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오키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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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 제국의 정치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장대신[1] 을 지내면서 전시 재정을 담당하였고, 전후 일본 우익의 대부(代父) 중 한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다.
2. 생애[편집]
1889년 히로시마시에서 국학 연구자였던 후지이 이쓰(藤井稜威)의 아들로 태어나 4살 무렵 큰외할아버지를 따라 성을 가야(賀屋)로 개칭하였다.
도쿄제국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대장성에서 주로 군부의 예산을 담당하는 업무를 진행하였다. 또한 1927년 제네바 해군 군축 회의와 1929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 등에 수행원으로 참석하는 등 혁신 관료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1937년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에 의해 대장대신에 임명되었으며, 1941년 도조 히데키 내각에서도 대장대신으로서 전시 재정을 담당하였다.
같은 해 미국을 상대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공채를 남발하여 모든 정부 예산을 군비 중심으로 책정하였고, 엔 블록(Yen Block)[2] 을 상정하였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앞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 극동국제군사재판에 회부되었고, A급 전범 중 한 사람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55년 9월 가석방되었고, 1958년에는 중의원 선거에 당선되면서 정치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기시 노부스케 내각의 경제 고문과 이케다 하야토 내각의 법무대신을 역임하면서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우익 강경파로 이름을 날렸다.
시간이 흘러 1972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5년이 흐른 1977년 도쿄에서 숨을 거두었다.
3. 여담[편집]
가야 오키노리는 기시 노부스케와 더불어 A급 전범 출신으로 정계 복귀를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로 손꼽힌다. 이와 더불어 1971년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야스쿠니 신사 내 A급 전범 합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추진하였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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