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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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실태
2.1. 관객들의 자국 실사영화 외면
2.2. 감독의 열악한 대우
2.3. 영화인의 이탈
2.4. 연기력이 부족한 아이돌 주연 영화의 범람
2.5. 사회비판 영화 부족 및 홀대
2.6. 일본 정부의 선전 도구화
2.7. 스폰서의 과도한 관여
2.8. 지나칠 정도로 원작의 재현에 집중하는 실사화
2.9. 배우의 열악한 대우
2.10. 일부 회사의 독점
3. 향후 전망


1. 개요[편집]


일본 영화의 문제점을 서술하는 문서다.


2. 실태[편집]


일본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영화 대국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인구가 줄고 있으니 영화 산업은 더욱 쇠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모르는 척하는 게 문제다. 앞으로 일본 시장이 작아질 것을 내다보고 세계 영화 시장에서 일본의 위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로 생각을 옮겨야 한다. 지금처럼 문화를 정치적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환경에서는 감독과 작품을 잘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以前から『韓国映画はなかなか侮れない』という話は聞いていましたが、これまでは観る気がしませんでした。でも今回初めてちゃん観てみたら、うわさ通りさすがだなと。このままだと日本映画界は韓国に負けてしまうと心の底から実感した次第であります。非常に重たいテーマですが、社会に問いかける大きなメッセージがあると同時に深い人間愛を感じさせて頂きました。一見地味だけどしっかりした価値のある映画を作っていける韓国社会を見直しました。最後の最後まで観る人を飽きさせない、非常に高いエンターテインメント性も持ち合わせており、私自身、最期まで楽しんで拝見しました。

예전부터 한국 영화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지금까지는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처음 봤더니, 소문대로 역시나구나라고. 이대로라면 일본영화계는 한국에 져버린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실감했습니다. 대단히 무거운 테마입니다만, 사회에 묻는 큰 메세지가 있는 것과 동시에 깊은 인간애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수수하지만 견고하고 가치 있는 영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다시 봤습니다. 마지막까지 보는 사람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매우 높은 엔터테인먼트성도 가지고 있어, 스스로 끝까지 재밌게 보았습니다.

2014년 한국 영화 몽타주의 시사회에서(#): 다케다 츠네야스[1]

인구 1억 2천만, 세계 수위급의 경제력과 창작자들의 수만 보면 일본 영화시장은 음악시장처럼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화시장 규모에서는 분명 미국과 중국 다음가는 영화시장인 건 맞다. 수치상으로는...

그나마 2010년 기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감독이라면 고바야시 마사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소노 시온,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야마다 요지, 나카시마 데쓰야, 츠카모토 신야, 미이케 다카시, 기타노 다케시, 카와세 나오미 정도가 있다. 《너의 이름은.》의 기록적 흥행 덕에 애니메이션 영화는 어느 정도 살아날 것으로 보이지만, 실사영화에서는 아직도 심각하다. 앞에서 언급된 소노 시온 감독의 경우 일본 영화 시장에 환멸을 느끼고 미국행을 택했을 정도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2016년부터 CGV에서 주한일본대사관, 일본국제교류기금서울문화센터, 영화진흥위원회가 후원하는 J필름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는데, 그마저도 출품작의 흥행 성적은 영 좋지 않다.

2017년에는 갈라파고스화의 끝을 보여주었다.# 일본 갈라파고스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영화판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또,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터뷰에서 다시 일본 영화의 현실을 이야기하였다.# 2017년 흥행 순위도 애니가 독점하는 상황이고 (감독 또는 각본가가 만든) 오리지널 각본 영화가 없다.

기생충》 개봉 이후, 전성기 시절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든 현 일본 영화에 대한 비판 기사가 늘었다. 기사1, 기사2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 트위터에서는 일본 영화계의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일본 영화를 비판한 것이 재조명되며 일본 영화산업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이 오갔고, 야후 재팬 트위터 실시간 검색어에 '일본 영화'가 오랫동안 위치해 있었다.

실제로 일본 영화계의 암울한 상황은 내한했던 여러 일본 영화 관계자들이 실토한 바 있다. 최근에는 오다기리 조, 니시지마 히데토시 등 배우들이 직접적으로 일본 영화계의 힘든 현실을 언급했다. 한국에선 그나마 우익이란 점으로 알려진 일본 원로배우 츠가와 마사히코의 평#을 참고.

위 다케다 츠네야스의 발언에서도 보듯 일본 극우들조차 수준 차이를 인정할만큼 일본 영화와 한국 영화의 수준 차이는 엄청나다. 한국 영화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본 영화는 지나치게 질이 떨어지는게 문제다. 그리고 202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위에서도 언급한 기생충에서도 보듯 2010년대보다 훨씬 그 차이가 커졌다.

2022년에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의 영화 제작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더는 영화판에 뛰어들려 하지 않고 있다"면서 인터뷰했다.#

2.1. 관객들의 자국 실사영화 외면[편집]


요즘 일본 젊은이들이 본 일본 영화라면 《모노노케 히메》뿐인걸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일본 영화를 무시하니까요.

- 1998년, 일본 영화감독들을 취재하던 월간 키노 인터뷰에 나온 기타노 다케시[2]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영화의 질 탓에 일본인들은 오늘날의 자국 실사영화를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나름 시네필이라고 자부하는 일본인도 자국 영화는 안 보는 지경이다. 그래서 외국인 평론가들이 일본 영화나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작 일본인들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시아권에서 멜로 영화의 걸작으로 인기 있는 러브레터를 정작 일본인들은 잘 모른다. 방구석 1열에 나온 바에 따르면 한 조사 설문자의 3분의 1이 러브레터를 한국인을 통해 알았다는 설문도 있었다고.

참고로 일본 역대 흥행작 10위만 봐도 자국 실사영화는 춤추는 대수사선 하나 뿐이다. 7편이나 자국 개봉작이 10위권에 들어가있지만 6편은 애니메이션이다. 한국은 역대 흥행작 10위권에서 애니메이션은 겨울왕국 2 뿐이며, 심지어 역대 개봉작 흥행 순위 100위권에조차 겨울왕국 1이나 엘리멘탈까지 다 합쳐 3편이 전부이며 97편이 실사영화이다. 60% 넘게 애니메이션이 역대 흥행 100위권에 들어간 일본이랑 대조적이다. 참고로 일본 제작 개봉작으로 한국에서 가장 대박을 거둔 스즈메의 문단속조차도 한국 역대 흥행 100위(일본은 역대 흥행 13위)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2.2. 감독의 열악한 대우[편집]


Q: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감독님이신데 일본에서는 뭔가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

구로사와 아키라: "해외에서만큼, 아니 그 절반이라도 일본에서도 인정했더라면 더욱 좋을 텐데 말이죠."

