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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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과 나》
2. 《실록 지리산》
3.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4.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5.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1. 《군과 나》[편집]


6.25 전쟁 개전부터 종전에 이르기까지 전후방 곳곳에서 격전을 치른 고위 지휘관의 입장에서 6.25 전쟁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한 회고록이다. 경향신문에서 1988년 6월 24일부터 1989년 5월 11일까지 약 1년간 매주 1회씩 총 42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지면 1면을 통째로 할애한 비중 있는 연재물이었다. 내용은 6.25 전쟁 시기에 집중되어 있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휴전 이후 한국군 증강과 전후 복구, 개전 이전의 여수·순천 10.19 사건과 숙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실었다. 자유당 정권 말기 이승만 대통령에 얽힌 기억, 민주당 정권 등장 이후 예편과 박정희와의 인연 등에 대해서는 마지막회(42회)에 한꺼번에 몰아 서술되어 있다.

이 연재물을 엮어 대륙연구소에서 1989년에 단행본을 출판했다. 앞에 말한 이유뿐 아니라 문장이 수려해서 가독력이 좋아 6.25 전쟁에 대해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대륙연구소 판본이 절판된 뒤에도 여러 차례 다른 출판사에서 재판되었다. 1999년에는 『길고 긴 여름날 1950년 6월 25일』(지구촌)이란 이름으로 나왔으며, 이후 시대정신에서도 2009년, 2016년에 개정판을 내놓았다. 2000년에는 오세영의 작업으로 만화화되어 3권 짜리 『한국전쟁』(지구촌)으로 나오기도 했다. 영어로도 번역되어 1992년에 《From Pusan to Panmunjom (부산에서 판문점까지)》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간되었다. 이 영역판에는 무려 당시까지 생존해있던(!) 리지웨이밴 플리트 장군[1]이 서문을 쓰기도 했다.[2] 일역판은 『若き将軍の朝鮮戦争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2000년 소시샤(草思社) 출간) 등으로 나온 바 있다.[3]

이전에도 6.25 전쟁 회고록, 수기는 많이 나왔지만, 공산권 자료의 미비, 일제 치하 전력이라든가 작전 실패, 민간인 학살 관련 등 여러 문제에 대한 당사자들의 증언 회피, 어른의 사정 등으로 객관성이 떨어졌다. 반면 이 연재물은 1987년 6.10 민주 항쟁 이후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6.25 전쟁을 바라보기 시작된 시기에 나온 최초의 회고록이라는데서 의의가 있다. 당시까지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던 현리 전투, 사창리 전투 등의 참패에 대해 자세히 기록한 것이 그 예이다. 본인의 간도특설대 경력에 대해서도 김백일 장군의 사망 사건을 언급하며 '그는 나와 각별한 사이였다. 간도특설대에서 같이 근무했었고, 해방후 함께 38선을 넘어 월남했으며 나란히 군문에 투신했었다'는 식으로 건조하게 적고 넘어갔다.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이형근, 정일권이 회고록을 냈지만 자신이 비판받을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에 비해 진일보된 자세라 할 수 있다.


2. 《실록 지리산》[편집]


이태의 『남부군』 출간 이후 동아일보 연재로 토벌대의 입장에서 대국적으로 그린 빨치산 기록이다. 저자 자신이 백야전사 작전에 참가했던 기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이태의 남부군이 자신이 겪은 이야기 → 남한 빨치산 약사 → 자신이 겪은 이야기 후기의 형식인 반면에 이 작품은 백야전사 작전 → 남한 빨치산 약사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단행본은 고려원 출간.

백야전사 부분을 제외하고는 빨치산 종군기자였던 이태의 『남부군』에 대한 토벌대의 입장이기 때문에 『남부군』을 읽지 않으면 갑툭튀한 서술이 좀 이상할 정도이다. 사실 『남부군』은 이후 나온 모든 빨치산 관련 작품(전향한 빨치산 작품)들이 인용하거나 비판하는(비전향 종북주의자 작품) 가장 중요한 텍스트인데, 『실록 지리산』 역시 국군 토벌대의 입장을 반영한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전투경찰대 연대장인 차일혁 총경의 아들이 쓴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와 함께 가장 많이 빨치산 문학에서 인용된다.[4] 『실록 지리산』에 워낙 중요한 내용이 많아 이태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잘못 알고 있던 사실을 대폭 수정하여 개정판 『남부군』을 집필하고, 남부군만 집중적으로 다룬 후속작 『여순병란』에서도 『실록 지리산』을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쓴다.

