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람 7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사산 왕조의 비정통 샤한샤. 나르세 사후 당나라 내의 사산 왕조 망명 정부를 이끌었다.
2. 생애[편집]
야즈데게르드 3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페로즈 3세와의 나이 차는 불명이다. 야즈데게르드 3세의 피난길에 동행하다 651년에 야즈데게르드 3세가 시해당하고 페로즈 3세가 일가와 귀족들을 데리고 도망칠 때 함께하여 당나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형을 모시면서 사산 왕조 재건 운동에 참여했다. 형이 죽은 후에는 조카 나르세를 모셨다. 이후 708년에 조카가 죽자 망명 정부를 물려받았고, 사산 왕조 재건을 위한 군사 활동을 지휘하다 당나라 본토로 돌아가서 710년에 낙양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당나라에서 재위한 4명의 비정통 샤한샤 중 독보적으로 기록이 적다. 당고종과 측천무후의 묘역인 건릉에 형 페로즈 3세의 석상이 있는데, 그 바로 옆에 있는 석상에 南昧(남매)라고 적혀있다. 이 남매라는 인물이 바흐람 7세로 추정된다. 또 당나라 경교 기록을 보면 경교를 장안에 소개한 인물로 페르시아인 아라본을 지목하는데 이 아라본이 바흐람 7세이며, 바흐람 7세는 기독교도였고 그의 세례명 아브라함을 음차한 것이 아라본이라는 설도 있다. 사후 아들 호스로가 호스로 6세로 뒤를 이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4 01:19:43에 나무위키 바흐람 7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