- 1990년 6월, 구로사와 아키라와의 인터뷰를 게재한 한국의 월간 영화잡지 로드쇼


저도 (제작에 필요한) 자금 조달하는 데 고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에 갔을 때, 그쪽 프로듀서와 대화하면서 한국의 시스템에 대해 들었습니다. 한국에선 흥행 수입의 40~50%를 극장 측이 갖고, 남은 60%를 영화 제작위원회(투자자)와 제작 회사(감독 등 제작진)이 6:4 비율로 나눠 갖는다고 하더군요. 즉 영화 수입이 10억 엔이라고 한다면, 그중 2억 4천만 엔이 가장 땀을 많이 흘린 제작진들의 손에 주어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자금은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 쓰이게 되죠.

하지만 일본에선 수입의 50%를 극장이 갖고, 남은 50% 중 10이 배급사, 40이 제작위원회로 넘어갑니다. 많은 경우, 감독에겐 배분되지 않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 연출료로 1억 원을 받는 영화 감독은 없다.

감독의 대우가 매우 열악하다. 후술하겠지만 스폰서가 과도하게 관여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입도 적다. 어느 가족 등의 영화를 통해 일본을 넘어 해외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만 해도 1%의 성공 보수를 받기 위해 협상을 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마디로 저 정도 거장이라도 단 1%를 받으려고 협상에 나선다는 것.

그나마 저런 대감독이나 되니 협상을 들어주기나 하는 것이고, 우치다 에이지 감독이 말하길, 일본에서 영화 감독은 기본적으로 극장 수입에 대해서는 노 개런티고, 거마비조로 받는 돈을 제외하면 수익이라고 할 만한 것은 DVD 판매 수익의 1.75%로 사실상 균일가라고 한다. 저예산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로 흥행 수익 30억 엔(한화 약 300억 원)을 얻어서 화제가 된 우에다 신이치로도 극장 수입으로 받은 개런티는 없었다고 밝혔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감독이라는 직업의 위상이 낮았기에 더 심했다. 구로사와 아키라만 해도 1950년대 《라쇼몽》,《7인의 사무라이》로 대박을 거둘 때 정작 제작자들에게 별별 모욕을 다 당했다. 일례로 《라쇼몽》 같은 경우 제작사 관계자가 돈을 아끼라고 끼어들며 간섭을 하였고 구로사와 감독도 관계자의 횡포에 시달린 나머지 스스로 제작을 포기하려다가 참았으며 다 만들고 나서도 "제작자를 두들겨 패 줄까"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3] 라쇼몽 완성 직후 시사회에서 어느 관계자는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건 영화도 아니다'라고 악담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렇게 험담하던 관계자가 정작 라쇼몽이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자 극찬으로 태도를 바꾸고, "내가 없었더라면 이 영화가 있었겠느냐?"라는 투로 말했던 것이다. 그래서 구로사와 감독은 이거야말로 라쇼몽 그 자체라고 씁쓸해했다.# 《7인의 사무라이》 역시 제작비 문제로 아키라 감독이 수정을 가할 수밖에 없었고 제작자들이 협박까지 하면서 끼어들었다고. 게다가 1971년에 구로사와가 목과 손목을 그어 자해하며 자살 파동을 일으킬 당시, 일본의 극우파 중 일부에게도 정신 나간 감독이라고 억울하게 까였으며 이후에 해외 자본의 투자를 받아 영화를 만들 때도 일본 영화계에서 단지 외국적인 요소 덕에 상을 받았다는 등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1990년에 그와의 인터뷰를 게재한 한국의 월간 영화잡지 로드쇼 기사에서는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감독님이신데 일본에서는 뭔가 어려운 점이 있었나요?"라는 질문에 "해외에서만큼, 아니 그 절반이라도 일본에서도 인정했더라면 더욱 좋을 텐데 말이죠."라고 대놓고 말했을 정도였다.


2.3. 영화인의 이탈[편집]


게임 감독 코지마 히데오는 영화를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고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위에서도 거론되었다시피 일본 영화의 한계를 느껴 게임업계로 전향했다. 오시이 마모루도 비슷한 이유로 애니계로 전향했다가 명성이 쌓이고 난 뒤 간간히 영화를 만들 정도로 확실히 안 좋은 형편이다. 웃기게도 한국은 이와 정반대 상황에 놓여있었다. 대표적으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시작했다가 거의 영화 감독으로 돌아선 연상호.[4][5]

일본 영화계의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일본 영화 감독들은 정말 엄청난 대작을 내놓아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든가, 아니면 감독 외에 다른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하는 경로가 유일하다. 배우는 연기력을 인정받아서 TV 드라마로 진출해서 떠야 하는데, 영화배우의 수입이 드라마 배우보다 높은 할리우드나, 한류의 영향으로 드라마가 영화를 쫒아가는 형국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 배우=드라마다. 2017년 닛케이 상위권에 오른 배우들 거의 모두가 드라마로 떴고, 드라마로 기억된다.

물론, 배우들이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필모그래피에는 영화보다 드라마가 훨씬 많고, 그 영화도 99%가 드라마의 극장판 아니면 서브컬처 실사영화다. 드라마가 없이 영화만 찍는 배우들은 매니악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나무위키에 항목이 작성된 일본 배우들도 중년배우가 아닌 10대~30대 배우 대다수가 작품 약력에 드라마에 대한 언급은 많아도 영화에 대한 서술은 적거나, 없거나, 아니면 만화 실사영화다. 편당 방영횟수가 한국의 절반수준인 8~10부작이라 상대적으로 드라마만 빨리 많이 찍는 거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방영기간은 어차피 1~3개월로 거의 동일하고, 일본에선 영화를 남기남 수준으로 한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싸게 찍어내서 비교가 안 된다.

적어도 일본 영화계에서 감독이나 배우로 일하면서 먹고 살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는 형편이다. 보통 주연배우를 제외하면 출연료로 일괄 10만원 내외를 받는데, 세금 떼고 소속사 개런티 빼면 영화를 찍는 몇개월간 6~7만엔 남짓 받는다는 얘기니 당연히 생활이 될 리가 없다.