이태의 『남부군』이 나오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백선엽의 『실록 지리산』이 나왔고, 이태를 이를 보고 자신의 작품을 보강하여 개정판 『남부군』이 나온 것이다.[5]

토벌대 사령관 입장으로 썼기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볼 수 있겠지만 의외로 객관적이다. 자료 조사를 위해 지리산 곳곳을 다녔고 구빨치산 출신의 참전자들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토벌에 참가했던 국군의 잔학행위 증언도 빠짐없이 실어주었다. 이를테면 생포한 여자 빨치산을 바세린을 발라가면서 집단으로 강간하는 류의 이야기가 버젓이 나온다.

이런 증언을 소개하면서 토벌작전 책임자로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 참조.


3.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편집]


경향신문 연재를 토대로 발간된 『군과 나』 이후 22년 만에 중앙일보에서 6.25 전쟁 경험을 회고하는 연재를 한 번 더 진행하였다. 이는 6.25 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2010년 1월 4일부터 2011년 2월 28일까지 〈6·25 전쟁, 1128일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총 277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이 연재물은 전작과 달리 1월 4일부터 진행된 관계로 중국 인민지원군의 참전과 1.4 후퇴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1988년과 비교하여 남북화해가 모색되고 훨씬 더 자유로와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여 중국 인민지원군의 엄정한 군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과거의 패배를 좀 더 상술하는 등의 내용 변화가 있었다. 이 연재물은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1128일의 기억』(중앙북스)라는 제목의 3권 짜리 단행본으로 정리되어 출간되었다.


4.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편집]


이전에 내놓은 회고록들이 모두 현역 군인으로 있던 6.25 전쟁자유당 정권 시기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면, 이 회고록은 그 이후 1960~70년대의 행적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4.19 혁명과 예편, 그 이후 박정희 정권 하에서 각국 대사를 지내던 시절, 귀국 후에 교통부 장관과 한국종합화학 사장을 지내던 시절까지 서술되어 있다. 역시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저술에 참여한 유광종[6]이 정리하여 책밭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현재 약 18,0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5.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편집]


조선일보는 2013년 11월 온라인 뉴스 사이트 '프리미엄조선'을 출범시키며 내놓은 5대 특별기획의 하나로 백선엽의 〈6·25 징비록〉 연재를 시작했다. 2013년 11월 8일부터 2015년 11월 26일까지 2년 여에 걸쳐 총 184회로 연재되었다. 이 시리즈는 과거 경향신문, 중앙일보에서 연재된 회고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 한다. 이는 남북화해 이후 안보의식이 이완되어 전쟁과 같은 국난에 대한 이해와 극복 노하우가 사장되고 있다는 보수진영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따라서 내용 면에서 6.25 전쟁 당시 한국군의 약점과 실책들에 대해 더 노골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이와 대비되는 미군 및 유엔군, 중공군의 강점도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인 내용은 이전의 회고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부분들이 많으나, 중간중간에 숨은 비화나 새로 드러난 사실들도 언급하고 있다. 이 역시 유광종이 정리하여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책밭)이라는 제목의 3권 짜리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비슷비슷한 자서전을 하도 많이 출판하다 보니 본인도 서문에 "내가 이미 펴낸 회고록은 6권이 넘는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다시 펴내기로 했다."라고 사정 설명을 하며 '(책의) 성격이 대우 달라서다'라고 밝히고 있다.

1권은 중공군 개입부터 서술하는데 연대기식 서술이 아니라, 중공군의 강력함이라는 주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에피소드 소개인지라 시점이 과거로 갔다, 미래로 갔다 한다. "6.25 전쟁의 80%는 중공군과의 싸움이었다.", "한국군은 용문산 전투를 제외하면 중공군을 이겨 본 적이 없다."라는 파격적인 전재가 돋보인다.

