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창수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권한대행)
이보룡
1대
김석기
(권한대행)
송영식
2대
김지웅
(권한대행)
박무사
3대
최만규
4대
김석기
(권한대행)
이철우
(권한대행)
서용범
5대
김상만
6-7대
김복만
(권한대행)
류혜숙
8대
노옥희


제10대 울산광역시교육감
천창수
千昌秀 | Chun Chang-Soo


출생
1958년 11월 20일 (65세)
경상남도 김해군
(현 경상남도 김해시)[1]
본관
영양 천씨
현직
울산광역시교육감
노옥희재단 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재임기간
제10대 울산광역시교육감
2023년 4월 6일 ~ 현직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펼치기 · 접기 ]
가족
배우자 노옥희[1], 슬하 1남 1녀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 학사)
병역
병역면제(수형)
소속 정당
[2]
성향

경력
현대중전기 노동자(1983-1988)
민주노총 금속연맹 울산본부 본부장(2000-2001)
울산사회교사모임 창립
더불어숲 작은도서관 운영위원
청소년인문아카데미 '날개' 운영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2015-2016)
울산교육연구소 북유럽교육복지연구회 회장(2019)
울산교육연구소 정책분과장(2021)


1. 개요
2. 생애
2.1. 교육감 선거 출마와 당선
2.2. 제10대 울산광역시교육감
3. 논란
3.1. 국가보안법 위반 등 논란
4. 선거 이력
5. 여담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언제나 아이들만 바라보겠습니다.

2023년 천창수 교육감 공식 슬로건


대한민국의 교사 출신 교육인, 정치인, 사회운동가로 울산광역시 최초의 여성·진보·과반 당선 교육감인 노옥희 교육감의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유신독재를 반대했던 전력 때문에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교사가 되지 못했다가 20년 만에 교사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그 이후에도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으로 활동하며 교사로도 유명하다.


2. 생애[편집]


1958년 11월 20일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나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를 꿈꾸며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로 입학했다. 당시 겨레터에서 야학 교사로 활동하였다. 대학 생활 도중 박정희 대통령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긴급조치 9호로 인해 구속되었다. 1980년 학교에 복학한 이후 1982년에 졸업했다. 당시 교육공무원법상 국립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원자격증을 발급받은 이는 국공립학교 교사로 임용[2]되었으나, 구속 전과로 인해 교사 발령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졸업 후 현대중전기[3]에 입사했으나 1987년 민주화운동이자 노동운동이었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참가한 이후 서울대학교를 졸업했던 신분이 드러나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다는 이유로 해고 당했다. 1989년 노옥희와 결혼하고 이후 영남노동운동연구소를 만들어 민주노총에서 활동하다 민주화 이후 2002년이 되어서야 교사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신림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이후부터 교사 생활을 계속 이어갔다.

이 당시 울산지역에서 울산사회교사모임을 만들고, 작은도서관의 설립 및 운영위원을 맡았었으며 청소년 인문 아카데미 '날개'를 운영하기도 했다. 위 전력으로 전국사회교사모임의 회장도 역임했다. 2022년에서는 교사에서 퇴임하여 사단법인 울산교육연구소의 정책분과에서 일했다. 울산광역시교육감으로 활동하던 아내 노옥희가 사망하자 노옥희 교육감의 지지자들과 교사들이 만든 노옥희재단의 추진위원회 공동대표로 추대되었다.

2.1. 교육감 선거 출마와 당선[편집]


2022년 12월 8일, 아내인 노옥희 교육감이 급성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며 울산광역시교육감 자리가 갑작스럽게 궐위되었다. 노옥희 교육감은 강제적 야간자율학습 완전 폐지, 무상급식 확대, 신입생 교복비 지원, 초·중학생 수학 여행비 지급, 부정평가 시책방지 1등 등의 행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때문에 전국에서 인기가 가장 많은 교육감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높은 인기를 뒷받침하듯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 재출마했을 때 보수 성향이 강한 울산에서 무려 55%를 득표하며 보수진영 단일화 후보인 김주홍 교수를 거의 10%p 가까이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는데,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지 6개월여 만에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울산 교육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진보진영은 그녀의 교육정책을 이어갈 후임 적임자를 찾지 못해 근심에 빠졌다. 사실 이때만 해도 아내를 잃은 슬픔이 컸을 뿐이고, 후임 교육감으로 출마한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천창수 울산교육감후보 추대위원회'를 결성한 울산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와 노동계, 노옥희 교육감의 지지자 및 교사들로부터 후임자를 선출하는 교육감 선거에 출마해줄 것을 요청받았다. 이들의 이러한 구상은 2023년 2월 1일 울산교육감 보궐선거 시민후보 추대식으로 구체화되었고, 이에 요청을 수락하여 2월 6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하고 아내 노옥희 전 교육감의 교육 비전과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직 정치인의 궐위나 사망 등으로 해당 정치인의 배우자가 그 뒤를 잇는 사례는 은근히 있는데[4] 이 경우는 천창수 본인이 단순히 노옥희 전 교육감[5]의 배우자일 뿐 아니라 교사 출신의 사회운동가이자 부부 간에 교육철학을 공유해온 교육인이었던 만큼 교육감 선거 출마의 높은 당위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후보 단일화 논의를 주장하던 구광렬 후보로부터 2023년 3월 9일 지지 선언을 받았고, 구 후보가 전격 사퇴하면서 단일화가 이루어져 진보진영의 단독 교육감 후보가 되었다. 이에 따라 본선에서는 1년 전 지방선거에서 아내 노옥희 전 교육감과 대결했던 보수 교육감 후보 김주홍 교수와 맞대결하게 되었다.