스태프 쪽은 더 열악해서 경력이 짧은 경우 '수업료'를 내고 참가하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목표는 영화로 커리어를 쌓아서 드라마계로 진출하는것이 목표로, 일본에서 영화계는 드라마업계 취업을 위한 인턴십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작품마다 프리랜서의 스태프를 모아 제작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를 악용해 계약서도 없다.

사고 치기 전에는 연기력으로 좋은 평을 받던 재일교포 3세 배우 박경배는 "일본에는 영화배우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배우와 스태프들 대부분이 드라마 출연료나 광고수입이 없으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업'을 영화배우라고 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런 일자리가 없는 배우나 스태프들은, 일이 없을때 막노동이나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렇다보니 소위 아트하우스 쪽 감독들은 아예 프랑스 같은 해외 자본 투자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일본 내에서도 그럭저럭 흥행이 되는 고레에다나 미이케를[6] 제외한 카와세 나오미, 구로사와 기요시, 고바야시 마사히로, 후카다 코지, 하마구치 류스케, 스와 노부히로 모두 유럽쪽 자본의 투자를[7] 받아 영화를 완성했을 정도. 심지어 21세기 일본 영화계의 트렌드로 '프랑스로 가서 영화를 찍는다'로 꼽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사실 오시마 나기사 때부터 있었던 전통이긴 하지만 21세기 들어서 상당히 심해졌다. 아예 일본 영화를 포기한 스와 노부히로 같은 감독도 있을 정도. 구로사와 기요시, 가와세 나오미, 아오야마 신지가 이미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든 상태고 고레에다도 어느 가족 이후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었다. 심지어 신예로 주목받는 하마구치 류스케 역시 차기작을 프랑스에서 촬영할 것이라 공표한 상태다.

옛날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그 유명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과 오시마 나기사마저도 197~80년대부터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자본으로 겨우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인들이 아예 해외로 국적을 옮기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2020년 2월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밤쉘>로 분장상을 수상한 일본계 미국인 카즈 히로에게 일본 매체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작 카즈 히로는 수상 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서의 경험이 수상에 도움이 되었는지’ 묻는 아사히 신문 오가타 도시오 기자의 질문에 “이런 말 하기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일본을 떠나 미국인이 됐다.”라며 “지나치게 순종적인 일본 문화에 싫증이 났고, 일본에서 꿈을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여기에 살고 있다. 미안하다.”라고 대답해 일본 입장에서 씁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해당 발언 영상)

이와 관련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일본 대단해 문서 참고.

2.4. 연기력이 부족한 아이돌 주연 영화의 범람[편집]


작품성을 갖춘 감독들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선전하던 1960~70년대와는 다르게 1980년대부터 시작된 가벼운 상업성 영화나 아이돌 영화들이 범람하면서 영화계 전체적인 작품의 질이 저하됐고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아이돌 영화는 아이돌 그룹이 주연을 맡는 '그룹 띄워주기/이력서 채우기/팬서비스용 영화'로 당연히 쥐꼬리만한 예산, 싸구려 각본, 조잡한 연출, 작렬하는 발연기 등 암만 좋게 봐줘도 괴작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게 99.9%다. 심지어 저예산으로 만들어지는 로망 포르노보다 연기력이나 연출 수준도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의 아이돌 영화는 한국과 일본의 한 갈림길이었다고 봐도 무방한데, 사실 한국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아이돌을 내세운 한탕주의 싸구려 영화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오던 시기가 있었지만 대부분 외면당하고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국내 사례로는 젝스키스가 주연한 세븐틴, H.O.T. 주연의 평화의 시대가 있다. H.O.T.젝스키스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정상급 아이돌이었는데도 흥행에 참패해서 다시는 연기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핑클의 이효리세잎클로버 드라마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가 발연기로 논란이 되었고 흥행에서도 참패한 뒤로 다시는 연기를 하지 못했다. 당시의 이효리는 "그때는 뭘 해도 성공할 것 같았다. 내가 너무나도 연기력이 부족했다."라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리고 은지원이 연기 경력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영화 여고생 시집가기에 주연으로 출연했다가 흥행에서 역대급으로 대참패를 하는 망신을 당한 뒤로는 더 이상 연기를 하지 못했다는 점을 잘 생각해 보자. 배우 김태희의 남편으로 유명한 정지훈(가수 비)도 아이돌 가수 출신이자 배우로서 연기 경력도 있었고 인기도 남부럽지 않게 많았지만 연기력 논란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150억 원의 거액을 들여서 주연으로 출연한 자전차왕 엄복동이 흥행에서 고작 17만 명 정도를 동원하면서 대참패를 기록했다. 심지어 UBD 같은 밈까지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으로 개망신을 당하고 놀림감으로 전락해버리는 굴욕을 당했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인데, 대체적으로 한국은 아이돌을 '탤런트'로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지만 일본에서는 '캐릭터'로 보는 성향이 강하다. 즉, 일본에서는 아이돌의 가창력이나 연기력이 어설퍼도 "뭐 좋잖아? 아니, 오히려 어설픈 편이 더 귀엽고 좋다"라고 관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은 가창력이든 연기력이든 실력을 엄격하게 따지는 기준점이 일본보다도 훨씬 강하다. 한국에서 허구한 날 나오는 아이돌의 가창력, 연기력 논란은 일본에서는 찾기 힘들고 오히려 위에서 말한 대로 "그래서 더 좋다"라고 말하는 오타쿠들이 넘실댄다. 연예인들의 실력을 등한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실력이 부족한 아이돌은 사방팔방에서 십자포화를 맞고 금방 도태되어 버린다. 아무리 예쁘고 잘생겼어도 기본기도 없이 춤 못 추고 노래도 못하면 그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연예 기획사들이 실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능력치를 키우는 연습생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8] 그러나, 일본에서는 기본기가 없고 실력이 좋지 못한 연예인들이 지지를 받는 경우가 여럿 있다 보니 고퀄리티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들이 쉽게 만들어지는 환경이 나오기가 매우 힘든 것이다.

