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여담 (r1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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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가족 관련
3.1. 의 인기
4. 기자들 사이에서의 인기



1. 개요[편집]


유승민의 여담에 관한 문서.

2. 상세[편집]


  • 원내대표 시절 원내부수석이었던 조해진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젠틀맨으로 불렸다. 국회 사무처 직원들과 의원 보좌관들한테 정말 잘해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소위 친유승민 정치인들은 더민주와 정의당 등 상대 진영에서 평이 좋다.
  • 원래 흡연자였으나 2020년 총선 이후 금연하는 중이라고 한다.
  • 유승민은 이회창의 제안으로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부임할 때까지만 해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유승민이 바라는 것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어서 본인이 경제수석이 되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즉 본래부터 유승민은 본인이 배운 경제학을 현실에 접목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이회창이 예상치 못하게 패배하면서 계획이 흐트러졌고 이는 유승민이 정치에 뛰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 박근혜를 주군이나 상전으로 여긴 적이 없고 동등한 관계인 정치적 동지로 여겼다고 한다. 물론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만큼 존대는 했지만 그것이 전근대적인 의미로의 충성심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05년 세번이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비서실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을때, 할말은 하겠다는 조건으로 9개월간 수행했었다. 이 시기 박근혜에게 정수장학회에서 손 떼라고 조언했으나 박근혜는 비서실장이 그런 거 신경쓰지 말라 했고, 이때부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 자신을 '시'민이라고 혼동할 때가 가장 당혹스럽다고 한다. 이는 유시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작 유시민을 제대로 쓰면 류시민이 되기 때문에, 유승민과는 성씨가 아예 다르다. 유시민은 "유승민 씨는 저와 성이 달라서, 유비 할 때 劉 씨를 사용합니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또한 풍산 류씨를 포함한 柳씨는 적극적으로 '류'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고 강릉 유씨를 포함한 劉씨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이건 정치 행적 이야기고 두 사람은 서울대 경제학과 2년 선후배에 중학교도 선후배(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1][2][3]

  • 100분 토론에서 대표적인 진보 논객 유시민과 경제정책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새삼 화제가 되었다. 그동안 100분 토론에서 보수 측 인사들이 유시민과 토론을 하면 언변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유승민은 기본적으로 언변이 뛰어나고, 만렙 경제학자답게 논지에 어긋나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며 경제 지식에서 유시민을 압도한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정치적인 공방에서도 유시민이 밀리는 분위기였다. 어찌보면 당시 과반을 간신히 넘기는 여당 입장에서 여러 비판을 받는게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위 토론의 주제는 정책에 관하여 여러가지 사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었는데, 실리를 따지는 논쟁(ex 수도권 공장총량제)에서 불리해지면 철학적 소견(국가 균형발전)을 이유로 회피하고, 옮고 그름을 논할 때(출자총액 제한제도) 불리해지면 갈라파고스적인 우리나라의 현실(재벌주도의 경제구조)에 불가피한 이유를 들며 회피하는 유시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일:정봉주 유승민 몸싸움(2005년).gif

  • 2005년 12월 사학법 개정안 처리를 두고 국회가 국회 공성전을 한창 벌이면서 난장판이 된 도중 정봉주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과 몸싸움이 빚어진 적이 있는데, 정 의원이 젊은 시절 쿵후와 권투를 배웠고 고등학생때 일진도 저리가라할 정도로 전투적이었던 몸인지라 상당히 밀리는 모양새다. MBC 뉴스 정봉주 의원을 제지하러 움직인 인물은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다.

  • 박근혜한나라당의 당대표를 하던 시절 유승민이 비서실장을 맡았는데,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이회창의 밑에 있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연설문 초안을 담당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기자이자 작가 출신인 전여옥은 유승민 의원이 글을 잘 쓴다고 직접적으로 칭찬하기도 했는데, 하지만 기껏 만든 초안은 박근혜가 늘 어딘가로 갖고 가서는 연설문이 쓰레기가 되었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연설문을 막장으로 개조한 원흉은 최순실. 그걸 안 전여옥은 "누군가 했더니"라고 반응했다. 그냥 그 연설문 초안 그대로 했어도 담당자의 실력을 생각한다면 중박은 쳤을 텐데 말이다. 전여옥의 증언에 따르면 유승민이 비서실장이었던 시절 쓴 연설문을 하나도 안 고치고 그대로 읽었던 것은 제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경선 패배 승복 연설뿐이었다고 한다.

