조에 요이치마저 이노세 나오키 같이 정치 자금 스캔들로 사임하고 2016년 도쿄도지사 재선거에선 반아베 우익 인사인 고이케 유리코 후보가 첫 여성 도쿄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이후 2017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의 도민퍼스트회가 사학비리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던 아베 신조자민당을 완패시키고 새로운 도쿄 기반 정당으로 떠오르는 기세였으나, 3달 후 치러진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선 자민당이 다시 도쿄 지역 의석을 휩쓸어 고이케가 이끌던 희망의 당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야권 분열에도 불구하고 혁신계인 입헌민주당이 선전한 편이었다.


11.1. 국회의원[편집]



중의원 선거구는 총 25개 선거구가 배정되었다. 선거구별로 보면 23구 지역 중 도심 및 부도심 지역은 자민당과 민주당계 정당이 경합을 벌이고,[79] 도쿄 남부 지역은 민주당이 살짝 우세한 형국이다.[80] 그리고 도쿄 북부와 동부 지역은 주로 자민당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81] 특히 23구 지역 내 선거구들 중 11구, 17구는 자민당이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지역구다. 타마 지역은 18구[82]19구, 21구를 제외한 모든 선거구들이 대체로 자민당 경합 우세~우세를 보이는 상황인데, 그 중 25구는 타마 지역 내 선거구들 중 자민당이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지역구다.

연령별로 보면 청년층보단 중장년층 이상에서 민주당계가 힘을 쓰는 편인데, 이런 지지 양상이 도쿄에서도 지역을 보면 비슷하게 나타난다. 집값이 싸서 젊은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인 타마와 도쿄 북부, 동부 지역은 자민당 지지가 강하고, 은퇴 노년층과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도쿄 서남부 지역[83]은 민주당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편이다.

새 인구 조사 결과, 도쿄도 지역은 종전 25석보다 5석 늘어난 30석으로 차회 총선을 치르게 된다.


11.2. 도의회[편집]


  • 도쿄도의회는 1인회파의 결성은 인정하나, 법적 의미의 회파의 요건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1인 회파는 무소속으로 칭한다. 다만 무소속 뒤에 괄호를 붙여 정치 단체명을 표기한다.
제20기 도쿄도의회
(2021년 7월 23일 ~ 2025년 7월 22일)

의장: 미야케 시게키 (三宅茂樹) | 부의장: 모토하시 히로타카 (本橋弘隆)

도민퍼스트회 - 26석 (24.4%)


공명당 - 23석 (18.1%)


자유민주당 - 29석 (25.9%)


일본공산당 - 19석 (15.0%)


입헌민주당 - 15석 (11.8%)




무소속(자유를 지키는 모임) - 1석 (0.8%)



무소속(도쿄 미라이)[84] - 3석 (0.8%)


원내여당 - 31석 (24.4%)
중립회파 - 24석 (18.8%)
원내야당 - 67석 (52.8%)

정수: 119명 | 결원: 8명
※ 현재 도정 여당은 도민퍼스트회이며, 중립 회파는 공명당과 무소속 도쿄미라이, 나머지는 도정 야당이다.




12. 경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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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는 제조업과 다국적 기업들의 집적도, 여객용 철도 교통 측면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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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도쿄 대도시권의 경제 규모

2014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조사한 도쿄 수도권의 경제 규모 GDP(국내총생산)는 1조 6100억 달러로 세계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 GDP가 1조 달러가 넘는 도시권은 일본 수도권과 뉴욕 도시권밖에 없고, 2018년 기준 2조 달러에 달한다. 이후 영국의 런던 수도권이 1조 달러를 돌파했다.[85] 1인당 GDP도 7만 달러 중후반 가량으로 4만달러 초반 정도인 일본 전체에 비해 엄청난 수준이다. 다만 인구빨이 있는만큼 뉴욕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긴 하다.

금융 분야에서는 뉴욕뉴욕증권거래소나스닥,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이은 세계 4위의 증권 거래소인 도쿄증권거래소가 있다. 덕분에 도쿄 마루노우치는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중 한곳에 해당한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제조업 공장들이 가장 많이 활성화된 도시 중 하나이며, 21세기에 들어 첨단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에 속하기도 한다. 문화 산업적으로도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글로벌 만화 산업의 성지로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아키하바라가 이곳에 있고, 게임 산업, 소프트웨어 산업 등도 발달했다.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 역시 가장 많이 밀집된 도시다.


