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조선족 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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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의 자치주
延边(yánbiān朝鲜族(cháoxiǎnzú自治州(zìzhìzhōu
延邊(연변朝鮮族(조선족自治州(자치주
[1]
연변조선족자치주/옌볜조선족자치주[2]
Yanbian Korean Autonomous Prefecture





주정부 소재지
지린성 옌볜조선족자치주 옌지시
궁위안루2799호[외래어표기법][3]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공원로 2799호[연변조선어표기]
吉林省延边朝鲜族自治州延吉市
公园路2799号
지역
둥베이
면적
43,509km²[4]
하위 행정구역
6 현급시 2현
시간대
UTC+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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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941,700명 (2020)
인구밀도
45명/km²
민족 구성
한족 64.55% | 조선족 32.45%
만주족 2.52% | 회족 0.28%
서기
후자푸(胡家福)
주장
홍경(洪庆/洪慶)(조선족)
GRDP
전체
$137억 8,900만 (2015)
1인당
$6,441 (2015)
시화
진달래
차량번호
吉H, 吉K[1]
행정구역 약칭
延边
행정구역코드
222400
지역전화번호
0433
우편번호
133000
ISO 3166-2
CN-JL-24

홈페이지

1. 개요
2. 기후
3. 역사
4. 인구 구성
5. 산업
6. 주변 지역과의 교류
7. 언어
8. 예하 행정구역
9. 인구
10. 출신 인물
11. 관련 문서
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연변(延边, Yánbiān, 옌볜) 조선족 자치주는 중국 지린성의 행정구역으로, 지급시에 상당한다. 자치주의 주도(州都)는 연길시(延吉市)이며, 면적은 43,509km².

연변 '조선족' 자치주지만 현재는 정작 조선족보다 한족이 더 많이 살아서, 2020년대 연변 총 인구 약 200만명 중 한족이 60.19%, 조선족이 35.60%를 차지한다.[5] 사실 이런 현상은 중국 내의 모든 자치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특히 내몽골 자치구에서 가장 심하다.[6]


2. 기후[편집]


북쪽에 위치하여 기후는 춥다. 연길의 1월 평균기온은 -13.6℃이며, 7월 평균기온은 21.5℃이다.# 연강수량은 528mm로 적은 편. 서북쪽 돈화시의 경우 더 추워서 1월 평균기온이 -16.6℃에 달해 자강도 중강진(-16.1℃)과 비슷한 수준. 기후 상황은 한반도와 비슷한데, 한반도에서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도 십중팔구 비가 오고, 한반도에 한파가 몰려오는 기간에는 여기도 추위에 시달린다.


3. 역사[편집]


지린성 동부에 위치한 중국 유일의 조선족 자치주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교차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43,474㎢, 인구는 218만으로, 대부분은 연길시에 60%가 거주하는 중국 최대의 조선족 집거 지역이다. # 이 지역은 고구려, 발해의 영토였고 고구려에서는 변방이었지만 발해의 경우 중심지와 겹친다. 조선 말기부터 우리 민족이 이주하여 개척한 지역으로 한국에서는 '동간도'라고 불렸다.

이에 청조(淸朝)는 1902년 대한제국과의 영토 분쟁에 대응하고, 이 지방의 한국인을 관리할 목적으로 ‘연길변무독판공서(延吉邊務督辦公署)’를 설치하였으며 지금도 그 건물이 남아 있다. 이 관청이 설치된 곳이 연길시로 발전했다.

이후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연길 지방을 연길시와 구분할 목적으로 ‘무독판공서’의 줄임말인 ‘연변’을 행정 구역의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으며, 특히 '邊'은 지역, XX쪽이란 뜻으로 소련·조선과의 국경 지대라는 의미를 내포하기 때문에 점차 공식적으로 자리잡아 갔다. 만주국이 들어서면서는 행정 구역의 이름이 '간도성'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1946년 중화민국이 동북지역의 행정구역을 동북 9성으로 정비하였을 때는 쑹장성과 지린성에 속했다.[7]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1952년 옌볜조선족자치구가 설치되었으며, 1955년에는 돈화현과 합병되면서 옌볜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연변조선족자치주)로 개칭되었다. 자치주의 수부 옌지시에는 한국상회, 옌볜한국국제학교# 등이 있다.

중국공산당 수립 직후인 1952년 9월 3일 조선족자치구가 되었다. 이것이 소위 구삼절(九三節)로 자치주 차원의 공휴일이다. 6.25 전쟁에서 북한군의 주력으로, 그리고 중공군에 참전하여 북한 공산정권을 위해, 숱한 피를 흘렸다.

