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겔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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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가이우스 오포니우스 티겔리누스
(Gaius Ofonius Tigellinus)
출생
미상
로마 제국 시칠리아 아그리겐툼
사망
69년
로마 제국 이탈리아 시누에사
직위
근위대장

1. 개요
2. 생애
3. 미디어에서



1. 개요[편집]


로마 제국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근위대장. 네로 황제의 악행에 앞장선 악명높은 근위대장이다. 수없는 악행과 살인마 같은 성격 등을 이유로 인류 역사상 가장 파렴치한 악마적인 천재로 불린다.


2. 생애[편집]


시칠리아 남부의 도시로 그리스인 식민도시에서 기원한 아그리겐툼 출신으로, 계급은 평민이다. 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아그리겐툼에 망명생활을 할 때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고향인 아그리겐툼이 그리스인들이 만들고 그들 후손이 많이 산 도시라서 그리스계 이탈리아 로마인이라는 말도 있으나, 히스파니아 혈통이라는 말도 있다. 유베날리스의 풍자 시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끝자락인 스키라세움 항구에서 살았다고 한다.

타키투스는 그가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이며, 조련사 및 푸줏간 주인 노릇을 하였다고 기술했다. 하지만 30년 집정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비니키우스, 32년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네로의 부친인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와 친분이 있던 점, 소 아그리피나와 불륜 관계였던 점을 볼 때 이 기록을 그대로 신뢰하기엔 무리가 있다.

분명한 사실은 그가 성년 이후 처음에는 그리스와 시칠리아를 오가는 상인으로 살면서 자금을 모았고 사업 재주가 뛰어났다는 것이다. 20대가 되어서야 본토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서 활동했다고 하나 상술했듯 그리스에서 처음 상인으로 경력을 쌓았고, 부모에게 약간의 유산을 받고 그리스와 시칠리아를 오가며 돈을 벌어 이 돈으로 남이탈리아의 아풀리아 지방[1], 칼라브리아 지방[2]에 광대한 땅을 사들였다고 한다. 이후 남이탈리아에 사들인 땅에 황실, 귀족들이 선호하는 경주마 사육 사업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학자들은 그가 조련사, 푸줏간 주인을 지냈다는 말이 사실은 경주마, 종마 사업을 하면서 얻은 것일 수 있다고 추측한다.

야심이 많았는지 몰라도 이 시기에 로마에서 살면서 황실 사람들과 연줄을 잡고자 했는데, 운 좋게 연줄이 닿아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아들 아헤노바르부스(후일 네로)를 키우며 잊혀져 가는 황녀 소 아그리피나와 친구가 되고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애인 사이가 됐다. 그러다가 가이우스(칼리굴라) 재위 시기인 서기 39년 , 소 아그리피나와 간통을 저지른 혐의로 유배형에 처해진다. 티겔리누스가 간통이 걸린 이유는 소 아그리피나가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 율리아 리빌라와 음모를 꾸미고 실제 암살 계획을 세우다가 체포된 뒤 후속조사가 이뤄지면서였다고 한다. 이 음모에 가담한 레피두스를 비롯한 남성 가담자들이 처형된 것과 달리, 유배형에 처해진 것을 볼때 소 아그리피나와 연인 관계였을 뿐 '가이우스 암살 미수 사건' 혹은 '레피두스 사건'으로 불린 궁중음모에는 직접 개입되지 않은 것 같다.

서기 41년 1월 26일 칼리굴라 황제가 암살되고 클라우디우스 1세 황제가 즉위한 뒤, 친구이자 연인이었던 소 아그리피나가 풀려날 때 추방형이 해제되면서 이탈리아로 복귀했다. 복귀 후에 소 아그리피나와의 관계, 소년 네로가 전차 경주와 오락 사업에 흥미가 많아 친분이 있던 이유로 네로의 친구가 되었다. 따라서 소 아그리피나가 클라우디우스의 계후가 되고, 아헤노바르부스가 클라우디아 옥타비아와 결혼 후 정식 입양된 뒤 소 아그리피나, 네로 모자의 도움 아래 거처를 로마로 옮겨 영구정착했다. 그러다가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저녁 식사 후 급사하고, 소 아그리피나와 세네카, 부루스가 유언장을 무시하고 네로를 앞세운 궁중쿠테타를 벌여 브리타니쿠스를 무시하고 네로만 제위에 올린다.

네로가 황제로 즉위한 뒤, 네로 모자의 도움으로 에퀴테스 신분으로 격상되었고, 60년 로마 소방대 지휘관이 되었다. 62년 근위대장 섹스투스 아프라니우스 부루스가 사망한 뒤 파에니우스 루푸스와 함께 근위대장에 선임되었다. 그는 근위대장에 선임되자마자 세네카가 부정부패를 저질렀다고 비판하고 뒷조사를 실시했다. 실제로 뒤가 많이 구렸던 세네카는 이에 위협을 느끼고 네로에게 은퇴하겠다고 밝힌 뒤 은거하였다.