13. 교육[편집]







자타공인 일본 최고의 대학이자 아시아 최상위권 대학 중 하나인 도쿄대학이 소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수도 특성상 일본내 여러 명문대들이 위치해있다.


14. 치안[편집]


오사카부와 함께 치안이 좋기로 알려진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10위권 내에 간간히 뽑히기도 한다. 야쿠자들이 치안 우려를 낳기도 하지만, 이들은 가급적이면 음지에서 조용히 행동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치안에 큰 악영향은 없다. 유흥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니 근처에 간다면 주의할 필요는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에서 뽑은 2015년과 2017년~2019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1위에 뽑혔다.

일본은 가출 청소년, 야쿠자 등 범죄 조직 등의 문제로 인해 불심검문이 엄격한 편이라 심야에 돌아다니는 외국인한테도 검문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특히 아랍인이나 중동 계열의 사람들을 발견하면 경찰들이 불시에 여권이나 기타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023년 5월 26일 도쿄 변두리인 마치다시마치다역 터미널 근처인 마치다 터미널 플라자에서 야쿠자가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쿄 마치다시 총격사건이 일어나면서 치안에 비상이 걸렸다.


15. 대중매체[편집]



일본 최대 도시권답게 애니메이션/만화/소설 등을 불문하고 많은 매체에서 배경이 된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파리 등과 마찬가지로 여러 미디어에서 수십 번이나 파괴된 도시, 적은 아무래도 고지라 같다. 단 뉴욕이 영화 쪽에서 주로 파괴된다면 도쿄는 애니메이션 쪽에서 주로 파괴되는 것이 차이점이다.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쟁 배경이면 10에 9은 폭격당해서 박살 나는 곳으로 나온다.



  • 도쿄가 작품 무대가 되는 《기생폭탄》에서는 기생폭탄을 먹은 사람이 이 도시를 떠나게 되면 폭발해서 죽는다.

  • 도쿄 레이븐스》의 무대. 현대의 도쿄를 무대로 하지만 음양술과 영적 재해가 혼재하는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다.



  • 도쿄 구울에서는 도쿄 내의 구역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을 잡아먹는 구울들이 설치고 다니며, 또한 그 구울들을 잡기 위해 구울 대책국의 수사관들이 뛰어다니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 여신전생 시리즈에선 본가, 외전 모두 주무대로 등장한다. 물론 작품 분위기상 나중에든, 아니면 처음부터든 망한다.


  • 스쿠비 두에서는 괴물이 된 새기가[86] 도쿄를 습격한 적이 있다.

  • 킴 파서블에서는 킴과 론이 도쿄에 방문하는 에피소드가 많다.[87]

  • 쓰르라미 울 적에》에 등장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쓰르라미 울 적에의 최대 흑막 타카노 미요도 이들에게 놀아난 것에 불과한데, 본작에선 빙빙 돌려서 말하지만 결국 가리키는 건 일본 정부다. 자신들의 파벌 싸움을 위해 히나미자와 대재해를 일으킬 만한 장본인들.[88]

  • 모던 컴뱃 5에서 배경 중 하나로 등장한다. 먼저 도시가 공격대에게 털리고 맨 시큐리티 군대가 주둔하나, 결국 피닉스에게 완전히 함락된다.

  • AKIRA에서는 만화의 시작부터 구 도쿄가 아키라에 의한 대폭발로 파괴되고 이로 인해 촉발된 3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뒤, 도쿄만 매립지에 네오 도쿄가 건설된다. 폭발 이후로 구 도쿄와 수도권은 유령도시가 되었으며, 폭심지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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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사영화 레지던트 이블에서 엄브렐러의 본사(정확히는 시부야 지하)가 있는 곳으로 등장했다. 첫 등장은 3의 마지막 장면으로 좀비로 가득 찬 모습이다. 이후 지하로 내려가면서 지하 본사에서 긴급 회의를 하는 이사회의 모습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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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지던트 이블 4에서도 등장, 오프닝 장면에서 시부야에서 일어난 일본의 바이오해저드 상황으로 등장한다. 4년 후 시부야 지하에 있는 엄브렐러 본사가 앨리스 군단(복제인간들)의 공격을 받는다. 그곳에 있던 엄브렐러 직원과 사병들이 모두 괴멸, 이후 웨스커 회장이 도망치면서 작동시킨 폭탄(파괴력이 핵무기급)[89] 때문에 본사가 있던 지역이 파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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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고 5편에서는 엄브렐러 비밀 테스트장의 세트, 시부야 세트로 등장한다.