1952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자치구(延边朝鲜族自治区)는 전후 1955년 조선족이 극히 드문 돈화가 편입되며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로 격하된다. 돈화의 편입은 조선족자치주를 약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돈화지역은 자치주의 다른 지역과 달리 조선족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자치구가 1급이고 자치주가 2급이다. 비록 조선족자치구가 위구르티베트, 내몽골 자치구와 같은 동급의 자치구역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명칭뿐이더라도 내려앉은 것.

다만 중화인민공화국 소수민족 자치지역이 구, 주 등으로 개편된 것이 1954년인 것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자치구였던 시절에도 연변조선족자치구는 성급 자치구가 아니라 지린성 아래 있던 자치구였고, 따라서 연변 조선족들은 주변의 조선족들이 사는 지역을 편입시켜서 성급 자치구로 승격하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


4. 인구 구성[편집]


2021년 말 기준 연변의 총 인구는 2,029,400명이다. #

연변 '조선족' 자치주지만 정작 조선족보다 한족이 더 많다. 전자는 함경북도계가 대부분이고, 후자는 산둥성계가 대부분이다. 두 민족 모두 대부분 근대에 이주한 민족들이다. 한족이 122만 1,500명으로 전체 인구의 60.19%, 조선족이 72만 2,400명으로 35.60%를 차지한다.

조선족출산율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한국보다도 낮은데, 2010년 기준으로 조선족의 합계 출산율이 0.98이었다. 통계상으로 보면 1999년까지 출산율이 2명대 정도였지만 그 이후로 한국중국 대도시 지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며 줄어든 것.

동북 3성 자체가 극도의 저출산과 고령화, 타 지역으로의 인구 유출로 중국 내에서도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지역으로 손꼽히지만, 연변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2021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내 조선족 인구 비중이 30%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2016년부터 연변에 3자녀 출산을 허용하며 대책에 들어갔다. #

5. 산업[편집]


과거에는 연변 자치주 지역의 소득 수준은 상위권이었지만, 공업이 별로 발달하지 않아 예전만 못하다. 연변 지역이 중국 대도시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고, 공장이 들어서기에도 중국 내 단둥 같은 주요 항구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별로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인접해있다는 것이 그나마 연길이 가진 메리트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1990년대 한중수교 이전까지 북한과의 교류가 꽤 빈번했다고 한다. 이때에는 중국의 경제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고 북한의 공업화가 진전되던 상황이라, 북한제 물품이 중국제 물품보다 훨씬 품질이 좋아서, 북한 물품이 연변 각지에서 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1980년대 이후로 북한이 점차 쇠퇴되고 1990년대 와서 한중수교로 교류길이 열리면서,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 것. 물론 현재도 북한과의 교류는 어느 정도 있고, 북한으로 중국제 물품이나 남한제 물품을 수출하는 일종의 창구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남한과의 교류가 더 활발하다. 그래도 북한 내에서 한국 소식을 듣거나 중국산 공산품이 반입되는 통로이기에, 북한 입장에서는 연변과의 교류가 매우 중요하다.

폐쇄된 북한의 상황 때문에 북한의 항구를 쓰기 쉽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90년대 이후에는 북한의 구매력이 형편없어지면서, 공업의 발달이 지체되었다. 아울러 개혁개방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이후로부터 많은 조선족들이 돈을 벌려고 한국이나 중국 내에 있는 대도시로 일하러 가서 인구도 감소했고, 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질래야 이루어질 수 없었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1960년대 한국 풍경이 펼쳐질 정도이다. 2015년 기준 자치주의 1인당 GDP는 6,441$로 중국 평균(8,068$)보다 낮은 수준이었으며, 지린성에서는 9개 지급 행정구역중 7위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최동남단의 혼춘(琿春)을 동북 지역에서 바다로 나가는 창구로 여기며 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크라스키노 -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등 러시아 극동지역 도시로의 육로 이동도 가능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


6. 주변 지역과의 교류[편집]


조선족 자치 구역인 만큼 한국과 이래저래 교류가 많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출신들이 괄시를 받는 경향이 있었다고는 하나(남한 출신이 북한 출신에 비해 괄시를 받았다는 의미), 1990년대 이후로는 한국에 친척이 있는 조선족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한국에 취직하면서 사정이 뒤집혔다. 경제적ㆍ문화적ㆍ사회적으로도 한국의 깊은 영향을 받는 지역이라서 한국매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노래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음식도 쉽게 맛볼 수 있지만, 한국영사관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연변 주민들이 한국행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700여 km(연길 기준) 떨어진 선양의 대한민국 총영사관까지 가야 한다. 이 거리면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이용해도 최소 9시간 걸린다.

아울러 북한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창구이다. 북한 제조업은 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대차게 타격을 입으면서 주요 소비재들이 중국을 통해 수입되고 있고, 아울러 북한/경제장마당 위주로 돌아다니게 되면서 장마당 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돈주들의 돈줄 상당수도 연변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며, 한국 소식들이나 영상매체들도 연변을 통해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중요한 창구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주로 함경도 일대의 유통을 책임지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1990년대 당시에는 남한가요가 북한에서는 연변가요로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어느정도 정보가 퍼지고 한국 가수들의 공연도 여러번 벌어진 2000년대 이후로는 다들 남한가요라고 알 수 있다.

