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 풋볼 유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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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럭비 풋볼 유니언(Rugby Football Union, RFU)은 엘리트 럭비(Elite Rugby)를 위한 잉글랜드의 럭비 유니언의 관리 기관이다. 1871년에 설립되었고, 1886년 현재의 월드 럭비(World Rugby, WR)라고 알려진 세계 럭비 협회가 형성되기 전에는, 이 협회를 대신하는 국제 관리 기관이였다.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을 관장한다.
※ 럭비(Rugby)의 핵심 가치
- 팀워크 (Teamwork)
- 존중 (Respect)
- 즐거움 (Enjoyment)
- 규율 (Discipline)
- 스포츠맨십 (Sportsmanship)
2. 역사[편집]
럭비 풋볼 유니언은 1871년 1월 26일 런던의 Pall Mall 레스토랑에서 열린 회의에서 결성되었다. 두 개의 소위원회가 경기의 규칙을 작성하고 스코틀랜드와 경기를 할 잉글랜드 팀을 선정하도록 요청받았으며, 그 해 말에 최초로 알려진 국제 럭비 풋볼 경기가 열렸다. 다른 나라들은 곧 그들만의 조합을 결성하였고, 1873년에는 스코틀랜드, 1879년에는 아일랜드, 1880년에는 웨일스가 결성하면서, 매년 Home Nations(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들의 경기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 남북 분단(THE NORTH-SOUTH SPLIT)
이러한 럭비 경기의 인기는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잉글랜드 럭비 선수들에게 많이 기여한 랭커셔와 요크셔 지역에 해당하는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 더욱 빠르게 증가했다. 19세기 영국 신사사회에서 스포츠는 순수하게 취미로 즐기는 아마추어를 숭상했고 돈을 받고 뛰는 프로는 하층민이나 하는 매우 저급한 것으로 취급하여, 럭비 풋볼 유니언(RFU)은 계속 아마추어를 유지했기 때문에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기도 하는 럭비 선수들은 손실된 소득을 보상받기 위해 "브로큰 타임(Broken time)"[2] 에 대한 지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엄격하고 확고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1895년 결국 거대한 분열이 생겼다. 허더즈필드의 조지 호텔에서는 22개의 북부 럭비 클럽이 럭비 풋볼 유니언(RFU)으로부터 사임하였고, 이들은 북부 연합(노던 럭비 풋볼 유니언)을 결성하여 지금의 럭비 리그가 탄생하게 되었다.
거의 100년이 지난 1995년, 국제 럭비 위원회(International Rugby Board, IRB)[3] 는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반대 투표에도 불구하고, 경기 개방을 선언하였고 드디어 럭비는 프로페셔널리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하지만, 이러한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엄격하고 확고한 아마추어리즘 때문에 1895년 결국 거대한 분열이 생겼다. 허더즈필드의 조지 호텔에서는 22개의 북부 럭비 클럽이 럭비 풋볼 유니언(RFU)으로부터 사임하였고, 이들은 북부 연합(노던 럭비 풋볼 유니언)을 결성하여 지금의 럭비 리그가 탄생하게 되었다.
- 포스터 (Poster)
1914년 8월 4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을 때, 럭비는 다른 스포츠들과는 달리 대응의 신속성에서 두드러졌으며, 잉글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 대표팀은 새로운 전투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90% 이상의 럭비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군대에 입대하였고, 몇몇 선수들은 궁극적으로 희생을 치루기도 하였다. 이것은 럭비 선수(Rugby Union Footballer)들에 의해 만들어진 사례였으며, 당시 영국의 육군성은 다른 스포츠맨들에게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럭비 유니언 선수들의 '영광스러운 모범'을 따르라고 충고하는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는 잉글랜드 신사의 덕목에 있어 가장 본질적 요소인 용기와 희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1914년과 1918년 사이에 국제 럭비 선수들이 영국의 거의 모든 전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2.1. 150 Years[편집]
2021년은 세계 최초의 럭비 풋볼 협회인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150주년을 기념한다. 게다가 1871년 3월 27일 에든버러 레이번 플레이스에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최초로 국제 경기가 열렸다.