  • 영화 《투모로우》에서는 치요다에서 기후 이상으로 인해 갑자기 거대한 우박이 떨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된다.

  • 벡실 2077 일본쇄국》에서는 '가의 미친 행각에 그나마 인간의 의지를 유지한 희생자들만 남아있었다. 결국 여기의 사람들도 전부 사망, 일본은 황무지만 남았다. 정부는 커녕 근본이 되는 국민조차 없어서 주인 없는 국토가 된 일본은 작품이 끝난 시점 후에는 아무리 황무지라도 땅을 차지하려는 국가들이 몰려와서 혼돈의 카오스가 되었을 것이다. 완전히 프론트 미션1의 허프만 섬보다 몆천 배는 될 것으로 추측된다.

  • 도쿄 매그니튜드 8.0》에선 도쿄 한복판에 초강진이 일어났을때의 상황을 아주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시뮬레이션해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이를 수도직하지진이라 부른다. 일본 방재관의 설명을 들어보면 일본에서 앞으로 20년 정도 안으로 실제로 그만한 M7수준의 강진이 닥친다고 한다. 40층이 넘는 도쿄도청 꼭대기에서 시내를 바라보면 초강진이 닥쳤을 때 일본이 입을 피해가 상상도 안 갈 정도이다. 도호쿠 대지진이 일본 동북부 지역에 막심한 피해를 냈으나 진원지가 수도직하지진의 진원지로 예상되는 곳과 다소 차이가 있다. 2011년의 그 지진이 200년마다 찾아온다는 그 지진이었을지, 아니면 근시일 내에 찾아올 본편의 전주곡이었을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장담할 수 있는것은 도쿄에 수도직하지진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매우 큰 피해가 예상된다는 것 정도이다.그리고 M9급 대지진이 간토 지방에 주기적으로 오기도 한다. 사실 규모가 규모인 만큼 수도직하로 M7이 오는 것보다 이쪽이 더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다.

  • 코펠리온에선 2016년에 오다이바에 원자력 발전소를 지었다가 대지진으로 멜트다운을 일으키며 폭발했기 때문에 그후 20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된 2036년의 도쿄가 무대이다.

  •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한 블랙코미디 영화 《도쿄원발》(원작 히로세 타카시, 감독 야마카와 겐)에서는 원자력 발전소가 새로 세워진 곳으로 나오는데, 이 영화의 내용은 픽션이지만 철저하게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실제 전세계 원자력 실태를 현실적으로 담아내었고 일본의 정치 현실도 풍자했다.

  • Fate/Prototype 시리즈》의 배경이다. 아직 건설 중이던 우미호타루 휴게소가 박살나고 도쿄 전체가 없어진다는 인질로 잡히고, 7일간 대홍수 위협을 겪는 등 갖가지 고생을 겪는다.

  • 2014년 애니메이션 잔향의 테러의 전체적인 배경이 된다. 도입부부터 도쿄도청이 박살난다.

  • 일본의 라이트 노벨, 애니메이션인 듀라라라!!는 도쿄의 번화가 중 한 곳인 이케부쿠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러브 라이브!에서 도쿄 부근 또는 아키히바라 부근의 오토키자카 학원을 무대로 하고있다.

  • 퍼시픽 림: 업라이징에서 최종 전투의 무대로 등장한다. 일명 '메가 도쿄'로, 후지산 인근까지 마천루들이 들어선 광대한 크기가 압권.


  • 메종일각의 가상 배경인 토케이자카는 도쿄의 히가시쿠루메를 모티브로 삼았다.













