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홀슈타인고토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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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아돌프
Adolf, Herzog von Holstein-Gottorp

출생
1526년 1월 25일
덴마크 슐레스비히 공국 플렌스부르크 두보르
사망
1586년 10월 1일 (향년 60세)
덴마크 슐레스비히 공국 슐레스비히 고토르프 성
배우자
헤센의 크리스티네 (1564년 결혼)
자녀
프리드리히 2세, 조피, 필리프, 크리스티네, 엘리자베트, 요한 아돌프, 아나, 요한 프리드리히
아버지
프레데리크 1세
어머니
포메른의 조피
형제
요한 2세, 엘리자베트, 아나, 도로테아, 프레데리크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덴마크 올덴부르크 왕조의 주요 분가 중 하나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의 창립자.


2. 상세[편집]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올덴부르크 왕조의 제4대 프레데리크 1세와 포메른의 조피의 3남이자, 크리스티안 3세의 이복동생이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마르틴 루터로 인해 촉발된 종교 개혁의 후원자였던 헤센 방백 필리프 1세에게 교육을 받았고, 카셀에서 4년동안 머물렀다.

1544년에 이복형 크리스티안 3세, 동복형 한스와 함께 슐레스비히 공작령과 홀슈타인 공작령을 분할했다. 면적은 거의 동일한 세금 수입에 따라 나누어졌다. 아돌프는 고토르프 성이 있는 지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아돌프가 분가한 가문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 줄여서 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이라고 불리게 된다.

동복형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하데르슬레우의 공작 한스는 미혼이고 자녀가 없어서 한스의 사후 영지는 아돌프와 조카 프레데리크 2세에게 분할되었다. 통치에 큰 관심이 없어 요한 란차우(Johan Rantzau 1492 ~ 1565)[1]에게 통치를 맡기고 본인은 유럽 전역을 유람하며 인생을 보냈다.

아돌프 본인은 사적으로는 형제로서, 공적으로는 군신 관계로서 이복형 크리스티안 3세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그의 후손들은 점차 스웨덴과 손을 잡고 독립을 추구해 덴마크의 골치를 아프게했다. 결국 대북방전쟁으로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은 사실상 멸망했지만 그의 후손들은 18세기에 이르러서 멸망 직전에 몰린 공작가에서 여러 국가의 왕실이 되는 엄청난 신분 상승을 이루게 되는데 아돌프의 직계 6세손인 카를 페터 울리히러시아 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를 창립하게 된다. 그 외에도 5세손인 아돌프 프레드리크스웨덴 국왕이 되면서 1818년까지 스웨덴 왕실이 되기도 하였으며, 올덴부르크 왕조의 본고장인 올덴부르크 백국을 본가인 덴마크 왕가와 영지 교환으로 넘겨 받아 올덴부르크 백국을 공국, 대공국으로 승격되어 현재까지 올덴부르크 대공가로 이어지게 된다.

조카인 한스처럼 일개 왕자에 불과했지만 문서가 생긴 이유가 바로 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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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덴마크 최후의 왕위 계승 전쟁이었던 백작 전쟁(Grevens Fejde)에서 이복형 크리스티안 3세를 도와 방계였던 올덴부르크 백작가와 폐위되었던 전 국왕 크리스티안 2세로부터 승리를 챙긴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