이후 네로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주군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수행했다. 클라우디아 옥타비아와 이혼하고 포파이아 사비나와 결혼하길 원하는 네로를 위해 옥타비아에게 간통죄를 뒤집어씌우고 조작된 증거를 내세워 유죄 판결을 얻어낸 뒤 로마에서 추방했다. 시민들이 분노하여 "죄없는 황후를 복귀시켜라"라며 폭동을 일으키자, 네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한 뒤 돌려보냈다. 하지만 네로는 옥타비아를 죽이기로 작정했고, 티겔리누스는 옥타비아가 반역에 가담했다는 조작된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사람을 보내 죽였다. 네로는 포파이아에게 보낼 선물용으로 쓰겠다며 옥타비아의 수급을 가져오게 한 뒤 직접 검사했다. 또한 클라우디아 안토니아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것에 앙심을 품은 네로의 지시에 따라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죽였다. 로마 대화재 당시, 네로가 욕을 먹자 기독교 신도들이 방화범이라고 죄를 뒤집어 씌웠다.

방계 황족 루벨리우스 플라우투스 음모 사건 당시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았으나, 네로의 고종사촌형으로 클라우디아 안토니아의 남편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에게 두 번이나 조작된 증거를 내세워 기소하고 1년 뒤 갈리아로 추방된 그를 살해했다. 이때 네로가 그에게 사촌형 파우스투스 술라 펠릭스를 죽이라고 지시하자, 밤낮으로 달려간 다음 저녁식사를 먹자고 술라를 부른 뒤 식사준비를 하던 그를 죽이고 그 머리와 오른손을 잘라 네로에게 바쳤다.

65년 피소 음모 당시, 사건 조사 총책임자가 되어 수많은 원로원 의원과 저명한 인사들을 체포하여 가혹한 고문을 가한 뒤 처형했다. 이때 동료 근위대장 루푸스도 피소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를 들어, 티겔리누스는 직접 그를 고문한 뒤 처형했다. 네로는 티겔리누스가 큰 공을 세웠다고 추켜세웠고, 그를 위해 개선문을 세워주고 팔라티노 언덕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에퀴테스 신분이 그런 영예를 얻은 건 전례없는 일이었다. 67년 네로가 그리스로 가서 올림픽 대회에 참여하여 모든 경기를 우승했을 때 함께하였고, 그리스로 소환된 코르불로에게 네로의 자살 명령서를 직접 전달하였다.

선행을 베풀거나, 어거지로 죄가 씌워진 사람을 구해주지 않고 네로가 명령한 그대로 일처리를 했다. 과거의 세야누스, 마크로와 달리 순수하게 희생자들이 적힌 살생부를 보고 흐뭇해하고 이들이 고문으로 자백하지 않으면 더 고통스럽게 하고 이를 즐겼다. 그래서 당대, 후대 사람들에게 악마적인 파렴치한 천재라고 불렸다.

다만 때때로 혐의를 뒤집어쓴 자들을 구해주기도 했다. 물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 그대로 제 가족과 이익을 준 자들에게만 그랬다. 사위 코수티아누스 카피토가 속주민 갈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원로원에서 추방됐는데, 티겔리누스 덕분에 혐의를 벗고 복귀했다. 원로원 의원 티투스 비니우스의 딸도 간통 혐의를 뒤집어썼다가 티겔리누스에 의해 무혐의로 풀려났다. 타키투스는 티투스 비니우스의 딸을 구해준 건 네로의 입지가 점점 약화되는 걸 보고 탈출구를 만들려고 일부러 그런 거라고 주장했다.

서기 68년 네로가 몰락할 무렵, 루푸스의 뒤를 이어 티겔리누스의 동료 근위대장이 된 가이우스 님피디우스 사비누스갈바의 봉기에 호응했다. 그는 프라이토리아니 장병들을 재빨리 장악한 뒤 갈바에게 충성을 선언했다. 티겔리누스는 부하들이 모두 님피디우스 편으로 들어가자 도망쳤고, 티투스 비니우스의 보호를 받다가 상황이 종료되자 갈바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69년 1월 마르쿠스 살비우스 오토가 갈바를 죽이고 새 황제로 등극하자, 그에게 접근하여 자신이 프라이토리아니에 복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오토는 티겔리누스에게 시누에사 온천에서 자살하라고 명령했고, 그는 면도칼로 목을 베어 자살했다.


3. 미디어에서[편집]


파일:랠프 트루먼 티겔리누스.png
영화《쿠오 바디스》에서 미국 배우 랠프 트루먼이 연기했다. 작중에서도 찌질한 간신배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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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에서 남동쪽에 위치한 지방이다.[2]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