16. 관광[편집]





17. 출신 인물[편집]





17.1. 가상 인물[편집]




18. 둘러보기[편집]






[1] 정촌(町村) 위로 1군(니시타마군) 4지청(도서부)이 있으나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2] 오가사와라 제도 등 도쿄도에 속한 일부 도서 지방[3] 대한민국의 인천광역시 2개가 있는 면적보다 조금 더 큰 면적이다. 인접 현과의 경계 조정이 잦고, 매립지가 계속 도쿄만을 메우고 있어 면적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이다.[4] 한국과 시차가 없지만 자연시로 따진다면 서울과 50분 정도 시차가 있다. 도쿄의 경도가 동경 139도 41분, 서울은 동경 126도 58분인데 같은 UTC+9를 사용하기에 평균적으로 서울에서는 태양이 12시 32분에 남중하고 도쿄에서는 11시 41분에 남중한다. 게다가 미나미토리시마는 원래 UTC+10을 사용해야 하지만 본토와 같은 시간대를 사용한다.[5] 2023년 10월 1일 기준 추계 인구[6] 2022년 내각부 확정치[7] 일본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인 .jp 도메인은 구조가 복잡하다. 도쿄도 정부의 도메인은 metro.tokyo(.lg).jp(lg는 local government이다), 도쿄도 산하 시와 구는 city.이름.tokyo(.lg).jp, 정(町)은 town.이름.tokyo(.lg).jp, 촌(村)은 vill.이름.tokyo(.lg).jp(vill은 village이다.) 형태의 도메인을 쓴다. 이런 복잡한 형태의 도메인을 할당하는 것은 미국의 .us 도메인과 유사하다.[8] 신규 최상위 도메인.[9] 도쿄메트로 촬영. 8K를 지원하는 모니터가 없다면 8K 옵션 선택이 불가능할 수 있다. 지원하더라도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그래픽 사양이 충분해야 버벅임 없이 감상할 수 있다.[10] 도쿄도 공식 캐치프라이즈.[11] 일본어 발음은 토–쿄–토. 국립국어원 일본어 표기법에 따르면 '도쿄'로 표기한다.[12] 일본 헌법상으로 수도는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모든 일본 국민들은 오늘날 도쿄를 수도로 생각하다시피 한다.[13] 한국의 수도 서울 25개구의 인구 941만명보다 약간 많다.[14] 다수의 산출 기준에서는 도쿄에 행정적으로는 속했지만 도시권 범위로 간주하기 어려운 도서 지역을 포함(오가사와라 제도 등)한다. 다만 이들 인구를 다 합쳐도 3만 명이 되지 않기 때문에 오차는 크지 않다.[15] 고등학교 사회탐구 세계지리 중 / 네이버 지식백과.[16] 예전 서적을 보면 가끔씩 강호라는 지명이 나타나는데 이때 에도를 한국식으로 읽은것이 강호이다.[17] 日本東京市(일본도쿄시)를 태양 모양의 한 글자로 섞어서 표현한 것으로 1889년부터 쓰였다. 바탕색은 에도무라사키(江戸紫)라고 한다.[18] Tokyo의 T를 표현한 것. 대백 로고랑 비슷하다.[19] 도쿄 타케시바(竹芝)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여 남쪽으로 25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다.[20] 한국에도 분단 이전 황해도에 속했지만 위치상 인접하고 배가 인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경기도를 거쳐 현재는 인천광역시로 편입된 옹진군의 사례가 있으며, 옹진군청 또한 옹진군 내가 아닌 인천항 근처 미추홀구에 있다.[21] 본래 메이지 유신을 이끈 오쿠보 도시미치는 오사카(나니와) 천도를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에도가 일본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이점, 과거 260여 년간 막부의 중심으로 발달한 인프라, 그리고 교토 체류나 오사카 천도 시 간토 지역이 쇠퇴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오사카가 아닌 에도를 새 수도로 결정했다.[22] 특히 교토 기반의 기득권층들의 반발이 강했다.