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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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이아 백작
피에트로 2세
Pietro II, Conte di Savoia


출생
1203년
사보이아 백국 수사
사망
1268년 5월 16일 (향년 64~65세)
사보이아 백국 피에르샤텔
묘소
오트콩브 수도원
재위기간
사보이아 백국의 백작
1263년 6월 7일 ~ 1268년 5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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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아버지 토마소 1세
어머니 제네바의 마르그리트
배우자
포시니의 아녜스
자녀
베아트리체
가문
사보이아 가문
종교
로마 가톨릭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사보이아 백국백작. 작은 샤를마뉴(il Piccolo Carlomagno)[1]라 불릴 정도로 무예에 출중했고 많은 업적을 남겨 사보이아 백국의 중앙집권화에 기여하였다.


2. 생애[편집]


사보이아 백작 토마소 1세와 제네바의 마르그리트의 7남이다. 부친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성직으로 보내졌으나 성격에 맞지 않아 성직 임무는 때려치고 스위스 서부 시옹 성[2]에 거점을 두고 사보이아 가문의 영토를 넓히는 확장 정책에 골몰했다.

1236년에 조카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와 결혼하면서 잉글랜드 왕국으로 건너갔다. 헨리 3세 휘하에서 활약하면서 여러 영지를 받았고 그중 한 곳에 런던 사보이 궁전(Savoy Palace)을 지었다.

아메데오 4세가 사망하고 어린 조카 보니파초가 즉위하자 동생들과 함께 사보이아 백국을 분할하려 했으나 섭정을 맡았던 둘째형 피에몬테 영주 토마소 2세의 중재로 재산을 보상으로 받았다. 1263년 보니파초가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전사하자 가장 나이가 많은 친척[3]으로 사보이아 백작이 되었으며, 잉글랜드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보이아 백국의 중앙집권화를 추구하였다.

포시니의 아녜스와 결혼했으나 딸 하나만 두었기 때문에 사보이아 백국은 가문의 최연장자였던 막내동생에게 물려주었다.
[1] 프랑스어로는 le Petit Charlemagne[2] 조지 고든 바이런이 지은 시옹의 죄수(The Prisoner of Chillon)의 배경이 되는 성이다.[3] 토마소 2세는 1259년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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