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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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번역
4.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荷齋日記. 도자기를 생산하던 분원공소(分院貢所)의 공인(貢人)이었던 지규식(池圭植)이 조선 고종 28년, 1891년부터 1911년까지 약 20년 7개월 동안 쓴 일기. 총 9책이며,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편집]


경기도 양근군 남종면 분원리(현재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도자기 만드는 일을 했던 평민 지규식이 1891년 1월 1일부터 1911년 윤 6월 29일까지 20년 7개월간 쓴 일기로, 저자인 지규식이 자신의 일상 생활과 그가 일하던 분원의 운영에 대한 내용, 그 외 당대 사회상 등에 대해 상세히 기록해놓은 것이다.

1851년 생인 지규식은 당시 중인 계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기 위해 노력하던 평민이었다. 하지만 같은 처지였던 처남 한시규가 1875년 9월 6일에 서리 직책을 얻었던 것과는 달리 지규식은 끝까지 감투를 쓰진 못했다. 하지만 한시에 능숙했고 관련 지식이 높았으며, 1891년 8월 30일에 명례궁 고지기 자리가 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노렸던 것을 보면 당시 평민들 중에서는 꽤 부유하고 인텔리한 측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기에 따르면 지규식은 1883년에 분원공소(分院貢所)의 일개 공인으로 일을 시작하였는데 훗날 국가 재정 문제로 인해 진행된 감생청(減省廳) 주도의 정부 기관 개혁의 일환으로 분원공소가 민영화될 때 대표로 발탁되어 책임 운영을 맡게 된다. 이후 1895년 분원이 완전 민영화 되고 1897년 2월에 번자회사로 변모했을 때 자금을 동원하여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고, 가마와 창고 등을 임대하여 경영을 하였으며, 독자적으로 은곡점이라는 도자기 생산 공장까지 차리게 된다. 1910년에 분원자기주식회사로 발돋움할 때 발기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지규식은 분원리에 살면서 주로 분원과 서울을 오가며 업무를 보았는데, 분원에서 생산된 도자기를 궁실과 서울 각지의 상인들에게 납품하고 수금하는 일, 사점(私占)들이 몰래 제작한 도자기의 유통을 금지하고 감시하는 일, 분원과 사옹원과 중앙 관리 부처와의 여러 갈등들을 조정하는 일, 공인의 제반 권리를 지키는 일 등을 수행하였고 이를 일기에 모두 남겼다. 또한 1906년에는 자신의 재산을 동원해 분원보통학교를 설립하고 교사 초빙과 교재 구입 등을 출자하여 분원리 마을 아이들이 신식 교육을 받게 하였으며, 이러한 학교 운영 과정도 일기로 남겼다.

하재일기에는 한 평민의 눈을 통해 기록된 조선말의 사회상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약 10여년간의 산대괴뢰패, 굿중패, 전통 연희패 등의 판소리 자료, 각종 한식 자료, 근대 전환기 지방의 학교 교육 자료, 당시 분원리 신앙 의례인 고청 신사에 대한 자료, 지방 공인과 서울 상인과의 각종 계모임과 교류와 금전 거래 형식 자료, 1911년 3월 저자가 천도교로 개종하여 손병희를 만난 일과 이를 통한 각종 천도교 교리 학습 내용 등 조선말 우리나라의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상세히 연구해 볼 수 있는 자료이다.


3. 번역[편집]


2005년에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에서 번역을 완료하였다. 한국고전번역원 : 하재일기 1
서울특별시 eBook홈페이지에서 하재일기 번역본 전권(8권)을 E-Book으로 열람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eBook 홈페이지


4.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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