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바시라 야스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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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바시라 야스타카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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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등번호 10번
율리 구리엘
(2014)

토바시라 야스타카
(2016~)


현역



파일:Tobashira1.jpg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No.10
토바시라 야스타카
戸柱恭孝 | Yasutaka Tobashira

생년월일
1990년 4월 11일 (34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출신지
가고시마현 키모츠키군 키모츠키초
신체
179cm, 90kg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 입단
2015년 신인 드래프트 4순위
소속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6~)
응원가
링크[1]
연봉
2022 / ¥37,400,000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3.1. 2016년
3.2. 2017년
3.3. 2018~2019년
3.4. 2020년
3.5. 2021년
3.6. 2022년
3.7. 2023년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여담



1. 개요[편집]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소속의 포수.


2. 선수 경력[편집]



2.1. 프로 입단 전[편집]


고교 시절까지는 내야수, 그중에서도 주로 3루수로 많이 나섰었다. 코마자와 대학으로 진학한 이후 포수로 전향하였고 대학 통산 45경기 타율 .227에 0홈런 11타점을 기록했다.

대학 졸업 이후 NTT 니시니혼에 입사하여 사회인야구 선수로 활동했다. 입사 첫 해에는 백업 포수 역할이었지만 입사 2년차에는 오사카 가스의 보강 선수로 차출되어 제 85회 도시대항전에 출전. 팀을 준준결승까지 이끄는데 공헌하였다. 다시 소속팀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팀의 주전 포수가 되어 제 40회 사회인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소속팀을 8강으로 이끌며 사회인 베스트 나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2014년 드래프트에서는 아예 지명받지 못하였다. 입사 3년차에는 소속팀 NTT 니시니혼이 제 86회 도시대항전, 41회 사회인 선수권 대회 준준결승에 오르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이후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드래프트에 참가하면서 후보 명단에 올랐고 2015시즌 68폭투를 기록하며 즉전력 포수가 급했던 요코하마가 4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에 합의했다. 등번호는 10번.


3.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편집]



3.1. 2016년[편집]


입단 첫 해부터 1군 캠프에 합류하며 주전으로 기용될 가능성을 높였고 예상대로 개막전부터 선발 포수로 나섰다.

나머지 투수들과의 호흡은 토바시라가 배터리를 이루고 야마구치 슌이 선발 등판하는 경기는 타카조 슈토가 배터리를 이루는 조건으로 시즌을 치렀고 최종적으로 124경기를 출전했다.

타격 성적은 아쉬웠지만 팀의 가장 큰 근심거리였던 팀 폭투 수를 크게 줄여내며(15년 68폭투→16년 39폭투) 포수진을 안정화 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소속팀도 10년도 더 된 암흑기를 마치고 A클래스에 올랐으며 감독 추천 자격으로 올스타전에도 출전하기도 하는 등 의미 있는 데뷔시즌을 보냈다. 다만 포수 플라이 처리에 불안감을 노출하며 보완점도 함께 남긴 시즌이 되었다.


3.2. 2017년[편집]


2년차인 2017시즌에도 토바시라 주전 체제로 시즌을 보냈다. 타카조가 신인 투수 하마구치 하루히로의 전담 포수로 출전하고 토바시라 본인은 미네이 히로키와 플래툰으로 출전하였다.

이 시즌은 경이적인 클러치 능력이 돋보였던 시즌이기도 한데 이미 5월달에 16년도에 기록한 타점 수를 넘어선데 이어 전반기에 40타점을 달성했고 시즌 중반까지 안타와 타점의 비율이 1:1에 근접하기도 했었는가 하면 6월 중순까지의 기준으로 루상에 주자가 없을때는 타율 .098 0홈런 0타점 OPS .262의 투수급 타격 성적을 보인 반면 루상에 주자가 있을때는 타율 .358 4홈런 35타점 OPS. 954로 극과극의 성적을 보이기도 했다. 이 찬스에 강한 타격 덕분에 타격 스탯도 상당히 나아져서 1년차보다 우수한 비율스탯을 찍을 것으로 보여졌지만 내려갈 비율 스탯은 내려간다고 7월부터 극심한 타격 침체에 빠지며 선발 포수 자리를 미네이에게 내주는 일이 잦아졌다. 덩달아 전반기에 보여준 극강의 클러치 능력도 사라지면서 끝맺음이 아쉬웠던 시즌.