  • 한때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한 몸인 만큼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순실에 대해서 박근혜 옆에 있던 다른 무리들처럼 기껏해야 옆에서 아양 떠는 환관이나 간신배로 여겼지 대통령을 꼭두각시로 휘두르는 수준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전여옥최순실이 철부지 옆에 상궁이 나타났다고 여겼지 박근혜를 꼭두각시로 부리는 수준이었다는 건 최순실 게이트가 일어나고 난 이후에야 알았다고 한다.

  • 유명 정치인 중에 임플란트로 가장 잘 알려진 건 대통령이 되기 한참 전부터 대통령이 된 이후까지 치아가 빠진 문재인이나, 사실 덜 알려져서 그렇지 정치인의 대량 임플란트 원조는 이 사람이다. 본인이 공개한 것만 15개 이상이라고 한다. 2002년말 40대 중반에 이회창 후보의 선거본부 활동때부터 치아가 빠지기 시작해 만 50살 직전인 2007년 박근혜 경선 선거본부 시절까지 심각한 치주염으로 잇몸이 마구 망가져서 15개 이상이 빠졌다고 한다. 50년도 살기 전에 웬만큼 치아잇몸 안 좋은 사람도 겪기 힘든 수준[4]의 치아손실을 겪었다. 대통령이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아래 앞니는 전체가 임플란트고 어금니도 여러개 없어 다 임플란트라고 한다.[5] 그 이후에도 상당한 치아손실이 있다는 소문이 있어 남은 치아가 10개도 안된다고 알려진다. 심지어 저 시기를 한참 지난 이후에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유승민이 원내대표가 되어 심하게 정치적 갈등을 빚었던 시절인 2015년, 청와대 만찬행사 초청이 오자 껄끄러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유승민이 거절하며 청와대측에 밝힌 명목상 이유도 '임플란트한지 얼마 안 돼서 만찬하기에 잇몸이 불편하고 몸상태가 안 좋다'는 것이었을 정도다.[6] 정말 임플란트로 불편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고, 대량손실 이후에도 계속 치아가 조금씩 빠져 임플란트 시술을 받아온 것만은 팩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 2013년 대구의 대구테크노파크(TP) 측에서 대구 지역의 새누리당 전현직 의원들의 보좌관들에게 금품을 건네고 골프 접대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여기에 유승민의 보좌관 A가 연루되었다. # 이에 유승민은 사과문을 발표하며 해당 보좌관을 즉시 해임하였으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라 하였다. 이 사건에충격이 컸던지 이때부터 유승민은 거물급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보좌관을 얼마두지 않는, 최소한의 보좌관만 데리고 일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2015년 모 언론사 보도에 의하면, 지역구인 대구 동구의 사무실 직원들까지 합해 유승민은 총 15명가량을 보좌관과 운전기사 등으로 둘 수 있지만, 그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고용하여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2016년 9월 12일 JTBC 뉴스룸에서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1주일 미루어졌다. 그리고 1주일 뒤인 2016년 9월 19일 경북 경주시에서 규모 4.5의 지진이 다시 발생했다. 2017년 2월 16일 뉴스룸 2부 대선 예비주자 검증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경남 합천군에서 진도 2.9의 지진이 났다고 한다.[7] 급작스럽게 지진 이슈에 대해 손석희 앵커와 대담을 했는데, 준비도 안 되었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안전처의 재난대응 문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견해와 더불어 국회 지진안전 예산문제까지 자연스럽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심지어 원전 현황을 이야기 할때는 원전 소재지역과 가동, 건설 중인 원전의 개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지진예측시스템, 원전 소재지의 단층파악문제까지 언급하는 등 디테일한 사항까지 꿰뚫고 있어 뉴스룸 시청자들은 놀라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2016년 9월 19일 뉴스룸

  • 하태경 의원이 "유승민이 원내대표였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새누리당 분위기가 좀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었다"고 썰전에서 밝혔다. 친박이건 비박이건 할 말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고. 그리고 2017년 1월 2일, JTBC에서 이재명 성남시장, 전원책 변호사, 유시민 작가와의 뉴스룸 진행 후 100분 토론에 참여했다. 이 토론에서 유승민은 재차 박근혜 정부의 잘못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고, 본인의 복지 노선과 개혁보수신당의 향후 진행방향에 대해 밝혔다.

  • 미우프에서 본인의 포지션을 맡고 있는 유목민 역의 장도윤을 직접 만났다.[8] 장도윤이 딸인 유담과 비슷한 또래의 나이인지라, 아들처럼 반가워해줬다고 한다. 참고로 장도윤은 유담보다 1살 어린 1995년생이라, 유담에게 누나라고 불렀다.

  • 볼프강 프록쉐 (Wolfgang proksch) 안경(독일산)을 사용한다.

