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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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김하균이 배역을 맡았는데, 황희의 건의로 예조참판으로 제수되면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함께 예조판서로 제수된 맹사성과 같이 다니는 장면이 많은 편. 다만 배우의 사정상 실제 허조와는 달리 체격이 크고 살집이 있는 모습이다
2. 작중 행적[편집]
역사상의 실제 모습을 반영했는지 하급관원의 행태가 마음에 안들면 미친듯이 갈구는 한편, 고급관원이나 심지어 왕에게도 돌직구 직언(을 빙자한 꼬장)을 서슴지 않는 강경한 원칙주의자이다. 그래서인지 "닥치고 내 말 들어라."가 레파토리로 나올만큼 꽤 드센 꼰대 그 자체를 보여준다. 첫 등장 씬부터 소를 타고 온 자기 직속상관인 맹사성에게 "가축은 사축서에서 관리하는데 왜 궁궐에 소를 끌고 오냐"며 갈궜다.[1] 나중엔 그 무서운 임금 태종이 꺼리는 주제[2] 를 계속 꺼내면서 태종의 심기가 불편해지든 말든 상관없이 대전에서 다같이 쫓겨날 때까지 간언을 했다. 그리고 편전에서 나와 모여가던 중 맹사성 왈, "그 목 붙어있는 거 진짜 용타! 허허…" 그런데 여기다 대고 허조는 조정 중신[3] 들이 다 모여있는데도 대놓고 "제가 뭐 틀린 말했습니까? 대체 전하께서는 왜 저러시는 겁니까?"라며 대놓고 뒷담까지 깠다! 유정현이 옆에서 "전하께서는 장자세습을 고집하고 있으니 이해하자"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도, "아직도요? 아직도 그 안하무인을?"이라면서 비꼬았다. 곧이어 궁에 도착한 양녕대군을 마중하러 대신들과 같이 나가는데, 양녕대군이 대죄를 하기는커녕 혼자 말을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리자, 이를 보고는 유정현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또 비꼰다. 옆에서 하급 관원들[4] 마저 심한 말로 양녕대군을 비판해대는데, 이를 다 듣고도 뭐라 꾸짖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무려 명나라 예부상서 여진 앞에서 위에 언급한 순장 문화를 지적하며 대놓고 명나라를 디스하는 패기를 보인다(!).( "산 사람을 무덤에 생매장하는 짓이나 하는 나라는 대국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원칙주의 성향 탓에 황희에게 제대로 낚이기도 했다. 예조판서 시절 조말생이 주도한 단체 파업에 허조도 동참하자 황희는 일부러 예조의 인사를 엉터리로 구성했다. 당연히 허조는 빈청에 난입해서 무슨 인사안을 이따위로 만들었냐며 황희에게 강하게 항의하였다. 그러자 황희 왈, '복귀를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인사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당연히 그 꼴을 두고 볼 수가 없는 원칙주의자 허조는 그대로 업무를 재개해야했다. 유튜브 등지에서 간간히 보이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짤이 이 장면에서 나왔다.[5]
황희가 만든 인사안에 대해서는 57화에서 조정 대신들이 복직한 황희에 대해 서경권을 발동하고자 했을 때 한 번 더 언급되었는데, 이 때 대사가 꽤나 명대사에 속한다.
그 외에도 여러 명언이 있는데, 아래 명언은 75회에서 한 노비가 억울하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낙인 찍혔는데도 지방 관원이 조사를 대충 마무리하고 보고를 올리자 화가 난 허조가 한 말이다.
윤회가 사망한 78회를 마지막으로 소리 소문없이 하차한다. 실제로 윤회가 1436년에 죽고 허조가 그로부터 3년 뒤(1439년)에 죽은 데다가, 바로 다음 에피소드인 79회는 1441년의 시점을 다루고 있으니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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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작품에선 맹사성도 제법 능글맞아서, 맹사성도 이에 질세라 "저 녀석(소)이 있는 곳과 빈청(조정)이 다를게 뭔가? 시끄럽지, 당췌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지." 라고 하더니만 "허조 자네가 예조참판이라길래 예조판서직 받을지 말지 고민 많이 했다"고 맞받아쳤다(...) 한직을 떠돌던 맹사성도 알 만큼 성깔이 유명했던 모양. 실록에서도 세종께서 허조보고 고집불통이라고 했는데 저정도쯤이야...[2] 원경왕후의 요양차 태종 내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양녕대군이 군사 수천을 제멋대로 이끌고 함경북도 경성에서 전쟁을 벌이려 했다. 공조판서 황희가 이를 말리려 했으나, 결국 세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한 황희는 세자와 행보를 함께 하였다. 그러나 그 행보는 당시 왕자에서 폐위되고 경성에서 원지부처하던 충녕대군과 그 추종자들이 가로막으면서 실패로 돌아갔고, 이후 영상 유정현과 허조는 "황희를 파직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주청을 올렸다. 특히 허조가 제일 심했다. 하지만 태종 역시 장자세습을 고집하고 있던 터라 이 일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며 그냥 얼버무려버렸다.[3] 영상 유정현과 좌상 박은이 같이 있던 자리였다![4] 이수, 김종서, 정인지[5] 정확히는 이 인사안의 시작인 집현전 학사인 신장이 하정사(정기 사신)로 명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이다. 신장은 학문과 시서에 있어서는 예조 최고의 천재였으나 외교행정업무에선 늘 실수를 연발하던 최악의 덜렁이였던터라 외교관으로 보낸다는건 그야말로 나라가 망할 일이었다...[6] 예판에서 이판으로 바뀌었지만, 업무는 그대로 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