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충돌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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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충돌.jpg

1. 개요
2. 사고 내용
3. 사고 이후



1. 개요[편집]


2003년 10월 15일 미국 뉴욕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페리선 충돌사고.


2. 사고 내용[편집]


사고를 일으킨 배의 이름은 '앤드류 J. 버버리(MV Andrew J. Barberi)로, 사고 년도 기준 제작된지 22년 된 페리선이었다. 이름은 커티스 고등학교#의 유명 풋볼 코치 이름에서 따왔다. 길이는 약 94m, 최대 속도 약 시속 30km, 최대 6,000명이 탑승 가능하다.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 소속 여객선 중 한대로, 평소 뉴욕에서 맨해튼 섬과 스탠튼 아일랜드 사이를 오고갔다.
사고 당일에도 승객 1,500여명을 태운 채 맨해튼 섬에서 스탠튼 아일랜드로 향했다. 이동하는데는 2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속 64km의 강풍이 부는 가운데, 배는 스탠튼 아일랜드에 다다랐다. 당시 뉴욕 시 규정상 배가 정착할 땐 조종실에 배 조종 가능한 사람 최소 2명이 있어야 했으나 항해사 리처드 스미스(Richard J. Smith)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배가 정착을 하려 하는데, 리처드 스미스가 사고 전 날 고혈압 약을 안먹은 부작용으로 잠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났을 땐 키를 실수로 고속 상태로 바꾼 뒤였다. 오후 3시 20분, 배는 부두에 최고 속도로 돌진해 충돌했다.

충돌의 충격으로 배의 일부가 깎여나갔다. 피해자는 "깡통 따개로 따듯이 찢겨졌다." 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배에서 내릴 준비를 마친 승객들이 충돌한 부분에 몰려 피해가 커졌다. 충돌 하면서 신체가 잘려나간 피해자들도 있었다. 겁에 질린 몇몇 승객은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어 뭍까지 헤엄쳐 갔다. 안에 남아있던 승객들도 전부 구조되기 까진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사고로 11명이 사망했다. 10명은 현장에서, 1명은 부상으로 2달 간 치료받다 사망했다. 부상자 수도 70명을 넘었다.


3. 사고 이후[편집]


사고를 난 항해사 리처드 스미스는 현장에서 도망쳐 집으로 향했다. 스미스는 집에서 칼로 손목을 긋고, 공기총을 가슴에 2번이나 쏘면서 자살시도를 했으나 실패, 이후 경찰에게 체포됐다.

리처드 스미스 외에도 4명이 사고와 관련되어 체포됐고, 리처드 스미스와, 스탠튼 아일랜드 페리 감독관이 살인 혐의를 인정받아 구속됐다. 리처드 스미스는 징역 18개월, 스탠튼 아일랜드 페리 감독관은 1년 1일 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에는 같은 배가 같은 장소에서 또 사고를 내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 이땐 사망자는 없었다.

2024년 5월 중순에 사고 선박에 경매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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