  • 유년 시절 야구를 보기 위해 가출했던 적이 있다. #

  • 1958년생이라는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같은 당 내에서 다른 끝판왕이 존재한다.[9]

  •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참패 이후, 자유한국당내에서 친박과 복당파(친무, 친이)간의 갈등이 다시 심화되면서 대부분 친박 인사들은 복당파인 김무성친무, 친이를 비난하면서 유승민 본인과 친유가 소신 있다고 재평가를 받고 있다.[10]

  • 사적으로 정두언 전 국회의원하고 친분이 깊다. 첫 인연은 제16대 대통령 선거이회창 캠프에서 일하던 것이 계기로, 이 때 서로를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정두언은 이명박의 편이었고 자신은 박근혜 진영이라 서로 대립했지만 친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11] 인터뷰에서 유승민의 행적에 대해 정두언이 비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적으로는 여전히 친한 사이라고 한다.

  • 언변이 뛰어난 정치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12]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대통령 후보 지근거리에서 정책 개발, 연설 및 메시지 담당을 한 적도 있다. 자신의 연설문은 직접 쓰는 것은 물론 의원실 명의로 나가는 보도자료도 대부분 본인이 직접 쓴다고 알려져 있다.[13]

  • 한 인터뷰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는 한편, 여성을 위한 정책을 펼쳐 나가겠다며 본인은 상당히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혜훈 전 국회의원, 민현주 전 국회의원,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장관 등 한국개발연구원의 워킹맘 연구원들을 돕는 등의 배려를 했다고 한다.


  • 국회의원 재임 시기 옆 지역구 국회의원인 정태옥과는 사이가 되게 좋지 못한 편이었다. 애초에 정태옥친유 출신인 권은희를 꺾고 친박의 등을 업고 공천을 받은 것, 이부망천 당시 비판한 것과 이에 대해 정태옥이 유승민을 비난한 것 등으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나마 추경호와 유승민은 친박친유의 관계를 커버할 공통점이 있었는데 정태옥과는 그 것이 전무했다.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과 같이 미래통합당으로 재창당 할 때 반대한 정치인 중 하나가 정태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태옥의 의도와 다르게 새로운보수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재창당했고, 친유 출신 정치인들은 미래통합당에서 공천받고[14] 정태옥 본인은 컷오프 되었다. 대신 당 내 계파 색이 옅은 양금희본인의 국회의원 선거구에 공천을 받았다. 결국 정태옥은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낙선하고, 유승민의 당 내 입지가 상승하게 되었다.

  •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유승민이 빵을 들고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찍혀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2019년에 조국이 그걸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국 ‘케이크 귀가 사진’ 연출 의혹, 1년 만에 올린 페북 해명 각도와 상황등이 상당히 유사하며 다른 점이라면 조국의 자세는 유승민이 찍힌 자세보다도 카메라에 나오기 좋은 포지션이라는 점에서 의심을 받았다. 다만 조국 본인이 부인하고 있고 우연일 수도 있어서 진짜 의도적으로 그 모습을 연출했는지는 또는 단순한 해프닝인지는 알 수가 없다.

  • 차가워보인다는 인상과 다르게 의외로 좀 노는 편이다. 유승민은 차가워보인다는 평론가들의 평가를 부인하며 평소에 술도 잘 마시고 잘 놀고 따뜻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설명하였다.

  •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새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당해 미래통합당이 탄생하면서 유승민은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그런데 이때 정계에서 유승민의 종로 출마설이 만만치 않게 나왔다.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서 도는 그냥저냥한 뜬소문으로 치부되었으나 훗날 유승민이 종로 출마를 고민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고 황교안 대표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 출마를 할 수도 있었다고 밝혔다.

  • 성격 유형은 ENFJ이다.[15]

  • 21대 총선 이후 지지율이 하락세를 타게 되자 유승민에게 반감이 있는 이들이 지지율이 '기타' 항목의 지지율과 비슷하다며 기타리스트, 유미 핸드릭스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고 있다.

3. 가족 관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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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의 아버지 유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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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민의 외삼촌 강일원

  •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제13대,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 의원이다. 2015년 11월 7일 아버지 유수호 의원의 사망 때 상주를 지내며 정계 각종 인사들을 맞았다. 부친인 유수호 의원도 박정희 정권 때 사법 파동으로 법복을 벗어야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서 새누리당 원내대표에서 축출된 것은 2대에 걸친 악연인 셈이다.


  • 유승민 의원의 아들인 유훈동씨가 입시준비를 위해서 논술학원에 다니려고 했는데, 입시에 필요한 요령만 가르치는 학원은 안 좋다고 유의원이 반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원 보내는 대신 유승민 의원이 직접 논술을 가르쳤다고... 결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합격.


