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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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166대 교황.
2. 루지에로 2세와의 갈등[편집]
루치오 2세는 사적으로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 루지에로 2세의 친구이자 그의 자녀 중 한 명의 대부였으나, 두 사람의 관계는 영토 문제로 인해 틀어졌다. 교황은 루지에로 2세가 자신의 봉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카푸아 지역을 교황령으로 반환하라는 요구를 했고, 루지에로 2세는 그 대가로 교황령의 남부 일부를 시칠리아 왕국의 영토로 편입할 것을 요구했다. 루치오 2세는 추기경들의 조언에 따라 루지에로 2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루지에로 2세는 시칠리아로 돌아가서 자신의 아들인 아풀리아―칼라브리아 공작[1] 에게 교황령의 남부 도시 캄파니아를 침공하라고 지시했다. 부왕의 요청을 받은 공작은 자신의 군대를 보내 캄파니아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계속 진격하도록 지시했고, 시칠리아 왕국군의 위력에 결국 교황청과 로마는 굴복하였다.
3. 로마 코뮌과의 충돌[편집]
루치오 2세가 시칠리아 왕국군에 굴복한 것을 기회로 로마 원로원은 교황의 권력을 박탈해 공화정을 세우려는 시도를 하였다. 로마의 상인들과 수공업자들은 원로원과 협조했고, 귀족들은 중립을 지켰다. 그동안 세속적 권력까지 거머쥔 교황의 힘으로 인해 많은 원로원 의원들이 제 역할도 못하고 그저 교황의 신하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루치오 2세가 시칠리아에게 패배를 해 영향력을 상실하자, 원로원은 아르날도 다브레시아가 이끄는 반교황파 세력과 손을 잡은 뒤, 조르다노 피에르레오니의 주도로 교황이 임명한 대표들을 내쫓고 로마 코뮌을 세움으로써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루치오 2세는 루제루 2세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했으나, 과거에 자신을 왕이 아닌 신하 취급했던 교황이 괘씸해 국왕은 이를 보류하였다. 어쩔 수 없이 루치오 2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로마왕 콘라트 3세에게 편지를 써 군사 원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콘라트 3세로부터의 답신이 늦어지자, 루치오 2세는 아예 자기 손으로 직접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로마 원로원의 공화정 수립에 대해 동조하지 않고 그나마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로마 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교황은 그들에게 로마에 배치된 요새를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고, 팔라티노 언덕의 남쪽 지역을 통제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로마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혼란스러워졌다.
루치오 2세는 자신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원로원을 향해 진군하였으나 조르다노에 의해 격퇴당했다. 교황은 원로원과의 전투 중에 돌에 맞아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회복하지 못한 채 결국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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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훗날 루제루 3세 국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