[23] 그나마 쇼와 시대까진 즉위식이라도 교토에서 거행되어 교토를 수도로 볼 건더기라도 남아 있었지만 헤이세이, 레이와 시대에는 연이어 천황의 즉위식이 도쿄에서 열린지라 그나마 있었던 정신적 수도로서의 교토의 입지도 희미해졌다. 이는 도쿄전도 당시 교토를 배려해 황실전범에서 즉위식을 교토에서 거행할 것을 명시하였는데 2차 대전 이후 황실전범을 개정하며 그러한 규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24] 홋카이도는 도(道)이다.[25] 방위성만 성 승격 이전에 입주한 신주쿠구이치가야에 있으나, 황거가스미가세키 합동 청사에서 2~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치요다구 집중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외청 단위에서도 기상청 정도가 미나토구 도라노몬에 있는 정도이고 사실상 거의 모든 중앙성청이 치요다구에 집중되어 있다.[26] 여담으로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역시 동경이라 불렸으나 현재는 거의 쓰이지 않고 사장된 상태이다. 다만 통킹만 지명으로 남아있기는 한 상태다[27] 단, 현재 홋카이도까지 차지한 형세와 달리 에도 막부 이전의 일본은 홋카이도를 완전히 병합하지 못했고 도호쿠 역시 한국의 함경도 이상가는 변방이었음을 고려하면 전근대 최적의 입지였다고 보긴 어렵다. 태평양 중심인 현대와 달리 대륙과의 교섭이 중요했던 전근대에 간토는 너무 구석진 곳에 있었다. 하지만 막말 무렵 홋카이도를 넘어 사할린 남부, 쿠릴 열도까지 영토를 확장한 이후에는 확실히 일본의 지리적 중심지가 되었고 이러한 연유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제는 수도를 도쿄로 옮겼다.[28] 과거에 바다였다가 메워진 충적 평야에서 고질적으로 나타나는 문제가 침수다.[29] 오죽하면 이 당시 미국이 도쿄에 핵을 떨구지 않은 이유가 이미 네이팜 폭격으로 도쿄가 잿더미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농반진반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30] 이 때문에 도쿄 본시가지보다 오히려 근교에 있는 카와고에시가 옛 에도 시가지 분위기를 더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해서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31] 다만 도쿄가 비록 항구도시긴 하지만 도쿄만 안쪽 깊숙히 들어가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관동지방에서 항구 기능은 요코하마시가 주된 역할이고 도쿄는 부차적이다.[32] 23구 전체의 최고점이 해발 25m에 불과하다.[33] 여기서의 지진은 지각판의 충돌과는 무관한 별개의 지진이다.[34] 대략 강원도의 면적[35] 단, 야마노테와 달리 지리적 의미만이 아니라 문화적 구분에도 쓰이는 단어이다. 그 경우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고 서민적인 거주 구역을 칭할 때 쓴다.[36] 도쿄 지하로 태평양판, 필리핀판, 오호츠크판(과거엔 북아메리카판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현재는 오호츠크판이라는 독립된 판으로 본다.)이 위치한다. 유라시아판도 100km밖에 안 떨어져 있어 4개 판이 만난다고 봐도 무방하다.[37] 도쿄를 위시한 동북 일본이 오사카를 위시한 서남 일본보다 지진 빈도가 많은 이유는 일본 해구가 난카이 트로프보다 지진 활동이 훨씬 빈번하기 때문이다. 일본 주요 도시 중 도쿄-요코하마보다 지진이 많은 도시는 일본 최악의 지진지대인 산리쿠 해안을 마주 보는 미야기현 센다이시밖에 없다.[38] 오사카, 나고야는 시가지가 난카이 트로프로부터 200km 가량 떨어져 있어 예상 진원과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지만 도쿄-요코하마와 사가미 트로프는 각각 최대 80km 미만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어서 거리가 예상 진원과 매우 가깝다. 도쿄만 바로 건너에 사가미 트로프가 위치한다. 따라서 난카이트로프 대지진 예측에서 오사카, 나고야 등에서의 최대진도는 5~6 정도로 설정하는 반면 사가미트로프 대지진 예측에서 도쿄와 요코하마의 최대진도는 6~7 정도로 설정한다.