그래도 시즌 최종 112경기에 나서며 팀내 포수들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였고 비상한 클러치 능력으로 팀이 2년 연속으로 A클래스에 진입하는데 공헌하였다.


3.3. 2018~2019년[편집]


2년 연속으로 100경기 이상 출전했기에 2018년에도 주전 포수 1순위로 시즌을 출발했지만 시즌 초반 극심한 타격 침체로 인해 미네이와 타카조에게 밀려나 버린다. 7월 도중 타카조가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지만 받아온 선수가 하필이면 포수인 이토 히카루여서 입지에 큰 변화는 없었다. 결국 2018년은 25경기 출전에 그친다.

2019년에도 이토, 미네이 체제로 포수진이 운영되었고 토바시라는 제 3의 포수로 밀려나 거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이토가 손가락 부상으로 이탈한 사이에 출전 기회를 잡았는데 타격 성적은 18년에 비해 소폭 상승했지만 도루저지율이 .120으로 매우 나빴다.


3.4. 2020년[편집]


이토가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하고 미네이도 신통치 않은 성적을 보이는 와중에 다시 출전 기회를 늘려가면서 시즌 최종 96경기에 출전하였다. 타격 스탯은 크게 변한게 없었지만 절망적이던 도루저지율이 .352로 크게 개선되는 성과가 있었던 시즌.


3.5. 2021년[편집]


시즌 초중반까지는 출전 기회가 불규칙적으로 부여되었고 타격에서의 부진도 길어져 1, 2군을 자주 오갔지만 9월에 1군으로 올라온 뒤로는 주로 이마나가 쇼타와 배터리를 이루면서 시즌 마지막까지 1군에서 뛰었다.

이 시즌은 2018년의 포수진이 생각날 만큼 포수진의 상황이 상당히 나빴기에 여러 포수들을 기용하다 결국 돌고 돌아서 후반기에는 토바시라가 주전 포수가 되었다.


3.6. 2022년[편집]


개막부터 1군에서 뛰었으나 4월 초 코로나 양성 판정으로 인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그 결과 자연스럽게 미네이 히로키에게 많은 기회가 돌아가게 되었다. 다시 1군으로 돌아와서도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 않다가 하마구치 하루히로의 전담 포수로 기용되면서 출전 폭을 늘렸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타격 성적이 커리어 평균보다 좋았기 때문에 왼손 대타 자원으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시즌 최종 72경기에 출전해 타율 .264 4홈런을 기록했다. 비율스탯만 놓고 보면 커리어 평균을 웃돈다.

경쟁자였던 미네이 히로키가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며 팀을 떠나는 것이 기정사실화 된지라 내년에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3.7. 2023년[편집]


올해 안에 등록 일수를 충족하면 FA 자격을 얻게 된다.

시즌 초반 5월까지만 하더라도 커리어 평균을 상회하는 타율과 볼삼비를 보여주며 커리어 하이를 경신하는게 아닌가 싶었으나 여름이 되자 귀신같이 본래의 성적으로 회귀, 8월 이후에는 야마모토 유다이의 약진으로 인해 출전 기회까지 뺏기며 벤치를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시즌 도중 FA 자격을 획득했으며 현재까지는 FA와 관련된 행보가 수면위로 올라오지는 않은 상황.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타격에선 호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우나 준수한 프레이밍을 보유한 포수.

데뷔시즌인 2016년에는 12구단 포수들 중 가장 많은 스트라이크를 만들어냈고 이후에는 기복이 있긴 하지만 리그 평균~평균 이상의 프레이밍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프레이밍 이외의 수비능력은 뛰어나다고 보기 어렵다. 포수 플라이 처리가 불안하고 블로킹도 특출나게 좋지 않으며 특히 도루저지율이 상당히 좋지 못하다. 물론 2020년처럼 3할을 넘긴 시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3할을 밑도는 낮은 저지율을 보이고 있다.