2권의 전반부는 6.25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월튼 워커, 매튜 B. 리지웨이, 제임스 밴 플리트와의 일화와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루고 있는데 징비록 시리즈에서 가장 독창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떨어졌는지 2권의 후반부부터는 6.25 개전부터 다루는데 과거의 회고록을 조금 압축시켜 놓은 것 같다.

3권 전반부도 과거의 개인 회고록 내용과 겹치는데, 문제는 징비록 시리즈의 1권 내용과도 겹치는 중공군 개입 이후 부분이다. 3권 후반부는 백선엽이 직접 격지 않은 장진호 전투, 현리 전투, 용문산 전투를 다루며 별다른 마무리 없이 끝난다. 딱히 백선엽의 관점에서 쓴 게 아니라 그냥 사건을 평면적으로 요약한 수준.

서문에 나온 것처럼 이미 회고록을 6권이나 펴내신 이력이 있어서, 대부분의 내용이 이전에 출판한 내용과 겹친다. 징비록만의 특징은 중공군이 강력함을 집중적으로 분석하였고, 미 8군 사령관과의 일화가 좀 더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백선엽 장군의 특징이 적을 만드는 성격이 아니라, 책 서술에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라도 절대로 다른 한국군 장성이나 정치인을 비판하지 않거나 가명 처리한다. 이번 징비록에도 이런 성향을 유지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문제가 있는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그에 반해 2권 후반부부터는 그냥 과거 회고록의 자기 복제에 불과하고, 3권 후반부는 누가 대신 써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면적이다. 또한 6.25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순서대로 다루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에 주제에 맞는 내용을 쓰다 보니 1~3권 전체적으로 보면 같은 내용이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온다.[7] 조선일보와 계약으로 중간까지는 야심 차게 연재하였지만, 후반부터는 할 얘기가 떨어져 그냥 과거 회고록 복제로 나간 게 아닌지 생각 드는 다소 아쉬운 작품.


[1] 두 장군은 둘 다 19세기에 태어나 장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리지웨이는 1895년 생으로 98세(1993년 사망)까지, 밴 플리트는 1892년 생으로 100세(1992년 사망)까지 생존했다.[2] 공동 명의의 서문이 실린 것으로 보아, 당시 90대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던 두 장군은 간단하게 구술하고 다른 사람이 글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3] 1988년에 Japan Military Review 출판사에서 『韓国戦争一千日 : 白善燁回想録 (한국전쟁 1천일 : 백선엽 회상록)』이 나온 바 있는데, '군과 나'가 연재하던 도중에 출간된 것이라 《군과 나》와의 관계는 불분명하다.[4]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비전향 종북주의자 빨치산을 부모로 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라는 작품이 있다(철저하게 종북주의자 시점에서 집필되었다). 이상 4개의 작품이 수십 종이나 되는 빨치산 문학에서 가장 많이 이용되는 텍스트이다. 3개의 작품은 이태의 『남부군』의 문학적 대성공을 보고 시기적으로 거의 동시에 나왔고, 다시 『남부군』 개정판에서 이들 3개 작품을 대폭 인용하여 기술하였다.[5] 사실 이태는 시기적으로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 입산하여 1차 대토벌작전 때 잡혀 활동기간이 1년 남짓으로 짧았고, 게다가 쫄다구라 사건을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매우 많았다(문학적 재능만 최강). 그래서 남부군 창설 부터 관여한 간부 출신 부모를 둔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이나 토벌군 사령관이 쓴 『실록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가 그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수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6] 중앙일보 외교안보 기자 출신의 작가로, 2010년대에 나온 백선엽의 회고록은 사실상 모두 백선엽이 구술한 것을 유광종이 집필한 것들이다.[7] 중공군 2차 공세에 7사단장, 8사단장이 빤스런 했다는 에피소드와 6사단이 담당구역이었던 영월 광산에서 차량을 징발하여 기동성이 좋다는 자세한 설명은 각각 4번을 반복해서 나온다. 그외 1권에 설명한 내용이 2권과 3권에 다시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심지어 과거에 회고록에 썼던 내용이 징비록에 또 나오고, 또 나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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