선거 당일인 4월 5일 26.5%의 저조한 투표율 속에서도 61.9%를 득표하여 김주홍 후보를 상대로 압승, 아내의 뒤를 이어 제10대 울산광역시교육감에 당선되었다. 이로서 전국 교육감 역사상 최초의 부부 교육감이 탄생하였다. 개표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노옥희 전 교육감의 동생인 자신의 처제 노덕현[6] 씨로부터 꽃목걸이를 전달받았고, 소감 발표를 통해 먼저 떠나보낸 노 전 교육감의 꿈과 뜻을 이어받겠다고 선언했다.

2.2. 제10대 울산광역시교육감[편집]


2023년 4월 6일 오전, 천 교육감은 당선증을 수료하고 인수인계서와 교육청 직속 학교폭력 전담기구 설치의 내용을 담고 있는 1호 결재안에 서명함으로써 공식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 날 오후 2시에는 교육감 취임식을 진행하였다.[7]#

교육감 비서실장에 조용식 전 비서실장, 시민소통비서관에 권필상 전 울산시민연대 사무처장을 각각 내정하였다.#

당선 직후부터 꾸준히 울산시로부터 홀대를 받아왔다.

8월 28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대해 지지 의사를 밝혔다.

9월 14일, 울산광역시교육감으로서는 최초로 시도교육감 평가 전국 1위를 달성하였다.[8]

3. 논란[편집]



3.1. 국가보안법 위반 등 논란[편집]


  • 국가보안법위반(기타)
    • 노동쟁의조정법위반 :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자격정지 1년(1989.10.12)

  • 업무방해 : 벌금300만원(2001.1.30.)

  • 업무방해
    • 폭력행위동 처벌에 관한 법품위반
    • 집회및시위에 관한법률위반
: 벌금500만원(2002.9.5.)

202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총 3건의 전과기록이 공개되었다. 이 전과로 인해 병역면제 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천창수는 이 전과 기록 전부 모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의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해 당시 상대 측 후보였던 김주홍은 노골적으로 좌파, 빨갱이몰이를 하며 네거티브를 하였다. 허나 천창수 측은 이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투쟁마저 부정하는 흑색선전이라 반박했었다.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성향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3
상반기 재보궐선거
울산광역시교육감
[[진보주의#s-11|
진보
]]


153,140 (61.94%)
당선 (1위)
초선[9]


5. 여담[편집]


  • 교사에서 정년퇴임한 이후 SF소설을 쓰고 있었다.
  • 평소 학생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교육했고, 퇴직 후에도 독서모임을 꾸준히 했다. 시장 상인들에게 책을 대여하는 책수레 봉사활동도 했으나 울산교육감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교육감으로 당선되어 바빠지면서 잠시 중단하였다.
  • 의외로 초코과자를 좋아하는데 건강관리를 위해 자제 중이라고 한다.
  • 교사생활 중 수업일지를 1만회 이상 썼다.
  • 부인인 노옥희가 울산교육감에 취임한 이후 집에 잘 못 들어오게 되자 자신이 밥을 하는 일이 많아지게 되었다는데, 한 번은 딸기잼된장으로 잘못 보고 국에 넣어서 끓이는 실수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6.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15:42:58에 나무위키 천창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내 노옥희와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2] 참고로 이 규정은 1990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만장일치 위헌이 결정되면서 폐지되었다.[3] 현재의 HD현대일렉트릭[4] 특히나 해당 정치인의 배우자 또한 해당 정치인의 활동 분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더욱 적극적으로 뒤를 이어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표적으로 김근태의 아내 인재근이 있는데, 인재근 역시 김근태와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 지도자로 활약하다 결혼한 사이라 정치 입문의 당위성이 높다.[5] 노옥희 전 교육감은 교육운동 및 노동운동에 투신한 사회 기여도를 인정받아 노동열사에 준하는 자격으로 양산 솥발산 공원묘원에 안장되었다. 솥발산 공원묘원은 영남판 모란공원이라 할 정도로 영남권 노동운동가 및 민주운동가들이 안장되는 곳으로 유명하다.[6] #[7] 이 취임식에 재보궐선거에서 천창수와 함께 당선된 최덕종 구의원도 여빈으로 참석했다.[8] 아내이자 전 울산광역시교육감인 노옥희도 2위까지가 최고였었다.[9] 전임자 노옥희 임기 중 사망