잊을만 하면 이따금씩 담장을 넘길 수 있는 일발장타력과 의외의 클러치 능력이 있지만 컨택이 형편없고 선구안도 좋지 않아 타격 성적은 많이 부족하다. 포수 포지션임을 감안해도 좋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통산 OPS가 .558에 그치고 있다.[2]

프로 입단 이후 도루를 기록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내야안타가 가끔가다 나올만큼 심각하게 느린 주자는 아니다.

종합하자면 냉정하게 말해 주전으로 뛰기는 어렵고 백업으로 기용하는것이 베스트인 포수이지만 워낙 포수 뎁스가 처참한 요코하마이기에 주전으로 뛸 기회를 많이 받고 있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NPB)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2016
DeNA
124
393
83
8
0
2
23
25
0
20
63
.226
.267
.264
.532
2017
112
363
72
13
0
9
52
25
0
19
59
.214
.255
.333
.588
2018
25
59
10
2
0
1
6
5
0
2
9
.179
.207
.268
.475
2019
45
111
20
4
2
1
6
6
0
7
22
.200
.257
.310
.567
2020
96
276
55
8
1
5
23
21
0
11
53
.212
.244
.309
.552
2021
56
135
28
5
1
3
14
10
0
4
18
.220
.250
.346
.596
2022
72
151
38
5
0
4
16
12
0
3
26
.264
.280
.382
.662
2023
70
181
40
8
1
5
19
11
0
13
30
.242
.296
.394
.690
NPB 통산(8시즌)
600
1669
346
53
5
30
159
115
0
79
280
.223
.261
.321
.582


6. 여담[편집]


  • 애칭은 '토바'. 별명으로는 '하마의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 , '하마의 슈퍼맨' '최후의 타이요 전사'가 있다.

  • 이들 중 가장 많이 쓰이는 '타이요 전사'는 2016년에 타이요 훼일즈 유니폼을 입고 치르는 시리즈가 진행되었었는데 유독 토바시라만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것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흑백처리된 짤방을 보면 쌍팔년도 야구 중계 화면이라해도 믿을 수준.

  • 구단도 이것을 알고 있는지 2017년 시즌 종료 후 열린 하마스타 레전드 매치에서 토바시라의 공식 굿즈에다 '쇼와가 어울리는 타이요 전사'라는 문구를 넣어뒀으며 이날 치러진 경기에서도 참가한 현역 및 OB들은 시대에 맞는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왔으나 토바시라만이 1980년대 타이요 유니폼을 입고 참가했다.[3]

  •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냉정하게 말해 좋게 평가할 부분이 부족하지만 알렉스 라미레스 만큼은 토바시라를 고평가하고 있다. 특히 타격에 관해서는 출전 기회만 보장된다면 2할 중반도 칠 수 있다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사실 그렇게 이상한것이 아닌게 라미레스가 감독으로 있는 동안 토바시라는 본인이 크게 부진한 2018년과 이토 히카루가 공수에서 활약한 2019년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경기를 뛴 포수였다. 그만큼 라미레스의 신뢰가 두터웠던 것.

  • 타격 성적은 시원찮지만 홈런 스윙이나 타구만큼은 거포 느낌이 물씬 풍긴다는 의견이 종종 보인다. 라인드라이브로 넘길때도 있지만 문샷으로 넘길때의 포물선이 특히 이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2021년에 연타석 홈런을 쳤을때는 츠츠고 요시토모가 돌아왔다는 농담도 나올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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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奮い立て 横浜の大黒柱よ
후루이타테 요코하마노 다이 코쿠바시라요
분발해라 요코하마의 크고 검은 기둥아
さあ打て飛ばせ勝利への 扉を開け
사아 우테 토바세 쇼오리에노 토비라오 히라케
자 쳐라 날려버려라 승리의 문을 열어라
[2] 이것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냐면 라쿠텐의 스미타니 긴지로보다 조금 낫고 요미우리의 고바야시 세이지(1989)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나마 스미타니는 한때 국가대표에 소집될 정도의 견실한 수비력을 가졌고 고바야시 역시 강한 어깨와 우수한 프레이밍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3] 파일:大洋戦士戸柱.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