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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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대결
3. 포루스의 속임수?
4. 만약 인도 원정을 계속했다면?



1. 개요[편집]


Porus
생몰년도 미상

고대 인도 북서부에 위치했던 파우라바 왕조의 라자(=).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전투를 치룬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2. 알렉산드로스 대왕과의 대결[편집]


탁실라를 압박하고 있다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도 원정을 개시하면서 기원전 326년 봄, 마케도니아 왕국과 싸우게 되었다. 이때 포루스는 아비사레스에게 원군을 요청했지만 아비사레스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히다스페스 전투에서 직접 코끼리를 타며 코끼리 부대가 포함된 군대를 이끌고 방어했지만 알렉산드로스에게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행동했으며, 알렉산드로스도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포루스와 알렉산더의 일화에 따르면, 포루스는 패배 후 알렉산드로스 앞에 붙잡혀왔는데 아홉 군데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림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행동했다고 한다. 이에 알렉산드로스가 어떻게 해주길 원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왕으로 예우하라”'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른 건 더 원하는 것이 없냐고 또 질문하자 “이 요청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이 대답과 태도에 알렉산드로스는 경의를 품고 우호를 지키면서 포루스에게 원래 지역과 더 많은 영토를 주어 왕으로서 통치하게 하고, 병사들에게 약탈을 금지시켰으며, 퀸투스 쿠르티우스 루푸스의 주장에 따르면 결혼을 통해 동맹을 확고히 했다고 한다. 그렇게 포루스의 파우라바 왕국은 알렉산드로스의 마케도니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이때 포루스는 동쪽에 있는 자신보다 더 큰 난다 왕조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동쪽으로 원정을 계속하려 했지만 오랜 타향 생활에 지친 부하들이 반발하자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3. 포루스의 속임수?[편집]


포루스는 동진할 때 자신은 여기서 가장 약하고 동쪽에는 자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국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겁을 먹은 알렉산드로스의 부하들이 회군을 요청했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었다.

물론 인도에는 인도 역사에서 손꼽히는 강국인 난다 왕조를 비롯해 칼링가, 판드야, 체라, 촐라 같은 포루스의 왕조에 밀리지 않을 강력하고 큰 세력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포루스의 펀자브 왕국이 인도의 여러 왕조 중 가장 약소국이었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포루스의 세력보다 명확하게 강력했던 왕조는 난다 왕조 뿐이었다.[1] 그 외의 국가들은 기록이 부족해서 이렇다하고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결국 포루스의 말은 사실에 살을 덧댄 허풍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허풍이라고 치부하기도 힘들다. 자신을 제대로 예우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의미에서 충고를 한 것인 만큼 알렉산드로스를 무작정 속이려 했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파우라바 왕조가 최약체라는 말을 들은 다음에 마주친 세력이 당대 인도 최강이었던 난다 왕조라는 점도 한 몫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만약 인도 원정을 계속했다면?[편집]


현지 보급을 하면서 싸워왔던 마케도니아군은 인도에 도달했을 때는 지쳐있었고 피해를 많이 입어 잔존 병력이었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와 달리 처음 마케도니아에서 페르시아에 건너왔을 때 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커져 총 병력이 12만명에 달해 있었다. 이마저도 히다스페스 전투에 투입된 병력일 뿐 전력을 쏟아 붓지 않았다. 그리고 히다스페스 전투나 그 전 스키타이족과의 전투에서도 보급은 항복한 근방 태수들이나 정복한 현지에서 조달했고, 심지어 포루스 이전에 마주한 인도의 왕들 또한 이미 항복한 상황이라 보급 관련으로 큰 문제가 없었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로스가 더 싸울 수 있다고 말한 것이며, 병사들도 이길 자신이 없어서 힘들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전쟁에 지쳐서 한탄한 것이다. 그런 사실에 입각해 회군을 하지 않았으면 여러 나라가 분립된 인도에서 이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난다 왕조의 국력과 별개로 험한 지역도 많아서, 현지 근방에서 보급한다 해도 그 다음 영토로 건너거나 적들에게 가는 것만 해도 보급이 힘들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승전을 거듭한다고 해도 험난한 행군을 장기간 이어간다면 과연 병사들이 견딜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2] 그리고 정복했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인도의 점령지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3]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후 통치 스타일이 현지 관리나 군주에게 권력을 주고 맡기는 방식이었던 만큼 잘하면 알렉산드로스 당대에는 지배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겠지만 이미 본국 마케도니아조차 알렉산드로스의 카리스마 하에 유지되던 만큼 그가 죽으면 곧장 세력권에서 이탈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 지역에 알렉산드로스가 남겨둔 그리스 주둔군들은 현지에 동화되어 별개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인도-그리스 왕국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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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난다 왕조는 20만명의 보병, 6만명의 기병, 8천대의 전차, 6천 마리의 코끼리 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후대의 마우리아 왕조의 상비군은 60만명의 보병, 3만명의 기병, 9천 마리의 코끼리 부대였다고 한다.[2] 애초에 전투를 거부한 시점에서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끄는 군대는 한번도 패전을 겪지 않았다.[3] 토착인 왕조인 마우리아 제국조차 인도 아대륙 전부를 통일한 것은 찬드라굽타 다음대였고 유지하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