2016년 10월 경에는 북한의 5차 핵실험으로 방사능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심화되자 방사능 오염에 대한 검사를 했다.# 다만 생각보다 별 문제는 없었는지 이후 잠잠해졌다.

7. 언어[편집]


연변자치주 곳곳의 가게들을 보면 간판에 한국어를 위에 쓰고 아래에 중국어를 병기한 경우나 좌우로 한국어와 중국어를 병기해 놓은 곳이 많은데, 간판에 한국어를 써넣지 않으면 가게 허가가 안 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소수민족 자치구들은 중국어를 쓰되, 그 지역 소수민족 문자로도 병기해야 한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곳은 한국식의 세련된 폰트나 북한 폰트, 한족이 운영하는 곳은 굴림체돋움체, 궁서체 계열을 많이 쓴다. 자치주 외에서도 조선족이 많이 사는 흑룡강성 하얼빈시, 무단장시 등의 도시 일부 지역에서 이러한 간판 형태가 발견되기도 한다.

훈춘의 경우 러시아 접경으로 러시아어 - 한국어 - 중국어의 3개 언어 병기를 볼 수 있으며, 이곳 조선족들은 러시아어를 섞어 쓴다. 조선족들의 외래어 차용어는 중국어를 제외하면 대개 러시아어 차용어들이며, 영어 차용어와 일부 프랑스어 차용어가 존재하는 남한식 한국어와 달라 서로 말이 안 통하기도 한다. 애초에 동북 방언에 중국어와 러시아어 차용어들이 많다. 그러다가 한국과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남한식 한국어의 영향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8. 예하 행정구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30px-Yanbian-map.png
6개 현급시, 2개 현이 있다. 연길, 용정, 도문은 중국 치고는 행정구역 면적이 작은 편. 다른 현급행정구는 면적이 엇비슷한데 이 세 현급시만 유독 다른 시/현보다 면적이 작은 이유는, 원래는 셋 다 같은 연길현에 속해 있었는데, 여기서 연길시와 도문시가 먼저 분리 승격한 다음, 잔존 연길현이 용정현으로 개칭 후 현급시로 승격되었기 때문이다.[8] 중국도 우리처럼 20세기 초중반에 도농분리제를 도입해 현의 일부를 분리 승격시켜 시를 설치하도록 한 역사가 있어서, 이렇게 과거에 실시된 도농분리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시: 연길시, 용정시, 화룡시, 도문시[9], 돈화시, 훈춘시[10]
  • 현: 안도현, 왕청현


9. 인구[편집]


  • 볼드체는 주도.
도시명
총인구
조선족 인구 (명)
조선족 인구비율
연변
연길시
410,000
200,000
48.8%
용정시
250,000
190,000
76%
화룡시
210,000
152,000
72.4%
도문시
130,000
82.000
63.1%
훈춘시
220,000
80,000
36.4%
돈화시
480,000
22,000
4.6%
안도현
210,000
52,000
24.8%
왕청현
250,000
85,000
34%

2,160,000
863,000
40%
총인구는 2003년 추정치. 조선족 비율은 총인구와 조선족 인구가 같은 해에 측정되었다고 가정, 산출했다.


10. 출신 인물[편집]



11. 관련 문서[편집]




12.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9 13:48:01에 나무위키 연변 조선족 자치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소수민족 자치구나 자치주는 소수민족의 문자를 중국어와 병기한다. 옌볜의 소수민족 언어가 한국어로 이 위키의 언어와 일치하고,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옌볜연변을 복수표준어로 인정하므로, 문서명은 후자를 따른다. [2] 대한민국 외교부 및 언론사에서 지칭하는 외래어 표기[외래어표기법] [3] 다만 길림성, 연변, 연길도 국립국어원 기준으로 복수표준어이기는 하다.[연변조선어표기] [4] 경기도 + 경상도의 면적과 비슷하다. 또한 평안도와도 비슷하다.[5] 약 72만명 수준.[6] 몽골족 인구는 20%가 채 되지 않고, 한족 인구가 80%에 육박하는 지경. 이는 (실제 여부를 떠나 의식화된) 한족이 약 90%를 차지하는 중국에서 소수민족분리독립운동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보인다.[7] 1955년 편입된 돈화현은 지린성에, 나머지 지역은 모두 쑹장성에 속했다. 대만/영유권 주장 지역 문서 참고.[8]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기 전의 창원시, 마산시, 진해시와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9] 토문이라고 불리기도 함.[10] 한국 한자음으로는 혼춘이나, 조선족들은 중국음으로 훈춘으로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