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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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42년 4월 30일에 치러진 일본 제국 중의원 총선거. 태평양 전쟁 동안 있었던 유일한 중의원 선거이자 대정익찬회의 유일한 선거였다. 1937년 치러진 선거의 임기가 5년이 끝나면서 새롭게 치러진 선거로, 총리로 임명된 도조 히데키가 '대동아전쟁을 위한 총선'을 주장하며, 대정익찬회만이 유일 정당으로 참여했다. 좌익 정당은 참여가 금지되었다.
당시 중의원 정원이 466명으로, 대정익찬회 추천 의원(익찬정치체제협의회)이 원내 의석의 81.8%를 차지했다. 나머지 85석은 무소속 의원들로, 그 중 다수가 우익정당 동방회(東方会) 계열이었다.[1] 이는 태평양 전쟁 중 천황제 파시즘이 만연할 때 동방회와 입헌양정회를 제외한 모든 합법정당이 대정익찬회로 흡수된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비밀투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가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는데, 전전 일본에서는 선거결과를 뒤집는다거나 투표과정에 부정을 행사하는 등 직집적인 방법이 아니라 연설을 못하게 막는다거나 전단물을 못붙이게 하거나 정부측 후보에 선거자금을 풍부하게 공급하는 등 비교적 간접적인 방법으로 선거에 간섭했으며 1942년의 이른바 익찬선거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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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찬가지로 우익정당인 입헌양정회(立憲養正會)도 후보를 내기는 했지만 전부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