일단, 한국에서는 이른바 아이돌 출신의 연기돌들은 "일단 욕을 먹고 시작한다" 라고 봐도 될 정도로 실력 문제에 매우 엄격하다. 아이돌 판에서 먼저 쌓은 인지도로 날먹이나 한다는 비판 여론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먼저 까고 보는 여론 자체가 너무 심해서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이 연기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조차도 나쁘게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같은 옹호 여론까지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전 자체를 정도 이상으로 비하하는 것을 꺼리는 정도지,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냉정하게 아이돌의 부족한 연기력이 조금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가차없이 쉽게 비판하면서 "아이돌들은 자기네들이 가수로서 생명이 떨어졌다 싶으면 곧바로 너무 쉽게 배우로 전업해서 다른 배우들의 밥그릇을 뺏는다. 연기가 무슨 애들 장난이냐?" 라면서 절대로 날선 태도를 굽히지 않는다. 결국 "아이돌 본인들은 가수를 하기 위해서 노래와 춤은 그렇게 죽어라 연습하면서 배우를 하려면 당연히 연기력을 늘리기 위한 연습을 해야지, 왜 진지하게 노력을 하지 않느냐?" 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도가 너무 지나쳐서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노력을 아예 무시하는 경향까지 생겼지만 어디까지나 자업자득이다.

사실, 이렇게 아이돌의 배우 전업을 차갑게 바라보는 여론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전술된 것처럼 누가 봐도 수준 미달의 연기력을 너무 쉽게 보여줘서 욕을 많이 먹었던 아이돌 출신 배우들의 선례가 너무 많다는 점과 아이돌을 관리해주는 연예 소속사가 내로남불 수준으로 도를 넘는 어그로를 많이 끌어서 가루가 되도록 까버리고 욕을 먹도록 자초한 부분이 너무나도 크다. 개그우먼 박미선"가수들도 예능하는데 (개그맨이 앨범 내면서 가수들의 밥그릇 뺏는 거나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 뭐가 미안해?"라고 일침을 가한 것이 대표적이다. 자세한 것은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박명수의 어떤가요,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자유로 가요제를 비롯한 무한도전 가요제 문서를 확인하자.

아이돌 가수들의 연예 기획사에서 대놓고 "우리 가수들 앨범 내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밥그릇을 무한도전이 다 뺏어가요 징징"처럼 더러운 언플을 시전하는 바람에 대중들은 "이 뭔 개소리야?"라면서 역풍을 일으키고 그야말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이에 대해 최민식"백날 욕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 드라마에 꽂아야 해. 이거 하면 뜬다라고 말하는 기획사를 탓해야지. 왜 그들에게 진짜 연기를 가르쳐 준 사람이 없는가?"라고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적도 있었다.# 즉, 연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연예인들에게 제대로 연기를 가르쳐 주지도 않는 풍토가 더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9] 이처럼 한국에서는 실력 있는 연예인들로부터 양질의 컨텐츠를 공급받고 싶다는 요구와, 그 기대에 충족하지 못하는 아이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넓게 퍼져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아무리 인기 절정을 누리던 아이돌 출신이라고 해도 연기자로서의 첫 데뷔는 주연을 먼저 덜컥 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단역부터 시작하고 비중이 적은 조연부터 시켜보는 것이 정석이다. 이것은 선배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직접 현장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잘 지켜보고 배워야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주 기초적인 지점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연기력을 쌓아 나감으로써 연기력 논란 리스크를 점차 줄여나갈 수 있으며, 참여 작품 하나에서 흥행에 참패하더라도 배우로서의 생명력이 사라지는 치명타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천부적인 재능과 끊임없는 노력이 성공적으로 결합되어 배우로서도 성공한 케이스가 대표적으로 임시완, 황정음, 윤계상, 수지, 서현진 등이 있다.

게다가, 일본 연예계에서는 일본 연예 기획사들이 연예계의 모든 분야를 독점하는 문제도 퀄리티의 하락에 크게 일조하였다. 아이돌 영화라고 해도 여러 회사의 아이돌들이 동등한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영화 및 드라마에 출연하기 위한 경쟁이 비교적 거세서 연기자의 수준이 올라갔을 것이고, 흥행을 위해서 작품의 퀄리티에도 그나마 신경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남자 아이돌은 80년대 후반~90년대 후반에 쟈니스 사무소계 아이돌이 시장을 완전히 독점해버림에 따라 쟈니스계 남자 아이돌이나 심지어 연습생이라도 사무소의 뒷배경으로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고 팬들의 성원에 흥행하는 경우가 잦아지자, "쟈니스계 아이돌만 TV에 출연시키면 되겠구나" 라는 안일한 생각을 바탕으로 작품들이 제작되면서 영화의 퀄리티도 크게 하락해버리는 현상을 더욱 부추겼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분석을 한 영상이 있다. #

2.5. 사회비판 영화 부족 및 홀대[편집]


2000년대 들면서 자주 해외영화제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제일 자주 말하는 게 '일본 영화에는 사회, 정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비판적인 얘기로 들었습니다. 특히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는 일본 영화는 제대로 사회, 정치 상황을 넣고, 그것들을 다룬 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작품이 흥행이 안 될 뿐더러 감히 말하건대 대형 배급사가 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인터뷰 번역


"일본 총리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을 무시하고 있다."

"영화 어느 가족의 주인공들은 소득 격차 확대로 일본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중략) 이 부분이 보수적인 지도자 아베 총리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

- 할리우드 리포터 기사 번역(#)

2018년 《어느 가족》의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한 인터뷰에서 일본 영화에는 사회, 정치가 없다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인터뷰하며 일본 영화를 깠다.

물론 일본에도 사회비판 영화와 이를 다루는 영화인이 있다. 고레에다 세대 중에서는 아오야마 신지, 구로사와 기요시, 고바야시 마사히로가 일본 사회, 정치를 자주 다룬 편. 현재 일본 영화계가 다루는 사회/정치 문제는 주로 아베 신조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와 관련되어 있다. 후카다 코지와 하마구치 류스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고레에다 같은 영화제에 초청되는 작가주의 감독들에 한정된다.

문제는 작가주의 감독들이 몇 명을 제외하면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 고레에다 윗세대엔 전공투누벨바그 영향으로 오가와 신스케라던가 오시마 나기사 같은 전투적인 사회파 영화나 다큐멘터리가 자주 나왔지만 옛날 작품, 그리고 타계나 은퇴 장르 홍보 부족 등으로 세를 잃고 단절되어 가는 상황이다. 하라 카즈오의 2017년 신작 《센난 석면 소송기》가 소규모 흥행했다는 소식에 의외라는 자국 반응이 있을 정도.