2.2. 문장[편집]
이 문장은 럭비 풋볼 유니언(Rugby Football Union)의 문장이며, 1970년 6월 10일에 채택되어졌다. 모토(Motto)는 라틴어로 "RUGBEIA FLOREAT UBIQUE"이며, 영어로는 "Rugby flourishes everywhere"라는 뜻으로, 럭비는 어디에서나 번창한다라는 뜻이다. 오른쪽 사진은 1971년 4월 잉글랜드 럭비 국가대표팀과 President's Overseas XV팀[4] 과의 경기에서 발행된 공식 프로그램 책자로서, 럭비 풋볼 유니언의 문장이 나타내어져 있다. 이 경기는 럭비 풋볼 유니언의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치러졌다.
3. Swing Low, Sweet Chariot (응원가)[편집]
Swing Low, Sweet Chariot은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대표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불려지는 응원가이다. 특히,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홈 경기장인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매우 흔하게 불려진다. 1988년 Five Nations 챔피언십[5] 의 마지막 경기인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크리스 오티(Chris Oti)[6] 가 3번의 트라이(Try) 득점으로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관중석에 있던 베네딕토회 학교인 두에(Douai) 학교의 남학생들은 이 노래를 불렀고, 다른 관중들도 이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기 시작한데서 유래되었다. 그 이후로 "Swing Low, Sweet Chariot"은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의 응원가가 되었고, 1991년 럭비 풋볼 유니언(RFU)의 마케팅 디렉터인 마이크 콜리(Mike Coley)는 그 해 럭비 월드컵에 앞서 이 노래를 출시하기도 하였다. 원래 예루살렘(Jerusalem)을 사용하길 원했지만, 예루살렘(Jerusalem)은 그 해에 럭비 리그 컵 결승전에서 사용되었고, 그래서 "Swing Low, Sweet Chariot"으로 갑자기 변경하게 되었다. 예루살렘(Jerusalem)은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대표팀 경기시작 전에 연주되고 있다.Jerusalem Sung at Twickenham
4. Royal Patrons[편집]
영국 왕실의 후원자
5. 소속 팀[편집]
- 럭비 유니언
- 잉글랜드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U-20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U-18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U-18 럭비 유니언 국가대표팀
- 럭비 세븐스
- 잉글랜드 7인제 럭비 국가대표팀
- 잉글랜드 여자 7인제 럭비 국가대표팀
6. 주관 대회[편집]
2023년 기준 시행하고 있는 대회만 서술함(예를 들어 코로나19로 인해 2019년 이후 시즌이 확인되지 않는 대회는 미기재).
- 1부 리그 : 프리미어십 럭비, 프리미어십 럭비 컵, 프리미어 15s(여성부)
- 2부 리그 : RFU 챔피언십, RFU 챔피언십 컵
- 3부 리그 : 내셔널 리그 1 (여기까지가 전국 단위 대회다)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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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전에는 해리 왕자(Duke of Sussex)가 후원자였다.[2] 평소 다른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아마추어 경기자가 국제 대회나 기타 경기 대회에 참가한 기간 중 보수, 또는 수당이 중단된 시간을 말한다.[3] 현재는 월드 럭비(World Rugby)[4] 월드 XV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초청된 선수들로 구성된 럭비 유니언 팀이며, 보통 국가 대표팀을 상대로 축하 경기에 참가하기 구성되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테스트 경기로 간주되지 않는다.[5] 現 Six Nations 챔피언십[6] 1906년 흑인 럭비선수로써 최초로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에 데뷔한 지미 피터스(Jimmy Peters) 이후로 1988년 80년만에 잉글랜드 럭비대표팀으로 출전한 잉글랜드의 첫 흑인출신 럭비선수이다.[7]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잉글랜드 럭비 풋볼 유니언과 함께 웨일스 럭비 유니언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