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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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안군 출신 독립운동가, 한진석
2. 정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한진석



1. 수안군 출신 독립운동가, 한진석[편집]


파일:한진석.png
성명
한진석(韓眞錫)
생몰
1878년 4월 23일 ~ ?
출생지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 창후리
사망지
미상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한진석은 1878년 4월 23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 창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3일 황해도 수안군 수안읍에서 천도교 수안교구 간부 한청일홍석정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해 10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수안헌병분대 앞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헌병대의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다 헌병 분대장의 회유에 따라 시위대가 일시 해산되자 자택으로 귀가했지만, 오전 11시경 다시 시위가 열리자 즉시 가담해 수안헌병분대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20년 1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한진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2. 정주시 출신 독립운동가, 한진석[편집]


성명
한진석(韓鎭錫)
생몰
1875년 10월 25일 ~ 1920년 9월 24일
출생지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
사망지
중국 지린성 통화현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한진석은 1875년 10월 25일 평안북도 정주군 정주읍 성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주에 신안학교(新安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으로 취임하여 청소년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한편으로는 신안병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환자들에게 무료치료를 해주기도 하였다. 또한 안창호·윤치호 등과 함께 애국심 고취를 위하여 각지를 순회하며 시국에 관한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어 신문을 받았다. 한진석 신문조서 이후 안병찬, 이유필(李裕弼) 등과 함께 지도(智島)등 여러 섬으로 유배되었다. 후에 사면된 그는 1917년 정월 만주 흥경현 왕청문으로 망명했다.

1919년에는 한족회(韓族會) 총관(總管)을 맡아 독립운동을 지속했지만 1920년 9월 24일 중국 지린성 통화현에서 체포된 직후 피살되었다. 지안 통화현 흉악 불령선인 검거의 건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한진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헀고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