이런 작가주의 영화 말고도 옛날에 대중적으로 성공한 일본 사회 비판 영화도 있다. 대표적으로 이타미 주조가 있는데, 1980년대 정치 사회 문제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영화를 내놓았고 흥행 성적도 좋았으나, 야쿠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말년에 테러로 고생하다가 의혹이 많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워낙 충격이 컸던 사건인지라, 이타미 이후 이런 풍자 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은 상당히 드물어졌다.

《어느 가족》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는데 애니메이션 영화에 밀리고 점점 갈라파고스화되어가는 일본 실사 영화계의 쾌거이기에 총리인 아베 신조 총리가 축하의 메시지를 보낼만 한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자국의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가 해외의 유수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쾌거를 이루면 국가원수가 축전을 보내거나 초청을 하는 등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하뉴 유즈루, 고다이라 나오 선수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고, 일본 국적도 아닌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에 "함께 축하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발표한 적이 있다.

거기다 아베 신조는 유명한 영화광으로 1년에 50편 이상 영화를 본다. 전 세계 국가원수정부수반 레벨의 고위 정치인 중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외교 일정으로 외국에 나가면 외국 영화관에 찾아가서 그 나라 영화를 보고 올 정도로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아는 인물인데도 흔한 축전 하나 보내지 않았으니 이는 완전히 고의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프랑스의 피가로, 미국 할리우드 리포터 등 영화 전문지들도 의문을 표했다. 피가로는 일본 수상이 이 영화를 비난하고 있다고 전하며 "아베는 일본계 외국인이 수상을 해도 축하 메시지를 보내더니 이번에는 입 속에 벌레라도 있는 거 같다!"라면서 일본 수상의 비문화적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일본 총리가 황금종려상 수상 감독을 무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영화 ‘어느 가족’의 주인공들은 소득 격차 확대로 일본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이 부분이 보수적인 지도자 아베 총리를 화나게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아베의 이런 행보는 보복성 행보라는 추측이 우세하다. 도쿄 신문은 총리가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 “그 동안 고레에다 감독이 영화나 인터뷰에서 지속적으로 반 아베 의견을 내 왔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지금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오야마 신지소노 시온, 이와이 슌지, 이즈츠 카즈유키처럼 아베 신조 정권과 우경화에 공공연히 반대해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레에다 감독은 한국의 JTBC 뉴스룸에 출연했을 당시에도 자신의 사고를 넌지시 설파한 바 있다.

2018년 당시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기자들 질문에 축하의 뜻을 전했을 뿐,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급기야 2018년 6월 7일 일본 참의원 문부과학위원회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질의가 나왔다. 하야시 요시마사 문부과학상이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인사를 전하겠다."라고 답했다. 논란이 되자 아베 신조 총리가 축전을 보냈으나 감독이 거절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바로 그날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가 한때 '국익'이나 '국책'과 일체화돼 큰 불행을 초래한 과거가 있었다. 이를 반성한다면 거창하겠지만, 공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 아닐까 생각한다."하는 글을 올렸다. 다른 단체에서의 축전도 모두 거절했다. 정부의 홀대론이 등장하자 임기응변으로 대처하려다 망신을 당한 꼴이 되고 말았다.기사

그리고 이를 트집 잡아 넷 우익과 일본 회의 수도권 지방 의원 간담회 회원인 군마현 이세사키 시의 이토 준코가 이에 대해 비난을 가했다. 영화 평론가 마치야마 토모히로와 영화작가 소다 카즈히로가 이들의 이런 행보에 전체주의적이라면서 비판을 가했다.#

아베 정부의 '가케 학원 스캔들'을 소재로 한 영화 《신문기자》의 경우, '빽'이 상당해서 아베 정부가 방해하지 못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왜냐하면 《신문기자》의 제작/배급사인 이온그룹은 그 자체로도 아시아 최대의 유통업체인 대기업인 데다, 일본의 핵심 야권 인사(오카다 가쓰야) 및 좌익 계열 언론사(도쿄신문)와 매우 밀접한 관계[10]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이런 강력한 '빽'이 있는 영화조차 제작이 순탄치 않을 정도로 일본 내의 사회비판 영화 및 영화인들의 처지가 매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한국의 영화인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한 직후 일본에서 나온 "이런 영화를 일본에서도 많이 만들었는데 팔 줄을 몰랐다"라는 발언에 일견 이해가 된다는 반응도 있다. 애초에 사회비판적인 작품 자체가 거의 나오질 않고 있으니 그저 사회비판 자체를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것.#

2.6. 일본 정부의 선전 도구화[편집]


공안경찰이 임시로 치안 유지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면 중대한 인권 침해를 일으킨다. 테러는 분명 무서울지도 모르지만, 국가 치안 기관의 폭주는 테러보다 훨씬 무섭다. 실제로 전쟁 전 및 전쟁 중의 일본이 그랬고, 지금도 북한과 중국을 보면 그렇듯이, 치안 기관의 힘이 강대한 사회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양날의 검인 치안조직이 품은 위험성, 그림자의 측면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 것은 아무리 아동용 애니라고는 해도, 표현작품으로서 어떨지 생각해 버린다.

- 전 공안 담당 기자 아오키 오사무#

아베 정권부터 일본에서는 영화의 선전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메이지 유신 150주년을 기념하는 지원 사업이다. 2017년 1월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 150년이 되는 2018년에 행하는 기념 사업으로 메이지 시대의 건국 등을 소재로 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제작을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스가 요시히데는 이와 관련하여 "큰 고비에서 메이지 정신을 배우고 일본의 강점을 재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요컨대, 애국심과 역사 수정주의의 정당화를 위해 메이지를 전면에 내세운 국책 영화를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실사 영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명탐정 코난/극장판만 해도 절해의 탐정, 제로의 집행인 등 자위대와 일본 공안의 프로파간다를 제작했다. 이게 현실의 정치와 법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아베 정권 때부터 특정비밀보호법과 도청법, 공모죄와 같은 법으로 공안에게 무기를 하나씩 쥐어주고 있고, 일본 공안은 그것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공안은 총리의 정적과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기관으로서의 색채를 강하게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그것을 가리는 용도로 써먹기 딱 좋다. 실제로 공안 체험 행사 참여자가 9배 늘었다.


