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투스(역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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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페스투스
(Festus)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업
역사가

1. 개요
2. 행적
3. 로마인들의 위대한 업적 요약(Breviarium rerum gestarum populi romani)



1. 개요[편집]


로마 제국의 역사가.


2. 행적[편집]


서기 4세기의 로마 황제 발렌스의 치세에 활동했으며 'vir clarissimus(명예 원로원 의원)'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 외에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가 집필한 역사서의 판본에는 루피누스 페스투스, 섹스투스 루푸스 등 2개의 이름이 기재되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본명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역사가들은 대개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에우트로피우스, 조시무스 등의 저서에서 등장하는 트렌토 출신의 총독 페스투스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인물은 365년 시리아 총독을 맡았으며, 369년 발렌스 황제의 비서관을 역임했고, 372년 아시아 총독을 맡아 378년까지 맡았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페스투스는 아시아 총독을 맡기 전에는 온유한 성격에 민중을 자비롭게 대해서 존경받았지만, 아시아 총독이 된 후에는 무고한 자들을 잇따라 처형해 원성을 샀다고 한다. 378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발렌스 황제가 전사한 뒤 직위에서 물러나 에페수스에서 여생을 보냈다가 380년 1월 네메시스 신전 계단에서 미끄져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는 바람에 사망했다고 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볼시니의 여신 노르티아에게 시를 바친 시인 루피누스 페스투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3. 로마인들의 위대한 업적 요약(Breviarium rerum gestarum populi romani)[편집]


페스투스의 저서 <로마인들의 위대한 업적 요약>은 발렌스 황제의 지시에 따라 집필된 작품이다. 발렌스는 판노니아의 평범한 농민 출신으로, 로마 제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했다. 그는 황위에 오른 뒤 자국의 역사를 면밀히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에 에우트로피우스와 페스투스에게 로마 역사를 쉽고 간략하게 정리한 역사서를 바치라고 지시했다. 그는 황제의 이같은 지시에 따라 로마 제국의 역사를 요약 정리하여 30단락으로 구성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로마 역사가 왕정 시대, 공화정 시대, 제국 시대의 3개의 주요 시기로 나뉜다는 서론(1~3항) 이후에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4~14항)는 왕정 시대부터 황제가 통치하는 시기까지 로마 제국의 확장을 설명하며, 그가 살던 시기에 존재하는 여러 속주의 창설 과정을 서술한다. 두 번째 부분(15~29항)은 크라수스부터 요비아누스에 이르기까지 바빌로니아에 대항한 전쟁, 즉 파르티아사산 왕조와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첫 번째 부분은 로마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는 내용을 다뤘지만, 두번째 부분에서는 로마의 패배도 설명하면서 동방 제국의 위협에 주의하라고 촉구한다. 특히 크라수스와 율리아누스의 죽음, 발레리아누스의 생포, 콘스탄티우스 2세의 패배 등을 강조했다. 결론(30항)에서는 다가올 전쟁에서 발렌스가 승리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며, 그의 승리를 기원한다.

그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는데, 아마도 <Notitia Dignitatum(관청 목록)>과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 타키투스, 디오 카시우스 등이 집필한 로마 연대기 등을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저서는 에우트로피우스의 것과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부터 카루스의 파르티아 원정까지 유사하다. 이를 볼 때, 두 사람은 현존하지 않는 동일한 문헌 자료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에우트로피우스의 <로마 역사 요약>과 함께 중세 시대에 여러 수도자들에 의해 100개 이상의 사본으로 복사되었다. 가장 오래된 원고는 9세기 사본인 '밤베르크 대성당 사본'을 들 수 있으며, 그 외에도 파리,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페스투스의 로마 역사 요약서는 에우트로피우스의 요약서와는 달리 오류가 많고 문체 수준도 매우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인 오류로는 로마가 히에로 2세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시라쿠사를 정복했다는 것,[1] 메텔루스 피우스세르토리우스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사르데냐코르시카를 공략했다는 것,[2]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스페인 원정에서 승리했다는 것[3] 등을 들 수 있다. 그렇지만 4세기 로마인의 자국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어땠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며, 다른 역사서에는 확인할 수 없는 내용도 일부 있기 때문에 참고용으로 쓸만하다는 평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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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히에로 2세는 제1차 포에니 전쟁 때 로마에게 패배한 뒤 로마의 동맹자가 된 후 시라쿠사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시라쿠사가 정복된 건 히에로 2세 사후 고대 카르타고와 손을 잡고 로마에 대항했다가 시라쿠사 공방전에서 패망한 이후의 일이다.[2] 메텔루스 피우스는 퀸투스 세르토리우스를 꺾고 스페인을 로마 정부에 되돌려놨다. 사르데냐와 코르시카는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끝난 후 카르타고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가 진압군을 피해 두 섬으로 피신한 용병대 진압을 위해 카르타고군이 투입된 걸 빌미로 삼은 로마 정부에 의해 로마의 영토로 귀속되었다.[3] 술라는 지중해 동방에서 미트리다테스 6세를 상대로 제1차 미트리다테스 전쟁을 치렀지만 스페인에 간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