3.1. 의 인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유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선후보 유세 과정에서 친딸 유담이 언론의 미모 관련 기사 도배로 유명해져, 아예 독립 문서까지 생겼다.


4. 기자들 사이에서의 인기[편집]


파일:유승민 기자 1.jpg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e61e2b> {{{#!wiki style="margin: -5px -10px"
[1] 유승민은 빠른 58년생에 76학번 유시민은 59년생 78학번이다.[2] 게다가 의외로 두 사람이 양 진영의 경제통으로 대립을 하기는 했지만 유승민은 전형적인 공화주의식 복지관을 가진 인물로, 경제 이야기에서는 좌파라는 오해를 들을 정도로 복지에 친화적 경향을 보인다. 한편 유시민은 진보세력치고는 기본이 주류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라 금융위기 이후에도 한동안 꽤나 보수적인 성향을 띠었다.(사회민주주의 쪽의 정당인 통합진보당-정의당에서는 그의 리버럴에 가까운 성향 때문에 대단히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을 정도였다.) 즉 경제 이야기를 할 때는 두 사람이 생각만큼 사상적 차이가 크지는 않았다. 실질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 뒤 평당원으로 정치평론에 주력하는 과정에서는 유시민도 전보다 소폭 왼쪽으로 이동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경제 이야기에서는 서로 겹치는 면이 많은 편.[3] 다만 전문성에서는 유승민이 압도적이다. 보건경제학으로 석사 수준의 지식만을 공부한 유시민과 달리, 유승민 의원은 위스콘신 석박사 통합과정 조교시절 때도 상을 받을만큼 두각을 나타냈고, 미국에서 교수생활까지 할 만큼, 유승민이 경제에 대한 전문성이 압도적으로 높다.[4] 참고로 당시 2000년대 중반 국가통계상 65세에서 75세 사이 노인들의 손실 치아 평균이 사랑니 제외 10개였다. 유승민은 50도 안 되었으니 그보다 훨씬 젊은데 더 많은 치아를 잃어버린 것.[5] 빠진 치아는 15개 이상이겠지만 심은 건 그 개수보다 적을 것이고 뿌리없는 보철이 섞여있을 것이다. 사람 치아는 사랑니 제외 28개이나 보통 치아가 하나도 없는 사람들도 16개 임플란트면 브릿지를 이용해 전체 보철이 가능하고 많아야 18개 정도다. 잇몸과 턱이 튼튼해도 20개 이상은 추구하지 않는게 임플란트계의 기본이다. 손실치아 개수가 적으면 빠진 치아마다 임플란트를 하는 게 치의학계 주류 치료 원칙이나, 치아손실이 많으면 빠진 자리에 하나씩 다 심는건 실패율이 크고 악골에 치명적일 수도 있어 매우 위험하다. 1년에 한두개씩만 빠져서 그때마다 했다면 몰라도 몇년만에 왕창 빠진 경우는 정상적인 의사라면 추천하지 않는다. 큰어금니를 제외하면 치아 두개당 임플란트 한개나 세개당 두개를 심어 브릿지를 많이 한다.[6] 저때 이후 반강제로 원내대표도 그만두게 되고, 2016년 총선때 이한구를 필두로 하여 당내 공천에서 유승민계 공천 컷오프 파동 사건도 벌어졌다.[7] 이날 JTBC 뉴스룸에서는 원래 북핵 문제를 비롯한 안보 이슈를 가지고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지진으로 인해 인터뷰의 주제는 '지진과 대한민국의 재난대비 시스템'으로 바뀌었다.[8] 이날 미우프 출연진 모두 각자 패러디의 대상 후보를 직접 만났다.[9] 2020년 합당 이후로 이 분야 최고 끝판왕들이 같은 당 내에 있다.[10] 원래 새누리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이 쪼개지기전까지는 친박 인사들이 김무성과 유승민 둘다 "배신자"라고 맹비난을 했지만 김무성김무성의 일행들이 다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에 복당을 한 반면 유승민과 유승민의 일행들바른정당에 남으면서 다른 정당과 통합하여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나가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복당파들을 맹비난하면서 유승민의 행보를 재평가를 하고 있다.[11] 여담으로 당시 각 캠프의 저격수 역할을 하면서 네거티브 공세에 앞장섰는데, 그로 인해 이들은 상대의 부정을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12] 그 유시민이나 심상정도 유승민의 토론 실력을 높게 평가한다.[13] 2015년 원내대표 연설문도 본인이 직접 쓴 것이다.[14] 물론 김성동, 이준석, 오신환, 김재섭, 윤상일과 같이 험지에 차출된 인물도 있고, 이혜훈, 진수희과 같이 경합지에 차출된 인물들도 있지만, 적어도 이들은 정태옥과 달리 4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다.[15]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