2.7. 스폰서의 과도한 관여[편집]


일본의 영화 제작 구조상 문제와 스폰서들의 압박이 큰 편이라 어지간한 명감독들조차 본인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우며, 그 때문에 작품성 훼손이 빈번하다. 이러다보니 장르도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뿐 아니라, 한국과 같은 사회고발성 영화는 엄두도 낼 수 없다. 요즘 한국이 시대극이나 현대극을 빌려 사회 및 정치권, 과거의 잘못을 비판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일본 영화 제작은 투자자들이 모인 제작위원회가 주도하고 감독은 제작위원회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돈을 댄 여러 투자자의 간섭이 심하니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고 영화가 흥행해도 기획의 성공이지 감독의 이름은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인데 각본을 직접 써야하는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연출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그저 고만고만한 영화만 나오고 뛰어난 명작이 나오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영화 관람료가 1800엔 정도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비싼데도 정작 제작비는 매우 인색해서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에 대한 보수가 매우 낮다. 하지만 이렇게 인색한 제작비와 처우에도 영화를 연간 400편이나 찍어내니 쉽게 말하자면 양으로 질을 메꾸는 셈. 인도의 발리우드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것은 영화계의 질적인 발전과는 관계가 없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질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요인이 될 수는 있다. 무엇보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도 스스로 원하는 연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일본은 영화사가 전속 배우제를 하면서 매니지먼트 사업도 겸하는데 이것 때문에 배우 캐스팅에도 제한이 생긴다. 도호 소속 배우들은 쇼치쿠 제작 영화에서 절대 볼 수가 없다. 즉 연기를 잘하는 여러 기획사의 배우들을 모아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좀 어렵긴 해도 불가능하지는 않은 한국과 비교하면 배우 캐스팅의 자유도가 크게 떨어진다. 연기를 못하는 신인 배우의 캐스팅을 강요하기도 하지만, 배우의 이미지를 고려해서 어느 한 배우를 캐스팅하게 되면 이런 대사를 시키지 말라거나, 이 캐릭터의 성격을 바꾸라는 둥 개입을 하기 때문에 영화 감독이 생각한 원래의 연출과 의도가 뭉개지는 게 일상이다.

그리고 방송사들이 영화 제작시장에 뛰어들면서 TV 드라마의 극장판이 우후죽순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이러면 검증된 작품의 영화화가 확실한 수익모델이 될 수는 있지만 방송사와 스폰서의 압박을 견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실제로 1985년부터 일본 영화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가 붕괴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의 압박으로 2002년에는 자국 시장 점유율이 27.1%까지 추락하는 몰락을 겪었다. 같은 시기 한국 영화는 1999년 《쉬리》 이후 중흥기를 맞은 이후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나들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영화인들이 이걸 부러워했을 정도다. 일본의 대배우로 유명한 미쿠니 렌타로애니깽 사태로 인해 개막장으로 되어버린 대종상 영화제를 바라보면서 한국 영화를 비웃던 일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추세가 바뀐 것은, 만화 원작의 블록버스터들이 대거 제작된 2006년부터로 다시 21년 만에 자국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으며 2012년에는 65.7%에 달할 정도다. 그러나 국내 흥행과 달리 해외 흥행은 부진하고 원작 만화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영화의 화법이 아닌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화법을 펼친다는 비판도 있다.

외국 영화의 개봉이 수개월 뒤에나 이루어진다는 점도 일본 영화계에서는 이점으로 작용한다. 아직까지 외국 영화가 직배되지 않아 할리우드 대형작품도 몇 개월 이상 소요되기 때문. 한국에서는 상영관이 사라질 시점에서야 일본에서 개봉한다.

미이케 다카시도 해외에서 제법 선전하는 감독이지만 스폰서의 간섭에 학을 떼는 사람이라 B급 컬트 영화만 줄곧 만들어 대면서 컬트 영화 감독으로 굳어져 버렸다. 그래도 2013년에 감독한 대작 액션 영화 《짚의 방패》는 수익을 13억 엔이나 거두어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미이케가 바라는 결말은 아니었다고 한다.


2.8. 지나칠 정도로 원작의 재현에 집중하는 실사화[편집]


일본에서는, 보통 감독들이 작업물을 가져와서 '이걸 각색해서 영화로 만들자'고 말하는 일이 빈번하죠.

-구로사와 기요시. 은판 위의 여인에 대한 필름 코멘트와의 인터뷰 중

만화·소설에 상당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일본인 만큼, 이를 실사화한 영화도 많다. 그 자체야 그냥 그럴 수 있지만 문제는 원작 재현에만 지나치게 충실했다는 것. 물론 적절한 원작 재현은 원작팬들의 만족도를 올려주겠지만, 만화와 영화는 전혀 다른 영역에 있기 때문에, 만화가 원작일지라도 일단 영화로 만들기로 했다면 영화 환경에 걸맞게 표현기법도[11]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일본 영화에선 만화를 흉내내는 데에만 집착한다.[12] 문제는 영화라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현실세계를 바닥에 깔고 들어가기 때문에 아무리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영화에 등장하는 순간 만큼은 진짜 같은 현실감을 주어야하는데 반해, 만화에서는 애초에 현실감이란 걸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만화적 표현기법을 그대로 영화에 때려박을 경우 그냥 유치뽕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아이언맨이 지금의 조금 더 현실적인 형태가 아니라, 원작의 슈트 형태를 그대로 고수하고 나왔더라면 지금만큼 인기가 있었을까? 첫 작품 개봉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화면을 선사했던 트랜스포머에서 애니메이션의 로봇 모델링을 그대로 썼다면 어땠을까? 또한 원작은 만화라서 작가의 역량만 있으면 스케일이 밑도 끝도 없이 넓어지지만 영화에서 이를 재현하려면 CG가 필수적이다. 이런 영화 대부분은 할리우드보다 예산도 적어서 현실과 심각한 거리가 있다.