[39] 신주쿠, 가메이도 등의 부도심은 대략 환상 5호선, 도시 '도쿄'의 경계는 8호선 정도에 해당한다.[40] 특히 해안 지대는 게이힌 공업 지대에 속하는 중화학 공업 중심.[41] 도심지의 녹지는 거의 대부분이 하천뿐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서쪽이 녹지인 이유는 단지 험한 산지이기 때문으로, 오메시하치오지시를 보면 이곳도 산이 아니었으면 녹지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42] 갈색 부분이 오래된 목조 주택으로 된 난개발 지역들이다.[43] 일본에서도 다마 뉴타운처럼 고밀도 주거 환경을 계획적으로 조성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오히려 도큐의 다마 전원 도시와 같이 민간 자본이 도시 계획 관점이 없이 조성한 택지가 넘쳐났던 것.[44] 대조적으로 서울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인 데다 1970년대 이후 강남, 여의도 등 대규모 계획도시 개발과 재개발로 고층 아파트 위주의 고밀도 주거 환경이 정립되면서 도시 구조가 상대적으로 정리되었다. 도쿄에서 당장 수도고속도로를 가려 놓으면 도시의 도로망 구조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요코하마, 사이타마 등 간토의 다른 대도시도 이 점은 비슷하다. 한국에 비한다면 도시계획은 뒷전이고 개발에 급급했던 용인시 수지구의 프리퀄에 가깝다.[45] 일본은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도쿄를 비롯한 여러 도시의 일부 구역을 방화대라는 띠 모양 구획으로 지정해 건물이고 가로수고 전부 비워두고 물웅덩이를 파는 식으로 차후 대지진이나 전쟁으로 인한 화재 대책을 세워두기도 했다(건물소개). 그런데 정작 공습 당시 화재 억제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했고, 오히려 전시 상황 속에서 시민들에게 모기로 인한 전염병이 돌아 많은 인명피해를 추가로 내기까지 해 결국 전쟁 이후 대부분 도로로 전환되거나 시가지로 복구돼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한편 방화대는 일제강점기 말기 서울에도 설정되었는데, 광복 이후 퇴계로세운상가가 조성되었다.[46] 이시하라 신타로가 막장행보에도 도쿄도지사 4선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미세먼지와 스모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덕이었다.[47] 현 시부야, 신주쿠, 치요다 등 도쿄도 구부 도심 및 북서부 지역. 에도/도쿄의 뿌리라 할 수 있다.[48] 현 시나가와구 일대를 중심으로 한 도쿄도 구부 남서부 지역[49] 현 도쿄도 구부 동부 지역 및 지바현 도쿄 접경 지역, 사이타마현 이바라키 접경 지역, 이바라키현 사이타마 접경 지역[50] 현 도쿄도 아다치구 일대와 기타 구 일부, 이타바시구 일부 및 사이타마현 일부(사이타마시 대부분 지역 포함)[51] 현 도쿄도 네리마구, 니시토쿄시의 각 일부 및 사이타마현 남부 일부[52] 현 도쿄도 나카노구, 스기나미구, 세타가야구 일부, 타마 지역 대부분[53] 개칭 초기에는 교토 사람들은 을 きょう(쿄)로 읽는 것은 교토뿐이어야 한다는 자존심 때문에 京을 けい(케이)로 읽고, 도쿄 사람들은 에도 막부에 대한 향수 때문에 조정이 직접 이름을 바꾼 것에 대한 반발심으로 京을 けい(케이)로 읽어서 도쿄가 아닌 도케이로 읽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이는 메이지 정부에서 읽는 방법을 따로 법령으로 정해놓지 않은 것이 원인인데, 결국 시간이 흘러가고 좋던 싫던 도쿄의 실질적 수도로서의 위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서 개칭 후 20년쯤 지나면 도쿄로 점차 명칭이 굳게 된다.[54] 종전의 에도시 지역. 현 도쿄부 구부 도심 지역(1932년 도쿄시 확장 이전의 영역).[55] 지금의 도쿄도 구부의 남서부 및 타마 동부 지역[56] 현 사이타마현 일부(지금의 사이타마시를 중심으로) 및 도쿄도 구부 극히 일부. 