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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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용곡 재현 공작무.jpg
국립국악원에서 복원한 공막무의 모습과 진작의궤 속 공막무의 모습.
역사만화가 우용곡이 재현한 공막무



"就像港長揮舞着劍跳舞時, 港伯用袖子堵住它說'不要這樣對待港長'。後來劍舞時, 在鄉樂中使用過"就像港長揮舞着劍跳舞時, 港伯用袖子堵住它說'不要這樣對待港長'。後來劍舞時, 在鄉樂中使用過。"

항장이 검을 휘두르며 춤추자, 항백이 소매로 그것을 막으며 '항장에게 공은 그러지 마시오' 라고 말한 것과 같다. 후에 검무를 할때, 향악에서 사용하였다.”

순조무자년진작의궤 - 공막무 (純祖戊子進爵儀軌), (公莫舞)



1. 개요[편집]


公莫舞
공막무(公莫舞)는 ‘그대여 한왕을 해치지 마시오’라는 제목의 조선시대 궁중 향악정재이다. 현재까지도 복원을 통해서 전승이 되고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2021년 기준 현재까지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제작하였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그러나 연경당 진작례를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가 직접 주최하고, 효명세자 역시 무용과 검술에 능하였다는 점에서 효명세자 본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2. 상세[편집]


진나라 말기에 홍문에서 잔치가 열렸을 때, 항적의 신하였던 범증항장(으로 하여금 칼춤을 추게 하여 유방을 죽이려 하자 장량의 친구 항백이 옷소매로 이를 막으며 한 말이 바로 공막(公莫)이다. [1]
현재 조선측 문헌에 공막무의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순조 재위 28년째인 1828년의 '무자 진작의궤'이다. 당시 무자 진작의궤에 적힌 가사에 의하면, 2명의 무원들이 고운계를 쓰고 석죽화를 그린 전복에 은속대를 하고 호화를 신고 각각 칼 두 자루씩 들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순조 28년1828년 6월 1일창덕궁 연경당 진작에서 한국 역사상 최초로 초연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2명의 무동이 긴 칼을 두 개씩 갖고, 머리에 고운계를 얹은 후 석죽화를 그린 전복에 은속대를 하고, 호화를 신고 춤추었다고 한다. 무사를 상징하는 고운계를 쓰고, 석죽화를 그린 괘자를 입으며, 여러 대형을 만들어 가며 춤을 추는데, 제비처럼 날렵하게 허리를 앞뒤로 숙였다 젖히며 빙빙 도는 '연풍대' 동작이 일품이다. 또한 본래 칼춤을 추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무용인지라, 배경곡과 무용 자체가 상당히 흥겹고 동작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이때문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전통무용과 국악을 동시에 소개할때 가끔식 공막무를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본 작품의 주제가 되는 항백과 항장은 친족이라 항장은 항백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유방을 죽여야 했고, 항백도 항장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젊고 혈기왕성한 항장의 칼을 막아내느라 고생을 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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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외에도 초한지유방항적과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극화한 또다른 궁중 무용으로는 항장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