굳이 원작을 살리지 않고도 일본 라노벨/만화의 설정이나 뼈대의 일부만 빌려와 흥행하거나 평단의 극찬을 받은 가이버 2[13], 알리타: 배틀 엔젤, 엣지 오브 투모로우올드보이 같은 영화도 있다.[14]

애니메이션, 만화와 영화의 화법이 다름을 미국은 이미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 때부터 알았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는 영화보다 기호화하는 경향이 훨씬 강하다. 이 때문에 영화라면 기괴하게 받아들여졌을 일이나 사건도 기호화를 시켜버려서 세세한 묘사 등을 날려버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뇌의 거부감을 작동시키는 필터에 걸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에서 말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들의 '일곱 난쟁이'들이다. 일곱 난쟁이는 해당 애니메이션에서 사실상 주역이라고까지 평가받으며, 최고의 매력을 뽐내는 캐릭터들이다. 그런데 이런 일곱 난쟁이가 웃고 떠드는 모습을 영화로 재현한다고 해보자. 왜소증 배우들을 고용해서 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 그들을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묘사하는 장면을 연출하면 애니메이션으로 해당 장면을 연출할 때보다 불편함과 기괴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이며(당시의 사회적인 인식에 의한 필터링도 추가해서) 사실상 원작의 재미있고 감동적인 부분이 프릭쇼로 전락하는 것이다.[15]

애니메이션특촬물의 대국이지만, 위상에 걸맞지 않게 영화 CG는 퀄리티가 낮아서 일본 블록버스터 영화는 기대를 접고 보는 분위기가 있다. CG 등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드라마 장르는 예외지만. 원작파괴는 기본이고 등장인물들의 재현도도 코스프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의 그림에 익숙해졌다가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쇼크는 말할 것도 없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는 엄연히 다르므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영화로 구현할 때는 그에 어울리는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 영화에서는 단순히 등장인물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최대한 닮아 보이게만 표현하기 때문에 어색함을 피할 수 없다. 이건 일본 만화 독자층의 상당수가 오타쿠화된 탓도 있다. 당장 나무위키에서 즐겨 사용되는 나의 아스카는 그렇지 않아의 유례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이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니 잘 각색될 리가 없다.

이런 사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만화와 애니로는 명작이었지만, 영화로는 혹평을 피하지 못한 2016년작 영화판 4월은 너의 거짓말이다. 사실 만화가 가진 특유의 과장법이나 은유법을 실사영화로 살려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여자의 나체를 보고 코피를 뿜는 장면을 실사영화로 도대체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게다가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특정 대상을 겨냥해 제작되는 반면, 영화는 상당히 광범위한 대상을 염두에 두고 제작돼야 하기 때문에 원작과 상당한 차별화를 해야만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일본 만화 독자층 상당수가 오타쿠들이라 쉽지가 않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감독이나 배우 등 제작자들뿐만 아니라 관객층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문법이나 과장된 연기, 연출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인접 산업이자 경쟁/대체관계에 있는 영화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영화산업에도 필요한 우수한 감독이나 작가, 미술, 음악 등 역량 있는 크리에이터들을 애니메이션 제작에 빼앗기는 것 또한 또다른 부정적 영향이다.

또 만화 원작 영화가 증가하면서 실사화 블록버스터의 실패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만화 원작 영화 중에서 《얏타맨》(2009)이나 《SPACE BATTLESHIP 야마토》(2010) 정도만이 흥행했고 《캐산》(2004)은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이전에 흥행에 실패한 《데빌맨》(2004)이나 《큐티하니》(2004)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였으나 2013년 들어서 제작비가 80억 엔에 달하는 《갓챠맨》이나 제작비가 30억 엔인 《캡틴 하록》(2013)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흥행에 줄줄이 실패하면서 후폭풍이 몰아쳤다.

2015년 8월 1일 동명의 인기 만화 원작으로 1부가 개봉한 《진격의 거인》은 전, 후편 각각 50억 엔으로 합계 100억 엔을 목표로 했으나 결국 1부 32억 엔, 2부 15.3억 엔으로, 총 제작비가 30억 엔 정도로 배급 극장과 수익을 나누는 것을 고려하면 매출 60억 엔을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넘지만 적자를 보고 말았다.

2022년 박치기 감독 이즈츠 카즈유키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낸다.원문, 번역


2.9. 배우의 열악한 대우[편집]


배우에 대한 처우가 너무나 열악해서 한국의 송강호 같은 전업 영화 배우들이 사실상 없다는 것도 문제이다.[16] 일본의 영화배우들은 영화출연만으로는 힘들어서, 드라마와 광고를 겸업해야 한다고 할 정도.#

이는 2018년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가 일본 영화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작비 300만 엔 초저예산으로 흥행수입 31억 엔, 무려 수익률 1000배라는 대박을 터트렸지만, 최초 계약대로 배우는 전원 노개런티에 감독인 우에다 신이치로의 연출료는 고작 30만 엔뿐이었다.[17] 성공보수(러닝 개런티)가 없는 일본영화계의 관행상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에게는 단 한푼도 돌아가지 않았다.#

일본 영화 감독의 개런티는 극장수익에 따른 개런티는 없고, 오직 DVD 판매액의 1.75%와 대여료의 3.3%로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낮다. 우치다 에이지 감독은 "더 문제는 이게 불합리하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난다.

한국에도 고정팬을 갖고 있는 명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자국 인터뷰에서 일본 영화는 갈라파고스화가 되었다면서 일본 영화의 폐쇄적인 구조와 불공평한 수익배분을 비난하며 “한국 영화계보다 훨씬 못 하다"고 답했을 정도다. 인터뷰 전문 번역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 영화계의 수익배분 구조도 절대 훌륭하다고 볼 수 없다. 말단은 그렇다쳐도 경력이 좀 찬 스탭들조차 박봉으로 굴리고, 제작사-멀티플렉스 체인 직배 구조 때문에 비판을 많이 받는게 한국 영화계인데 일본 영화는 그거보다 훨씬 못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이니 말 다한 셈. 심지어 일본 내 극우 방송국들조차도 영화 산업은 한국 쪽이 위에 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2.10. 일부 회사의 독점[편집]


이점은 한국보다 훨씬 문제가 심각하다. 영화관 스크린 독점 소리를 듣기는 해도, 어쨌거나 4~5개의 주류 업체가 경쟁중이라 순위는 있어도 절대 우위는 없는 한국 영화와 달리 일본은 주류라고 부르는 도에이쇼치쿠, 도호중에서도 수십년째 도호의 절대우위가 이어지고 있다. 도호는 일본 영화판을 거의 독식하고 있다.

