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모리타니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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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19세기
2.2. 20세기
2.3. 21세기
2.3.1. 2000년대
2.3.2. 2010년대
2.3.3. 2020년대
3. 문화 교류
4. 대사관
5. 관련 기사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프랑스모리타니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모리타니는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었고 20세기 중반에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19세기[편집]


1814년, 프랑스가 파리 조약에 의거해 모리타니 일대의 서해안 지역에 진출했다.# 프랑스는 모리타니 서해안 지역에 진출하면서 현지 주민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전반적인 식민지배를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지역을 차지하기 시작하면서 모리타니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2.2. 20세기[편집]


1901년부터 프랑스는 모리타니 일대를 차지했다. 트라자, 브라크나, 타간트 등을 1903-1904년까지 식민화했다. 그리고나서 북부의 아드라르도 지배했다. 프랑스의 지배와 식민 확장 동안에 현지 주민들은 반발 및 저항을 했지만, 프랑스군은 현지 주민들을 탄압 및 진압했다. 1912년에 군사적으로 완전히 진압되면서 1920년부터 모리타니 지역은 완전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가 되었다.

프랑스의 지배 기간에 유목민들도 있었지만, 동시에 정주민도 늘어났다. 누악쇼트는 프랑스의 지배기간에도 작은 마을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강압적인 지배는 현지 주민들의 반감만 사게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프랑스령 지역에서 독립 움직임이 커졌고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프랑스는 다른 프랑스령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모리타니 지역도 1960년에 프랑스에서 독립했다. 프랑스에서 독립한 뒤에 이슬람 공화국이 되었다.


2.3. 21세기[편집]


역사적인 이유로 갈등이 일부 존재한다. 모리타니는 프랑스의 지배와 영향으로 프랑코포니 회원국이자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다. 그리고 모리타니가 독립 이후에 이슬람 공화국이 되면서 프랑스 정부와는 정치, 종교 문제로도 갈등이 있는 편이다. 프랑스가 라이시테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반면, 모리타니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양국간의 갈등이 존재한다.


2.3.1. 2000년대[편집]


2004년 5월 4일, 미테랑 전 대통령의 아들 장크리스토프 미테랑이 모리타니에서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07년 2월 15일, 모리타니에서 일어난 비행기 납치사건과 관련해 모리타니 경찰은 납치범이 모로코 출신으로 프랑스 대사관에 여러차례 비자를 신청하는 등 프랑스 이주를 원했다고 밝혔다.#

12월 24일, 누악쇼트시 인근에서 프랑스인 관광객 4명이 괴한들의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1#2

12월 25일, 모리타니 당국은 프랑스 관광객들을 살해한 괴한들이 알카에다 소속으로 의심했다.#

2008년 2월 1일, 주 모리타니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테러가 일어난 것과 관련해 프랑스 외교부는 프랑스 국적자 남성 2명, 여성 1명이 부상당했다고 밝혔다.#

8월 11일, 프랑스 측은 모리타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원조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8월 28일, 프랑스 측은 모리타니 군부에 대한 제재를 준비중이라고 밝혔다.#


2.3.2. 2010년대[편집]


2010년 7월 22일, 프랑스는 모리타니군을 지원해 말리 국경부근에서 알카에다 기지로 추정되는 곳을 공습했다.#

2012년 10월 14일, 모리타니 측은 대통령이 총상을 입어서 프랑스로 치료하러 떠났다고 밝혔다.#1#2

11월 24일, 모리타니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은 뒤, 모리타니로 귀국했다.#

2014년 7월 13일, 프랑스 국방부는 모리타니, 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차드 등 5개국과 협력해 대테러작전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14일, 프랑스는 말리, 모리타니, 부르키나파소 등 서아프리카 5개국에 파견된 프랑스군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에 가담한 200명을 제거하거나 생포했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2일, 말리에서 개최된 G5(말리, 모리타니, 니제르, 부르키나파소, 차드) 정상회의에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했다.#

8월 6일, 프랑스 당국은 에펠탑 인근에서 흉기테러를 저지른 프랑스인이 모리타니 출신의 프랑스 시민권자라고 밝혔다.#


2.3.3. 2020년대[편집]


2021년 4월 23일, 프랑스 정부는 코백스를 통해 모리타니에 코로나19 백신 10만회 분을 기증했다.#

2022년 11월 19일, 튀니지에서 열린 프랑코포니 정상회의에 프랑스 정상, 캐나다 정상을 포함해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튀니지 외에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가봉, 모리타니, 니제르, 부룬디, 르완다 등이 참석했다.#1#2


3. 문화 교류[편집]


모리타니는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어아랍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돼 있다. 그리고 프랑스어는 모리타니에서 널리 쓰이는 언어로 일생상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4. 대사관[편집]


누악쇼트시에 주 모리타니 프랑스 대사관이 존재한다.

2009년 8월 9일, 프랑스 대사관에 대한 폭탄테러가 일어나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했다.#

2015년 1월, 누악쇼트시에서 샤를리엡도 항의 시위를 하기 위해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으로 진입하려고 하자 경찰들이 막았다.#


5. 관련 기사[편집]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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