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미즈드 2세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사산 왕조의 제8대 샤한샤.
2. 생애[편집]
나르세스 1세의 장자로, 293년 부친이 정변을 일으켜 샤한샤가 된 뒤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300년 쿠샨 지방의 왕을 맡았으며, 303년 부친으로부터 양위받고 새 샤한샤가 되었다. 아랍의 역사가 알 타바리(al-Tabari)에 따르면, 그는 처음에는 잔혹하고 엄격한 군주였지만, 어느 순간 마음을 달리 먹고 약자에게 온화하고 자비로운 군주가 되었다고 한다. 부친이 마니교에 관용을 베푼 것과는 달리, 그는 마니교도에 대한 박해를 재개하여 많은 신자를 죽였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아르메니아 왕국의 티리다테스 3세와는 가급적 잘 지내려 노력했고, 자신의 딸 호르미즈두크트(Hormozd-doḵt)와 테리다테스 3세의 아들 바한의 결혼을 성사시켰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후지스탄 주의 이제흐 근처에 쿠랑 이라는 도시를 세웠다고 한다.
재위 말년, 가산 왕국이 사산 왕조에 조공을 바치는 걸 그만두고 로마 제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려 했다. 이에 그는 가산 왕국에 군대를 파견했고, 로마군이 지원 오기 전에 가산 왕을 잡아 죽였다. 309년경, 그는 사막에서 사냥하던 중 가산 왕의 부하들의 습격을 받고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크테시폰 외곽에 이송되어 그곳에서 숨을 거뒀다. 하지만 사산 귀족들에게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죽기 전에 쿠산 출신의 애첩 이프라가 임신한 아기가 왕자면 샤푸르 2세라고 이름짓고 바로 후계를 잇게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그의 뒤를 이어 샤한샤가 된 아두르 나르세를 몰아낸 이프라와 귀족들이 꾸며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호르미즈드 2세에게는 8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중에서 역사 기록에 뚜렷이 등장하는 이는 아두르 나르세, 호르미즈드, 그리고 샤푸르 2세다. 아두르 나르세는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로, 즉위 직후 귀족들에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호르미즈드는 귀족들에게 감옥에 갇혔다가 나중에 로마 제국으로 망명했다. 샤푸르 2세는 아기 때 즉위하여 어머니 이프라의 섭정을 받았고, 장성한 뒤에는 샤푸르 1세에 버금가는 사산 왕조의 명군이 되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26 18:16:58에 나무위키 호르미즈드 2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