도호는 수입, 투자, 제작, 배급, 상영을 다같이 하는 CJ그룹상위호환으로, 아예 일본 영화관에 걸리는 영화의 레이블은 70% 이상 도호 레이블을 달고 있다. (한국 1위인 CJ는 14%) 심지어 유력 소속사도 운영 중으로써 자사의 배우가 자사의 인력으로 자사의 영화사에서 촬영한 영화를 자사의 영화관에 상영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가능하고 심심찮게 발생하는 곳이 도호이다. 보통 3대 일본 영화제작사 취급받는 유서 깊은 제작사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기존 영화사들이 촬영 스태프를 동원해주는 인력회사 그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1960년대 TV 보급과 함께 일본 영화업계의 위기가 시작됐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TV 방송국과 합작을 시작[18] 자금을 지원 받으면서 숨통을 열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영화사들이 다른 자금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방송국의 지원에 기대버리면서 차츰 영화 제작의 주도권을 뺏기기 시작해 급기야 상술된 스폰서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지경까지 내몰린다.

그러니까 감독이나 각본가의 자유로운 발상에서 영화 제작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이 만화가 히트쳤으니 실사영화를 만들면 팔릴 것 같다", 혹은 "우리 회사 드라마의 극장판을 만들자" 같은 투자자의 발상에서 영화 제작이 가능해지는 풍토다. 더군다나 단순히 투자자의 발상으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모르겠는데 해당 작품의 인기 요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로 영화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졸작들이 쏟아질 수밖에 없다.

사실 '영화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기 때문에 엉망이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기에는 똑같이 투자자-프로듀서 위주로 돌아가는 할리우드도 있다. 이는 일본의 투자자들과 투자위원회가 흥행을 엄청나게 신경쓰면서도 결국 자신들이 일하는 방법, 발상이 주먹구구식이라는 반증이다.

3. 향후 전망[편집]


이 항목이 일본영화의 실태와 그것이 가지는 문제점에 대하여 설명을 했지만, 일본 영화가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 부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은 마치 중국처럼 처음부터 영화를 못 만들던 나라가 아니며, 사실 영화로 굉장히 잘 나갔던 시절이 분명히 있다. 사회구조나 경제 침체, 애니메이션의 폭발적인 인기등에 의해서 일본 영화가 슬럼프에 빠졌을지는 몰라도, 이게 단기간의 슬럼프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CG기술이 계속하여 발전함에 따라서, 과거에는 실사로 표현하지 못했던 애니메이션이나 SF영화를 점점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다고 하면 일본영화가 앞으로도 계속하여 침체상태로 있을 가능성은 낮다. 일본 영화는 망했지만, 사실 그 기간에도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계속 세계 제일이었고, 크리에이터들의 상상력, 창작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쌓아왔던 게임, 애니메이션등의 지적재산(IP)만 제대로 풀어먹어도 아마도 일본영화는 비슷한 경우인 미국의 마블처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슈퍼마리오나 고질라등 최근 성공한 실사 영화에서 그 낌새는 이미 보이고 있다.

[1] 유명한 혐한 극우 인사이다. 한국을 비난하면 비난했지 겉치레로 칭찬할 일은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일본 영화가 밀린다고 생각되는 것이다.[2] 기타노는 이 자조적인 말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3] 참고로 《라쇼몽》은 등장인물이 열 명도 안 되고, 배경도 한정한 저예산 영화다.[4] 사상적으로, 또한 특징적으로 크게 변한 점은 없었음에도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부산행이나, 자신의 원작을 여러 번에 걸쳐 리메이크한 지옥같은 작품으로 겨우 이름을 높일 수 있었다.[5] 다만 전세계에서 성인에게도 어필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정도이고, 다른 나라들은 어린이 ~ 청소년용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좋게 보면 유니크한 경쟁력이지만 나쁘게 보면 아무리 애니메이션이 잘 나가도 결국은 서브컬처에 머무른다는 의미로, 이것이 일본이 애니로 잘 나가면서도 끊임 없이 영화, 드라마라는 메인컬처의 흥행을 갈구하는 이유이다.[6] 미이케 역시 가끔 영국 자본의 투자를 받을 때가 있다.[7] 정확히는 콤데시네마(Comme des Cinémas)라는 일본인이 세운 프랑스 제작사가 아트하우스 일본 영화 투자에 활발하다. 덕분에 이 회사는 국제 영화제에 진출하는 일본-프랑스 합작 영화 크레딧에 자주 볼 수 있다.[8] 이것은 데뷔 무대와 동시에 은퇴 무대가 되어버린 가수 Ori의 사례를 봐도 잘 알 수 있다.[9] 사실, 이런 문제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같은 일화로도 볼 수 있다. 가수로서 잘 나가는 연예인들을 굳이 배우들이 나서서 도와줄 필요는 없어서다.[10] 이온 그룹의 오카다 모토야 명예회장과 오카다 가쓰야, 그리고 도쿄신문의 주요 간부가 형제 지간이다.[11] 연출, 연기, 촬영기법, 의상을 포함한 등장인물들의 외형, 특수효과 등등[12] 실사판 항목 참조.[13] 전작인 1편보다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14] 올드보이는 영화 때문에 원작이 재조명된 케이스다. 영화가 대박을 치고 '이 영화는 일본 만화가 원작'이라고 밝히자 "그래!?!?"라며 만화 원작이 다시 조명된 것.[15] 여담이지만, 실제로도 '만화적인' 난쟁이 역할에 진짜 왜소증 배우를 기용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특히 CG가 미비했던 시절엔 흔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움파룸파가 대표적. 물론 71년작과 05년작 둘 다 원작에서 변형된 코디와 캐릭터 연출로 몰입을 깨거나 기괴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연출했다.[16] 실제로, 송강호는 1990년에 연극계에 데뷔했고 2023년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한다. 하지만, 송강호는 "그동안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았던 것은 영화 판에서만 섭외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판에서는 좋은 개런티의 섭외 제의가 오지 않아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많이 없었을 뿐이다" 라고 했었다.[17] 사실 이 영화 제작사는 ENBU 세미나라는 한국으로 따지면 한국영화아카데미 비슷한 극단 겸 영화학교에서 만든 영화다. 이곳 학생들을 기용해 영화 친밀함을 만든 하마구치 류스케 역시 초저예산으로 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18] 일례로 고레에다 히로카즈하마구치 류스케는 처음부터 방송국 PD로 초기 경력을 시작했으며, 투자도 방송국 인맥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고레에다 감독의 초기작은 모두 방송 제작사인 TV 원맨 유니언에서 제작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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