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리투아니아 관계

덤프버전 :





파일:영국 국기.svg파일:리투아니아 국기.svg
영국
United Kingdom
Jungtinė Karalystė
리투아니아
Lithuania
Lietuvos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2.2. 20세기
2.3. 21세기
3. 교통 교류
4. 대사관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영국리투아니아에 외교 관계에 관한 문서이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현대 이전[편집]


종교 개혁 이후부터 폴란드-리투아니아대홍수(역사) 사이의 기간 동안 영국과 리투아니아 대공국 양측은 상당수의 유니테리언 교회 신도들을 공유하였고, 리투아니아인 지식인들이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캠브릿지 대학교에서 수학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 양국의 문화적 교류는 근세부터 다소 활발했다고 볼 수 있다.


2.2. 20세기[편집]


제1차 세계 대전 와중에 영국은 리투아니아인들을 포함한 러시아 제국 신민들 이민을 제한하기 시작하였고, 1917년에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영국인 그리고 영국에 거주하는 러시아 제국 국민의 병역 관련한 영국-러시아 군사 협약에 서명되었다. 영국 정부는 1917년 해당 협약 이후 스코틀랜드 등에 체류하던 리투아니아인 성인 남성들을 러시아로 보냈고, 이들이 도착했을 무렵 10월이면 볼셰비키가 소련을 세워가던 시점이었다. 러시아로 보내진 리투아니아인 성인 남성 1200명 중 약 1/3만이 스코틀랜드로 돌아올 수 있었고, 이들이 부양하던 가족들은 소련으로 가거나 아니면 영국에서 무일푼으로 사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제1차 세계 대전의 결과 리투아니아는 독립하고 전간기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이 들어섰다. 리투아니아 제1공화국은 1922년 12월 20일부로 영국과 수교하였다. 발트 3국 점령 과정에서 리투아니아는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냉전 시대 당시 영국은 호주, 덴마크 등과 마찬가지로 소련의 발트 3국 점령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었다. 영국에 체류하는 리투아니아인들은 소련인이 아니라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영국은 1991년 8월 27일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인정하였으며, 양국은 1991년 10월 외교 관계를 재수립했다.


2.3. 21세기[편집]


영국과 리투아니아 양국은 모두 NATO에 가입되어 있다. 리투아니아를 포함한 발트 3국은 자체 공군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독일 공군과 영국 공군이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여 해당국들의 영공을 대신 방어해주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여타 발트 3국 국가들과 함께 2004년부로 유럽연합에 가입하였으나, 영국은 2020년 2월 1일부로 유럽연합에 탈퇴하였다.

2020년도 이후 영국의 공공의료 체제에 결함이 드러나면서 리투아니아로 의료관광을 오는 영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각주]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리투아니아/외교 문서의 r149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리투아니아/외교 문서의 r14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3. 교통 교류[편집]


라이언 에어가 영국의 여러 공항과 빌뉴스 국제공항, 카우나스 공항을 연결하고 있다.#


4. 대사관[편집]


영국은 빌뉴스에 주리투아니아 영국 대사관을, 클라이페다명예 영사관을 두었다 . 리투아니아는 런던에 주영 리투아니아 대사관 그리고 5개의 명예 영사관(북아일랜드, 노섬벌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웨스트 미들랜즈)을 두고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4-05-16 11:32:14에 나무위키 영국-리투아니아 관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