원래 이름은 오미야현(大宮県)이었으나 같은 해에 우라와현으로 개칭.[57] 도쿄도 구부 동부 지역 및 치바현 도쿄 접경 지역[58] 이들 중 니시타마군만 지금까지 남아 있다.[59] 그래서 이 대확장 직전인 1925년, 1930년 국세조사 기록을 보면 오사카시도쿄시보다 인구가 많다. 그리고 대확장 직후 1935년 도쿄시 인구는 무려 587만(!)으로 오사카시를 아득하게 쳐발라버렸다.[60] 서울의 1963년 대확장에 비견될 수 있다.[61] 서울의 1973년 진관동 편입에 비견될 수 있다.[62] 도쿄시에 편입되지 않은 대부분 잔여 지역은 현재의 도쿄도 타마 동부 지역이다.[63] 일본에서 특별시 제도는 1947년 도입되었기 때문에 도쿄시는 특별시였던 적이 없다.[64] 서울도: 광역자치단체, 서울시: 기초자치단체, 성북구: 서울시 산하 행정구(일반구).[65] 당장 일본의 지방자치법 283조에서도 특별구의 공직선거법상 선거를 인정하고 있다.[66] 1889년의 15구에서 확장된 것[67] 2023년 4월 1일 기준[68] 그러나 도쿄 올림픽으로 인해 도예산 올림픽 집중, 인력 동원 문제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다.[69] 일본이 IOC에 올림픽을 개최한다고 했을 때, 동계 올림픽은 삿포로, 나가노 두 도시를 진행했는데 왜 또 도쿄냐고 지방 주민들이 반발을 심하게 했었다.[70] 단, 이름은 TOKYO 2021이 아닌 TOKYO 2020으로 유지된다.[71] 대신 지역밀착 마케팅으로 이어져 오히려 2000년대 이후로는 득이 되었다.[72] 고척 스카이돔이 도쿄돔을 토대로 만들어졌다.[73] 소프트뱅크는 본사가 도쿄에 위치하여 본사 직원 복지 차원에서 도쿄에서 경기를 개최하기도 한다.[74]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약자로, 독립이란 의미.[75] 일본 총리 중 상당히 리버럴. 역사 문제에서도 일본의 과오를 인정했다.[76] 보수계지만 친한 성향을 지닌 인물이었다. 2009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민주당에 대패했을 때 자민당은 가망이 없다며 탈당했지만 이후 돌아왔다.[77] 반우익 성향인 만큼 혐한 시위에 반대하는 인물이다.[78] 둘 다 탈원전이란 큰 그림에선 동의했다. 물론 이념적으론 차이가 있다.[79] 도심 지역인 치요다구, 신주쿠구, 미나토구를 관할하는 1구는 어느 정당도 확실한 우세를 보이지 못하는 경합 지역이며, 주오구, 다이토구, 분쿄구를 관할하는 2구는 이제는 확실한 자민당 우세지역이고, 반면 시부야구가 속한 7구입헌민주당이 우세하다.[80] 대표적으로 3구, 5구, 6구가 있다. 모두 경합 우세 지역이다.[81] 예외도 있다.[82] 간 나오토 전 총리의 지역구다.[83] 시부야구, 신주쿠구, 나카노구, 치요다구, 시나가와구, 세타가야구 등.[84] 도민퍼스트회에서 탈당한 무소속 의원[85] 참고로 현재(?) 한국 수도권의 GDP는 9600억 달러로 도쿄 수도권의 절반 정도 수준이지만, 이것도 알고보면 세계 6위로 매우 높은 편이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수도권 밀집화 현상이 심하다는 소리도 된다.[86] 스포일러 저주의 힘을 피자에 봉인했지만 하필이면 새기가 먹어버린 탓에 괴물이 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그 괴물 새기는 범인이 조종한 로봇에 불구한 셈.[87] 드라켄 박사의 음모를 막거나 론이 닌자가 되어서 몽키 피스크를 퇴치하는 듯하다.[88] 하지만 도쿄에서 히나미자와 증후군의 치료를 지원해 주는 존재가 누구인지 생각해 보자. 근본은 노무라 일파이고, 이쪽은 현재의 도쿄 수뇌부가 파멸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타카노를 부추겼던 것.[89] 폭발할 때 거대한 에너지 구체 같은 게 형성되고 폭발 지점은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리는 묘사나 위력에 비해 폭탄 자체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 것을 볼 때 아마도 '반물질 병기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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